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개요

경복궁의 정문이다.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의 한양천도 이후 세워졌다. 경복궁의 정문으로 세워졌으며 임진왜란경복궁이 불타면서 광화문도 함께 파괴되었다. 이후 흥선대원군경복궁을 재건하면서 함께 재건되었다.

일제강점기 및 해방이후

총독부 청사를 세우면서 광화문은 경복궁 동편 문으로 이건하였으나 6.25 때 불탔다. 박정희 정부 때 원래 위치에 광화문을 시멘트 건물로 복원하였다.

노무현 정권 당시 문화재청장 유홍준이 박정희의 한글 글씨인 광화문 현판을 떼어 내려다 반대에 부딪혔다. 이에 유홍준은 아예 시멘트로 복원된 광화문 전체를 헐고 목조건물로 다시 복원하고, 불타기 전 광화문 현판 글씨 사진을 찾아 복원하는 공사를 시작한다. 유홍준 개인이 증오하는 박정희의 글씨로 된 현판을 떼어내려다 원래 계획에도 없던 엉뚱한 일을 벌이게 된 것이다.

한편 서울시장 이명박과 문화재청장 유홍준은 접근이 금지되어 있던 숭례문(남대문) 일대의 금지령을 해제시켜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임진왜란과 6.25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은 국보1호가 방화로 소실된다.[1] 노무현 임기 종료 직전인 2008년 2월 10일에 일어난 이 화재로 유홍준은 문화재 청장에서 물러나지만, 이명박은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후 광화문 복원공사와 숭례문 복원공사가 동시에 벌어지는 꼴불견이 연출된다. 국보1호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허울좋은 명분 때문에 귀중한 문화재가 소실되었고, 복원한 숭례문은 원형을 잃어 원래의 숭례문이 아니다. 문화재 보존과 관리사업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면 재앙이 일어난다는 좋은 실례이다.

복원

광화문 본건물 복원 공사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8월 15일 완료되었고, 현판도 불타기 전의 훈련대장 임태영 글씨로 바꾸어 달았다.[2]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