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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의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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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를 밟고서 조선인에게 태극기를 넘겨주는 소련군 그림
일장기를 밟고서 조선인에게 [[태극기]]를 넘겨주는 소련군 그림
:출처 : [http://archive.history.go.kr/id/AUS026_01_00V0004_009 도시 민중 대회의 김장군 / 8•15해방일주년기념 북조선 민주주의 건설 사진첩] 국사편찬위원회<br>
:출처 : [http://archive.history.go.kr/id/AUS026_01_00V0004_009 도시 민중 대회의 김장군 / 8•15해방일주년기념 북조선 민주주의 건설 사진첩] 국사편찬위원회<br>
해방 직후 평양에 있었던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B%B3%91%EA%B8%B0_(%ED%99%94%EA%B0%80) 김병기(金秉騏, 1916년 ~ )] 화백은 이런 그림이 나오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해방 직후 평양에 있었던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B%B3%91%EA%B8%B0_(%ED%99%94%EA%B0%80) 김병기(金秉騏, 1916년 ~ )] 화백은 이런 그림이 나오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2020년 12월 6일 (일) 20:57 판

파일의 설명

일장기를 밟고서 조선인에게 태극기를 넘겨주는 소련군 그림

출처 : 도시 민중 대회의 김장군 / 8•15해방일주년기념 북조선 민주주의 건설 사진첩 국사편찬위원회

해방 직후 평양에 있었던 김병기(金秉騏, 1916년 ~ ) 화백은 이런 그림이 나오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경방단 공동화실로 러시아 장교 스레첸코가 찾아 왔다. 14명이 함께 작업할 정도로 제법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 발언은 이랬다. ‘조선의 화실은 왜 이렇게 빈약합니까.’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의 화가는 축제일이 되면 그림도 그리고, 슬로건도 쓴다고 했다. 그는 내일 공산당 본부로 화가 3명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다음날 나는 최연해, 문학수와 함께 공산당 본부가 있는 숭실전문학교로 갔다. 소련 장교는 포스터를 보여주면서 커다란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했다. 그림 내용은 소련군이 일장기를 밟고 서서 조선 농민에게 태극기를 주는 장면이었다. 소련군이 우리에게 태극기를 주다니!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화가들은 소련군이 지시한 내용의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출처 : “한밤중 소집한 김일성…예술인들이 나를 선전해주시오” 한겨레신문 20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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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2019년 7월 25일 (목) 13:02676 × 877 (151 KB)JohnDoe (토론 | 기여)조선인에 태극기를 넘겨주는 소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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