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부
임기
1998년 2월 25일~2003년 2월 25일
전임
후임
내각
여당
새정치국민회의 (1998년 2월~2000년 1월)
연립 여당 자유민주연합 (1998년 2월~2001년 8월)
새천년민주당 (2000년 1월~2003년 2월)
선거

김대중 정부(金大中 政府, 1998년 ~ 2003년)는 대한민국제6공화국의 세 번째 정부이다.

보통 국민의 정부로 통칭한다. 새 정부의 주권국민에게 있다는 뜻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은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몰락할 위기에 처한 김정일 독재정권에게 퍼주기를 시작하면서 "북한 정권은 절대로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고 호언하였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만든다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정권이다.

종북 주사파 3대 대통령중의 첬번째 대통령이다. 그는 북한에 가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에 이면합의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되었었다.

좌파 정치권에서는 김대중 사후에도 김대중 정신을 잇는다며 김대중 기념관을 만들고 확장해 나갔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여기에 응답하기라도하듯 방문하여 추모하고 고개숙이고 있다.

거의 대한민국에서 몇십년만에 정권교체 첫 좌파정부라고 봐도 된다.

집권 초반에는 그걸 의식해서 그런지 좀 조심한 편이다.

imf에 필요이상으로 투항주의적으로 따랐고, 국부의 상당수로 외국에 헐값으로 팔았다. imf를 빌미로 재벌 개혁등을 하려고 했다.

대우를 기획해체 시켰고, 대기업에게 뭐를 사라 팔라며 개입해 빅딜이라는 것을 시켰다. 국가가 대기업에 사업부를 팔아라 사라 했으니 빅딜을 실패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김대중은 원래 박헌채가 쓴 대중경제론을 그대로 가져와 한국은 남미처럼 농업국가가 되어야 한다며, 박정희의 수출주도 중화확 공업등을 비판했는데, 갑자기 imf 때는 영미 경제의 찬양자가 되었다.

일본과의 관계는 굉장히 좋은 시기였다. 김대중이 일본에 있을 때 자민당 쪽 완전 좌파파벌과의 커넥션 등이 일본이 김대중의 약점을 많이 알고 있어서 라는 설도 있다. 김대중이 북한쪽 돈을 받은 건 김대중이 일본에 있었을 때라고 추정된다.

이때 정식으로 일본 문화개방을 했고(이전까지 왜색물이라 하여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는 수입이 금지되었다. 만화에 한해서는 수입을 했는데 일본인 캐릭터나 지명이나 설정도 한국인 이름이나 지명으로 강제 로컬라이징 되고, 일본색이 짙은 닌자나 사무라이 같은 것이 나오는 경우에는 해당장면은 통편집되는 경우도 있었다. 아예 일본 노래를 지상파에서 틀지 못했으니 일본의 특촬물도 일본의 드라마라고 볼수도 있는데 일본의 만화영화라고 등록해서 수입했다. 1차 일본영화 개방 때는 주로 해외영화제의 수상작들이 대상이었다. 하나비나 카게무샤와 같은)

,고노 담화가 나왔고 때 일본과는 2002년 월드컵을 공동개최해서 치뤘다.

이때는 벤처를 육성한다고 해서 벤처붐이 있었고, 또 내수를 활성화 한다고 신용카드를 발행을 남발해서 대규모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다.

좌파 시민단체를 합법화하고 정부에서 지원해서 빨대 꽂게 한 것도 김대중 정부 때다.

김대중은 문화의 강력한 힘을 알았다. 문화부장관에 심복인 박지원을 임명했을 정도. 영화계가 완전히 좌경화 되기 시작한 게 김대중 때부터다. 이건 노무현 때도 이어져 좌파감독인 이창동이 문화부장관이 되고, 명계남, 문성근 등이 영화계 원로 등을 몰아내고 완전히 한국영화는 이제 좌파들의 선전선동 놀이터로 전락하게 된다.

국정원도 전라도 쪽이 대거 상경하여 전라도 쪽 인물들이 다 장악하게 만들었고, 워낙 전라도에서 상경을 많이해서 국정원의 전라도 지부등은 업부가 사실상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국정원은 전라도 사람들이 장악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국정원내에서 전라남도, 전라북도 출신, 광주일고 출신 등등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게 된다. 국정원은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김대중은 본인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면 전국민이 자기를 완전히 우러러 볼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간첩을 잡아야 하는 국정원이 적의 수괴인 김정일 스위스 계좌에 직접 돈을 쏴준 것이다.

김대중은 김정일을 만나 정상회담을 했고, 완전 평화쇼를 해서 이제 전쟁은 끝났고, 김정일은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했다며 국민들의 안보관 등을 엄청 허물었다.






주요 정책

국무위원 명단

직위 날짜
1998년 3월 1998년 5월 1998년 8월 1998년 12월 1999년 2·3월 1999년 5월 1999년 6월 2000년 1월 2000년 5월 2000년 8월 2001년 1월 2001년 3월 2001년 5월 2001년 8·9월 2002년 1·2월 2002년 4월 2002년 7·8월 2002년 9월 2002년 11월
대통령 김대중
국무총리 김종필 박태준 이한동 장상 장대환 김석수
재정경제부 장관 이규성 강봉균 이헌재 진념 전윤철
교육부 → 교육인적자원부 장관[1] 이해찬 김덕중 문용린 송자 이돈희 한완상[2] 이상주
통일부 장관 강인덕 임동원 박재규 임동원 홍순영 정세현
외교통상부 장관 박정수 홍순영 이정빈 한승수 최성홍
법무부 장관 박상천 김태정 김정길 안동수 최경원 송정호 김정길 심상명
국방부 장관 천용택 조성태 김동신 이준
행정자치부 장관 김정길 김기재 최인기 이근식
과학기술부 장관 강창희 서정욱 김영환 채영복
문화관광부 장관 신낙균 박지원 김한길 남궁진 김성재
농림부 장관 김성훈 한갑수 김동태
산업자원부 장관 박태영 정덕구 김영호 신국환 장재식 신국환
정보통신부 장관 배순훈 남궁석 안병엽 양승택 이상철
보건복지부 장관 주양자 김모임 차흥봉 최선정 김원길 이태복 김성호
환경부 장관 최재욱 손숙 김명자
노동부 장관 이기호 이상룡 최선정 김호진 유용태 방용석
여성부 장관[3] (초대장관) 한명숙
건설교통부 장관 이정무 이건춘 김윤기 오장섭 김용채 안정남 임인택
해양수산부 장관 김선길 정상천 이항규 노무현 정우택 유삼남 김호식
기획예산처 장관[4] 진념 전윤철 장승우

여담

각주

  1. 2001년 1월 29일 '교육인적자원부'로 격상하였다.
  2.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 격상
  3. 2001년 1월 29일 신설되었다.
  4. 1999년 5월 24일 신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