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
  • 토론
  • 읽기
  • 원본 보기
  • 역사 보기
최원
최근 수정 : 2020년 10월 3일 (토) 14:08

최원(崔元[1], 崔遠[2] 또는 崔源[3], 1910[4] ~ ?)은 북한의 군인이다. 소련의 고려인 출신으로 연해주에서 출생했으며[4], 하바로프스크 극동전선군 사령부의 정찰국장 나움 소르킨 소장 아래서 정보업무를 담당하며 김일성이 속해있던 제88독립보병여단과도 관련을 맺고 있었다. 해방 이후 북한으로 와서 인민군 정찰국장, 군사과학국장 등을 지냈고 1958년경 숙청 당한 후 행방 불명되었다.

약력

소련의 고려인 출신으로 1942년에 모스크바 정찰학교를 나온 후 하바로프스크 극동전선군 사령부의 정찰국장 나움 소르킨 소장 아래에서 김일성이 있던 뱌츠코예88여단 관련 정보업무를 담당했다.[5][6] 해방 이후 북한으로 와서 1946년 보안간부훈련대대부(保安幹部訓鍊隊隊部)[7]와 1948년 조선인민군 창설 당시부터 정찰국장(대좌)을 지냈다.[2][8] 인민군 창설 1주년이 되는 1949년 2월 7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로부터 제3급 국기훈장(國旗勳章)을 수여받았다.[9][10][11]

6.25 남침 때는 총좌(總佐, 준장급) 계급의 정찰국장으로 서울에 내려와 정찰관련 일을 지휘했다.[12] 당시 조선인민군 정찰부는 서대문구 창천동의 네덜란드 영사관 건물 2층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건물 터에 지금은 빌라가 들어섰다.[13]

6.25 전쟁 후반기인 1952년 7월에 5군단장 방호산 휘하의 46사단장을 맡고 있는 것이 미군 기록에 나온다. 46사단은 소속 군단이 계속 바뀌다 1951년 11월 5군단 산하로 되어 전선에서 후퇴해 원산 북쪽 함흥 일대 해안방어를 담당했으며, 1952년 7월에도 같은 지역에 주둔했다.[14]

그 후 그는 소장으로 진급하여 군사과학국장이 되었으나, 1958년 경 사상 검토시 숙청, 투옥된 후 행방불명이다.[5]

총참모부 군사과학국장으로 있던 최원은 1958년 장평산(張平山, 1916~?)연안파가 시도한 쿠데타에 연루되어 숙청되었다는 말도 있으나,[3] 소련파에 속하는 그가 연안파의 쿠데타 시도에 가담했을지는 확인이 필요한 것 같다. 6.25 때 5군단장 방호산 휘하의 46사단장을 맡았던 때에 연안파와 가까와졌을 수도 있다. 같은 고려인 출신으로 6.25때 작전국장을 지낸 유성철은 장평산의 쿠데타 음모라는 것이 김일성이 반대파들을 숙청하기 위해 조작해낸 것이라 했다.[15]

1959년 7월 숙청되어 강계의 감옥에 갇혔던 조선인민군 소장 출신 강수봉(필명 여정(呂政))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자신과 같은 감방에 총참모부 무기기재 공급국 부국장 박병수, 총참모부 군사과학국장 최원, 6사단장 고기환, 3군단 통신부장 최명철, 직업총동맹 경공업위원장 이선희등 5명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알려진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16]

소련파들 다수는 현직에서 쫓겨나 소련으로 돌아갔으나, 최원은 소련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17]

김일성은 당시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된 숙청자 명단을 갖고 있었는데 『첫째 부류는 처형하고, 둘째 부류는 무기한 고생을 시키며, 셋째 부류는 외국으로 간다면 쫓아 내는 것』이라 하였다. 유성철은 셋째 부류에 들어 소련으로 쫓겨갔는데[15], 최원은 아마도 둘째 부류 정도에 들어 투옥된 채 소련으로 갈 수도 없었던 것같다.

최원(崔元)은 본래 소련(蘇聯)군 상위로서 극동전선군 사령부의 정찰국장 나움 소르킨(Naum Semyonovich Sorkin, 1899~1980) 소장 밑에서 정보사업을 했었으므로, 당시 88여단에서 김일성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김일성이 표면적으로는 1대대 대대장이었지만 NKVD (KGB 전신) 비밀 요원으로,[18][19][20][21][22] 동료 빨치산들의 동태를 감시하여 상관인 소르킨 소장과 극동군 사령관 막심 푸르카예프(Maksim_Purkayev, 1894-1953) 대장에게 보고하는 일을 하여 상관들의 신임을 얻었고, 그들이 모스크바 수뇌부에 김일성을 추천한 것이 스탈린이 그를 북한 지도자로 발탁한 배경이라고 증언했다.[1][23][24]

6.25 전쟁 작전계획 수립에 참여

최원은 정찰국장으로 6.25 전쟁 작전계획 수립에도 참여했다고 당시 작전국장 유성철이 후일 증언했다.

◎전 북한군 작전국장 유성철 증언 / 대독 전쟁경험 풍부한 소(蘇) 장성들 고문단에 참여 /“서울 전격 점령하면 상황 끝”… 예비병력 안갖춰
(미의회도서관 Biographies of Soviet Korean Leaders - 숙청된 고려인 가족 80인의 육필수기)
전쟁 전후 북한군 작전국장이었던 유성철씨는 지난 5일까지 재소 교민신문 고려일보에 연재한 자신의 회상록 「피바다의 비화」에서 김일성의 소련 방문 직후 민족보위성 작전국의 한 방에서 약 1개월간 극비리에 작전계획이 작성됐으며 소련군의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이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고 증언했다.

다음은 6·25전쟁에 관한 유씨 회상록의 요약이다.

6·25 전쟁 작전계획은 민족보위성 작전국의 한 방에서 약 1개월에 걸쳐 극비밀리에 진행됐다. 이 작전계획에는 총참모장 강건, 포병사령관 김봉률, 포병참모장 정학준, 공병국장 박길남, 통신국장 이용인, 공군사령관 한일무, 해군 참모장 김원무, 병기국장 서용선, 후방국장 정목, 정찰국장 최원, 작전국장 유성철(필자), 작전부국장 윤상렬 등이 참여했다.

소련 고문단에서는 바실리예프 중장, 포스트니코프 소장 및 기타 장령들이 작전계획 작성에 주동 역할을 했다.

....』

여정(강수봉)의 최원에 대한 증언

여정(呂政, 1925 ~ ?)(본명 강수봉)은 최원의 신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고, 그는 88여단에서 김일성이 NKVD (KGB의 전신) 비밀 요원이 되어 동료 빨치산들의 동태를 감시, 밀고하는 역할을 했다고 증언했다.[24][1]

《최원(소장, 총참모부 군사과학부장)의 회상》

(최원은 본시 소련군 상위로서 소련 원동사령부에 속해 있었다. 솔로킨 소장 밑에서 정보 사업을 했으며 만주지방에 대한 정찰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다. 소련 붉은기훈장 수훈자다. 88여단과는 간접적인 연계를 갖고 있었다. 조선말보다 러시아말을 더 잘했으며 중국말 마디도 번질 줄 알았다. 그는 입이 가벼워서 수차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1959년 3월 반당분자로 몰려 특별군사재판정에서 15년 도형을 언도받았다.)

“소련 원동방면군 사령부에서는 중국 만주항일연군 사람들을 믿지 않았지요. 사령관인 부르가예프 대장이 그랬고 정보부장 솔로킨 소장도 그랬소, 솔로킨소장 은 베리야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고 소련 국가안전위원회의 원동방면 책임자였는데 자주 항일연군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고 투덜거리곤 합디다. 후에 와서 솔로킨은 조선사람 김일성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우리 사람이라고 합디다. 그는 88 여단의 내부정형을 김일성 장군을 통해서 손금 보듯 장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 88여단에 있을 적에 두번 모스크바에 갔는데 그것은 솔로킨소장이 소련중앙에 김일성 동지를 추천했기 때문입니다."

“솔로킨이 김장군을 우리 사람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거야 뭐, 국가안전위원회 사람이라는 것이겠지요.”

“최원동지도 안전위원회 사람이었습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나는 그 일이 직업이었지 비밀정보원은 아니었습니다.”
6.25 때 미군이 인민군 포로를 신문하여 얻은 최원의 신상 정보

국가안전위원회는 KGB를 말하며, 김일성이 88여단에 있을 당시는 그 전신인 NKVD(내무인민위원회)라 불리었다. 최원 자신은 전업 NKVD 요원으로 비밀 요원은 아니었지만, 김일성은 표면적으로 88여단의 1대대 대대장을 맡으면서 비밀리에 NKVD 정보원 역할도 하고 있었다는 증언이다. 최원은 88여단 소속이 아니라 극동전선군 사령부의 소르킨 소장 아래서 일했으며, 88여단과는 간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6.25 때 미군이 획득한 최원의 신상 정보

아래는 6.25 때 미군이 인민군 포로를 신문하여 얻은 최원의 신상 정보이다.[25]

최연(崔淵)은 최원의 착오이다.

"C/Recon Bureau" 또는 "C/Recon Sec" 은 정찰국장(Chief of Reconnaissance Bureau or Section)을 뜻한다.
GHQ : General Headquarters
NKA : North Korean Army
NKA Div CG : North Korean Army Division Commanding General (인민군 사단장)
CG : Commanding General
PW : Prisoner of War (전쟁 포로)
Jr Lt.: Junior Lieutenant(중위); Sr Lt.: Senior Lieutenant(대위)
Sr Col: Senior Colonel (상급대령, 총좌)
CONFIDENTIAL Security Information

INTERROGATION REPORT NO KG : 1122 (Cont'd)

Name: CH'OE, Yon (崔淵) (최연)
Nationality: Korean - also holds Soviet citizenship
Rank: Maj Gen (Major General, 소장)
Position: Ex C/Recon Bureau, GHQ, NKA and later an NKA Div CG
Age: 40 Height: 1.75 m Weight: 80 kg Build: Obese
Complexion: Light
Characteristics: Large head; round, heavy face; double chin with rolls of fat' on back of neck; narrow eyes; wide, wrinkled forehead; small nose, rather pig-like features.
Marital Status: Married
Last Seen: (Location) GHQ area near P'YONGYANG Date: Feb 51
Observation: PW has seen CH'OE numerous times since 1949, and has talked to him on several occasions. Information is largely hearsay.
Family: No details
Education and Foreign Languages: CHOE's formal education was obviously very limited. He spoke fluent Russian, a little Chinese and Korean with a slight accent.

Background:
Judging by the dated style of CH'OE's Korean, he must have left KOREA when he was under 20. He saw long service (at least 10 years) in the Red Army as an EM and participated in a Recon mission with AN, Kil (安吉)[26] which preceded the Soviet landing operations at CH'ONGJIN (淸津) in Aug 45. For his part in this mission, CH'OE was commissioned a Jr Lt. (AN, then a Soviet Sr Lt, later became C/S of the NK Security Forces, and died in 1947 from natural causes).

CH'OE entered the NK Security forces in 1946. In Feb 48, he became C/Recon Sec, NKA with the rank of Sr Col and in Sep 48, C/Recon Sec,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He retained his post when his section became a bureau in GHQ, NKA in Jun 50. During the first NKA occupation of SEOUL, he was Deputy for the CG, Field Hq, NKA for the SEOUL area. In Nov 50 he was promoted to Maj Gen. He was given command of an NKA combat Div in Feb. 51.

Character and Reputation:

CH'OE was a rough and ready individual, kindly and likable, although coarse and unpolished - a true diamond in the rough. He was not too bright but he had the invaluable knack of being able to pick young, capable subordinates and delegating work and responsibility to them. He was weak in planning and staff work. For example, he failed to set up any kind of Recon training program, units, or schools in the NKA. Despite numerous opportunities and advantages, tactical intelligence - the main task of the Recon Bureau - has been, despite occasional brilliance, generally poor. Moreover, most of CH'OE's bright young men had left the Bureau by early 1951, going to other agencies or down to Div and Corps. It would require a first-rate man to raise NKA tactical intelligence out of its present rut. Name and reputation of CH'OE's successor were unknown.

함께 보기

각주

  1. 1.0 1.1 1.2 비화(秘話) 김일성(金日成)과 북한(北韓): 전 북한군(前 北韓軍) 사단(師團) 정치위원 여정(呂政) 수기(手記) (1) 동아일보 1990.04.22
    비화(秘話) 김일성(金日成)과 북한(北韓): 전 북한군(前 北韓軍) 사단(師團) 정치위원 여정(呂政) 수기(手記) (2) 동아일보 1990.04.29
  2. 2.0 2.1 THE ORGANIZATION AND PERSONNEL OF THE NORTH KOREAN PEOPLE S ARMY HEADQUARTERS CIA 문서, February 25, 1949 : Officer in charge of Reconnaissance Bureau CH'OE Won (崔遠), Lieutenant Colonel(중좌)
  3. 3.0 3.1 大同江(대동강)의 證言(증언) (12) 暴動(폭동)연루자 處置(처치) 1974.05.11 경향신문 4면
  4. 4.0 4.1 김국후, 《평양의 카레이스키 엘리트들 : 스탈린이 급파한 고려인 500명의 슬픈 역사》 (한울, 2013년 10월 31일) p.298
  5. 5.0 5.1 김창국(1916~1981) 전 인민군 정찰국 부국장, 대좌 p.14: 미국 의회 도서관의 Biographies of Soviet Korean Leaders: 고려인 81명 手記
  6. 리동화(李東華, Yi, Tong-hwa, 1901-1980) 전 군의 총국장 pp.4~5 (이동화는 88여단 군의관으로 근무했고, 당시 계급은 김일성보다 높은 소좌였음.)
  7. 보안간부훈련대대부(保安幹部訓鍊隊隊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8. 6.25 전쟁사 제1집 - 전쟁의 배경과 원인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戰史編纂委員會, 2004) pp. 245~246 및 p.297.
  9. 해방 후 4년간의 국내외 중요 일지. 1945.8∼1949.3, 민주조선사, pp.214, 217∼8, 232
  10. 조선중앙년감 , 1949년판, 조선중앙통신사, 17쪽
  11. 김용현, [북한 인민군 형성과정 연구]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학위 논문 (1995)
  12. 이영식(본명 육철식) 지음, 빨치산 (행림출판, 1988) p.109 ; 이영식(육철식)은 6.25 당시 인민군 중위로 최원 총좌 아래에서 복무했다. 낙오병이 되어 빨치산이 되었다 체포된 후 전향.
  13. 북한군 총참모부 정찰부 터 - 보훈처 국가수호사적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506-27
  14. HISTORY OF THE NORTH KOREAN ARMY (Headquarters Far East Command 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General Staff, 31 July 1952) p.89 (pdf p.143) 및 pp.77~78 (pdf pp.100~101).
  15. 15.0 15.1 6ㆍ25때 북한군 작전국장/유성철 “나의 증언”:16 한국일보 1990.11.25
  16. 秘話(비화) 金日成(김일성)과 北韓(북한) 前(전) 北韓軍(북한군) 師團(사단)정치위원呂政(여정) 手記(수기) <15> 1990.07.15 동아일보 ; 「붉게 물든 대동강」: 呂政(여정) 저, (동아일보사 1991.07.01) p.164
  17. 북한서 숙청된 소련파인사 45명/유엔에 「생사확인」 청원 중앙일보 1991년 11월 16일
    인권옹호韓國聯盟(한국연맹) 北(북)숙청 蘇聯派(소련파)인사 45명 유엔등에 生死(생사)확인 청원 1991.11.18 동아일보 2면
    김국후, 평양의 카레이스키 엘리트들 (한울 아카데미, 2013) pp.251-252: <표 8.1> 6.25 전쟁 참전 후 북한에서 소련으로 돌아가지 못한 고려인 장령(장군)들과 군관들: 최원, 인민군 소장, 사상검토후 무소식
  18. 美(미)정보전문 간행물 발표 "金日成(김일성) 항일투쟁은 조작" 1994.06.09 동아일보 5면
  19. KGB 비밀문서, 金日成 抗日투쟁 경력 일축 연합뉴스 1994-06-08
  20. 김충석, 소련 극동군 제88여단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 북한 정치에서 제88여단파의 기원과 형성 역사연구 제30호, 2016.6, pp.50~55.
  21. 김일성은 소련 비밀경찰(NKVD)의 요원이었다! NewDaily 2015.12.02.
  22. Christopher M. Andrew, ‎Oleg Gordievsky, More Instructions from the Centre: Top Secret Files on KGB Global Operations 1975-1985, (Psychology Press, 1992) pp. 78~79.
  23. 金日成, 그는 누구인가, 연합뉴스 1991.03.21 중국.소련등지로 망명한 北韓의 일부 고위간부들은 그가 KGB요원이었으며 蘇聯에 있을때 동료한인들의 言行을 蘇聯당국에 고해바쳐 소련인들의 신임을 얻었다고 전하고 있다.
  24. 24.0 24.1 여정(呂政, 1925 ~ ?) 저, 「붉게 물든 대동강」 (동아일보사 1991.07.01) p.121.
    여정(呂政, 1925 ~ ?)의 본명은 강수봉이며, 인민군 소장으로 있다 숙청당해 10년간 투옥된 후 석방되자 중국으로 탈출한 사람이다. 군사과학국장 최원(崔元) 소장이 숙청된 후 감방 동료였던 강수봉(여정)에게 88여단 시절 김일성에 대해 이와 같은 증언을 해 주었다.
  25. RG 319, Assistant Chief of Staff, G-2 (Intelligence), Intelligence Document File Publication 1947-62, Entry # 1004H (UD), ID 950054 : ATIS-FEC Interrogation Report, Box No. 334, 950054 KG 1121, etc. (NARA문서,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 p.127 최원
  26. 안길(安吉, 1907~194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근 바뀜
자유게시판
+
-
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