최덕신(崔德新, 1914.09.17 ~ 1989.11.16)은 군인 출신으로 5.16 직후 외무장관을 지냈고, 이후 서독 등의 대사를 지냈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1976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1] 이후 몇 차례 방북 후 1986년 4월 아내 류미영과 함께 월북하여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6.25 당시 공비 토벌을 위해 창설된 육군 제11사단 사단장으로 1951년 2월초 일어난 거창 양민 학살 사건에 책임이 있다.[2]

생애

최덕신의 부친 최동오(崔東旿, 1892 ~ 1963)가 제자 김일성을 만나러 평양으로 간다고 보도한 민중일보(民衆日報) 1948/04/22 기사[3]


부친 최동오(崔東旿, 1892.06.22~1963.09.16)는 북한 김일성이 1926년 봄 정의부(正義府)에서 세운 만주 화전현(樺甸縣)의 화성의숙(華成義塾)[4]을 3개월여 다닐 때 숙장(塾長)이었다. 김일성 회고록에는 자신이 화성의숙을 다닌 때가 1926년 가을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민족주의 교육을 해서 중도에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1926년 봄에 3개월 가량 다니다 6월에 부친 김형직(金亨稷, 1894 ~ 1926.06.05)이 사망하는 바람에 그만 둔 것이다.

최동오는 1948년 4월 남북협상 당시 제자인 김일성을 만난다며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으나, 6.25 때 납북 당했다.

최덕신은 화성의숙을 다니던 김일성을 당시 알았을 수도 있다. 그가 월북한 것은 납북된 부친이 사망한 후이지만, 김일성이 부친과의 인연을 거론하며 월북하도록 회유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들 최인국의 월북

최덕신은 월북할 때 자녀들은 남한에 남겨둔 모양인데, 둘째 아들 최인국이 월북했다고 북한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가 2019년 7월 6일자 기사로 보도했다.

북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보도
월북자로서 北고위직 오른 최덕신·류미영 부부 차남
가족 모두 남·북·해외로 뿔뿔이 흩어져…2000년엔 이산가족 상봉도

최인국은 2000년 8월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한 어머니 류미영 상봉하기도 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