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1910년 8월 29일)로부터 1945년 8.15 해방까지의 기간동안 일제통치로 인한 피해 사망자 수를 사안별로 대강 조사해 본다.

징용 피해자 수

1939~1945간 군인, 군속 동원 24만 사망자 2만 2천 / 탄광 공장 노무자 72만, 희생자 수 불명


만들어진 근현대사, 일제시대 “강제징용”이라는 신화 mediawatch 2018.11.25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뒤 1939년 9월부터 조선인을 동원하는 “노무동원”이 시작되었다. 이 “노무동원”의 마지막 단계가 바로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징용”이다. 하지만 “징용”은 사실 1944년 9월부터 불과 몇 개월간 시행되었다.
한편 “징용”은 미공군이 한일해협을 장악하는 1945년 3-4월경이 되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만 실시된 것이고 일본으로 간 조선인 근로자 72만 4천여 명 중에서 징용으로 간 사람은 10만 명 내외로 추산된다.
요컨대, 1939년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전체를 “강제”로 동원된 사람들로 볼 수도 없고, 일본에 의한 조선인 노무동원을 한데 묶어 “강제”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제2차 세계대전 조선인 희생자 수

제2차 세계대전 조선인 희생자 수는 존 다우어(John W. Dower)[1][2]가 추정한 7만명이 가장 실제에 가까워 보이나, 정확히 알기는 어려울 것 같다.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거주하다 원자폭탄에 희생된 조선인 중에는 징용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건너간 사람도 다수 있을 것이므로 이들은 2차대전 희생자는 맞지만 딱히 일제통치의 직접적 피해자로 산입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존 다우어가 추정한 2차 대전 당시 조선인 사망자 수는 7만명

아시아·태평양전쟁사의 권위자 존 다우어(John W. Dower)[1][2]가 추정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선인 사망자(징병·징용 사망자,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사망자 등) 수가 약 7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Wikipedia의 2차대전 희생자 수

아래 Wikipedia의 수치들은 문헌적 근거가 충분히 제시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 한국의 민간인 희생자 수를 483,000[3] ~ 533,000[4] 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인 군인 사망자 수는 일본군에 포함시켜 따로 산출하지 않았다.
한국인 민간인 사망자 수가 543,000명이며 대부분 강제 징용 당한 사람들이라 했다. (543,000 Korean civilian deaths (mostly due to Japanese forced labor projects))[4]

미국 국립 2차대전 박물관의 나라별 희생자 수

한국인 사망자 총수를 378,000-473,000 로 기록했으나 근거문헌 제시는 없다.

3.1운동 사망자 수는 9백여명

국사편찬위원회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구축한 3.1운동 데이터베이스에는 3.1운동 당시 사망자 수는 최소 725 명, 최대 934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간토(関東) 대지진 당시 조선인 사망자 수

간토 대지진(일본어: 関東大震災)은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32초(일본 표준시)에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 만을 진앙지로 발생했던 큰 지진이다. 당시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 라는 헛소문이 각지에 나돌면서 상당수의 조선인들이 학살되었다.

일본인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 1878~1933)는 그의 저서 『압박과 학살(壓迫と虐殺)』[5]에서 조선인 피살자 수를 2534명으로, 김승학(金承學, 1881~1965)『한국독립사(1965)』에서 피해자가 6066명이라고 적었지만, 그에 비해 당시 일본정부의 추산은 233명이었다.[6]

1952년 12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지시로 내무부에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수집·집계한 자료이다. 총 290명의 명단이 기재되어 있다.

광복 귀국선 우키시마(浮島)호 참사

1945년 8월24일 해방후 수천명의 조선인 귀국자들을 태운 우키시마(浮島)호가 침몰하여 수천명이 사망하였다. 일본측이 배를 고의로 폭파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사고 원인이나 사망자 수가 명확하지 않고 논란이 되고 있다.


함께 보기

각주

  1. 1.0 1.1 존 다우어(1938 ~ ) 위키백과
  2. 2.0 2.1 John W. Dower(1938 ~ ) Wikipedia
  3. R. J. Rumell, Statistics of democide, Chapter 3 Statistics Of Japanese Democide Estimates, Calculations, And Sources : 표 3.1 (Table 3.1 보기)
  4. 4.0 4.1 Werner Gruhl, Imperial Japan's World War Two, 1931–1945 Transaction 2007; ISBN 978-0-7658-0352-8, p. 19
  5. 「壓迫と虐殺」 【明治新聞雑誌文庫】 - 東京大学
  6. 간토 대지진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