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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최근 수정 : 2019년 1월 5일 (토)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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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朝鮮人民軍)은 조선로동당군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로동당의 군대지만 사실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군대로써 존재한다. 하지만 조선인민군은 로동당 규약 제46조에 "조선로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이라고 규정하여 조선로동당의 군사 조직 성격을 갖는다. 조선인민군은 육군, 해군, 공군, 조선인민군 전략군을 인민군 총참모장이 지휘하는 단일종합군체제이다. 북한에서는 인민군으로 줄여 부르며 현재는 조선로동당 산하 중앙군사위원회(위원장 김정은)의 통제를 받는다.

조선인민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안에서 인민군(人民軍) 또는 혁명무력(革命武力)으로 불린다. 대한민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군(北韓軍)이라고 불리며 한국 전쟁 당시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공산주의 국가였다는 점을 들어 북한 공산군(北韓 共産軍)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었다.

개요

징병제이며 통상 중학교 졸업생(17세)을 대상으로 징집하며, 전문학교 진학자는 졸업시, 공장·기업소 취업자는 25세 미만의 사람을 대상으로 병력 충원시 수시로 강제로 징집하고 있다. 복무연한은 종래 남자는 30세, 여자는 26세까지였으나 2001년 복무연한을 남자는 27세, 여자는 23세까지로 각 3년씩 단축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재정난으로 인해 2006년 지원제로 바꾸었다. 하지만 북한의 사회 분위기상 군대에 갔다오지 않은 남성의 경우는 혜택을 덜 받기 때문에 대부분의 북한 남성들은 군대에 지원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1]

대한민국에서의 무력침공 시에는 열세한 장비를 방대한 병력과 포병력과 특수부대로 보완하여 대한민국 영내에 전방과 후방에 대한 전격적 침공(속도전, 速度戰)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측의 전쟁 수행 능력에 타격을 주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력의 70%를 평양-원산선 이남의 전방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전쟁을 장기간 지속할 여력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대전의 수행이 불가능할 만큼 낙후된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조선 인민군은 장비확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고립된 경제적·외교적 상황으로 인해 통상전력으로 대한민국과 대등한 군비경쟁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탄도미사일, 핵무기, 화학 · 생물학 무기, 잠수함 등의 비대칭 전력에 집중하고 있다.

군인을 국가의 근간으로 한다는 "선군령도(先軍領導)"에 기반하여 인민군에 대한 대우는 한결 나아졌다. 정치, 경제, 행정의 모든 영역에서 조선인민군은 우선적인 대우를 받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군인은 각 영역에 세력을 서서히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군인들이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에 많이 진출하여 정책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 자원의 1/3을 인민군과 군수 사업에 투자하고있다.

역사

창설

1945년 10월 12일, 평양 주둔 소련 25군 사령부는 한반도 북부의 모든 무장조직의 해산을 명령하였고, 이어 10월 21일 동북항일연군을 중심으로 보안대를 조직하였는데[2] 이것이 조선인민군의 모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용군 출신은 철저히 배격되었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철도경비를 담당하는 철도 보안대를 1946년 1월 11일에 창설하였다. 또한 군내 정치사상 교육과 군사분야의 간부양성을 위해 1946년 2월 평양 학원(49년 1월 인민군 제2 군관학교로 개편)과 6월 중앙 보안간부학교(48년 12월제1 군관학교로 개편) 등의 군사 교육기관을 설립·창설하였다.

1946년 8월 15일 규모가 확대된 보안대를 통합·지도하기 위해 평양에 보안간부훈련대대부를 창설했고, 같은 날 인민 집단군 총 사령부로 개칭했다. 초대 총사령관으로는 최용건, 부사령관에는 김책이 추대되었다. 1948년 2월 4일에는 민족보위국이 설립되었고, 마침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 7개월전인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초대 총사령관은 최용건, 부사령관은 김책이었고, 1950년 김일성이 총사령관, 최용건은 부사령관이 되었다.

1947년부터 6.25전쟁 전까지의 소련의 무기 원조와 1949년 7월 동북의용군 소속의 조선인으로 구성된 164사, 166사, 독립 15사가 귀국하여 조선인민군 5사단, 6사단, 12사단을 편성함으로써 조선인민군의 전력은 크게 증강되었다. 이중 6사단의 모태가 되었던 만주의 리홍광 지대는 1945년 11월 부대 창설시에는 조선의용군 제 1지대였다. 그러던중 1946년 2월 조선인 지도자였던 리홍광의 이름을 따서 동북 만주연군 리홍광 지대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47년 동북 만주연군 요동군구 독립 제4가사 되었고, 1948년 11월에 중국 동북 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독립 제166사로 되었다가 인민군 제6사단으로 편제되었다.

6.25 전쟁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과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수립으로 분단이 기정사실화된 이후 38도선상에서는 끊임없는 무력충돌이 계속 벌어졌다. 1950년 봄까지 38도선 상에서는 소규모 병력간의 국지전이 계속 되었으며 지리산 등지의 남부산악지대에선 빨치산게릴라과 토벌군과의 전투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소련의 지원을 얻은 북한이 남침을 하면서 전쟁이 발발하였다. 개전 초 기습남침과 그에따른 국군의 준비 미약으로 조선인민군은 빠른시간내에 압도적인 전력으로 남침을 진행하였다. 이후 17개나라가 참전한 유엔군의 상륙으로 전쟁이 장기화 되였고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였다.

전후

종래 1948년 2월 8일을 창군일로 제정하여 매년 기념해오다가 1978년부터는 "항일 빨치산 투쟁전통과 연결" 한다는 명분하에 김일성이 중국에서 항일 유격대를 창설했다고 주장하는 1932년 4월 25일로 창군일을 변경하였다.[3]그러다가 2018년부터 창군일을 다시 2월 8일로 돌리게 된다.

현재

현재 조선인민군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유류나 각종 군수품의 보급이 부족하여 제대로 훈련을 실시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식량 또한 부족해 상당수의 병사들이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상태이다. 이로 인해 군 기강이 문란해져 병사들의 탈영과 민간에 대한 약탈이 빈번해지고 있고, 군관들은 그나마 보급된 자원을 횡령 · 착복하고 있는 데다가 국경지역의 북한 정치지도원들은 탈북자들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돈이 아닌 대한민국의 현금(지폐)으로 500만원을 받고 탈북을 시켜 주는 등의 부정행위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전방사단 병력은 얼룩무늬 군복을 착용한다.[4]

2010년 10월 국정감사를 통한 발표로 조선인민군은 전자전 능력도 보유하였다.[5]

규모

조선인민군은 정규군 약 119만명, 예비군 약 770만명으로 세계 3위의 병력규모를 보유하고 있고[6], 총 병력면에서는 세계 4위로 평가된다.

지휘 체계

조선인민군의 최상위 지휘기구는 국방위원회이다. 국방위원회는 전반적인 국방정책을 관장하는 '국가주권의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 1992년의 헌법 개정에 의해 헌법기관이 되었다.

국방위원회 소속에 총정치국, 총참모부, 인민무력성, 보위사령부가 있다. 총정치국은 군의 정치사상 과업을 관장하고, 군 통수권(집권자 김정은에게 명령을 받고 통솔한다)을 가지는 총참모부는 육·해·공군의 작전을 지휘·통솔한다. 북한 헌법개정으로 국방위원회 소속의 수평적 지휘체제가 됨으로써 인민무력성의 위상과 기능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인민무력성은 여전히 군의 대표기관으로서 군수, 재정 등의 군 정권을 행사한다. 보위사령부는 군내의 방첩활동을 관장한다.

조직

육군

조선인민군 육군은 약 102만 명으로, 9개의 전·후방 군단, 2개의 기계화 군단, 평양방어사령부, 국경경비사령부, 미사일지도국, 경보지도국의 총 15개의 군단급 부대로 구성되어 있다. 군단 이하의 제대는 86개의 사단과 59개의 기동여단, 10개의 교도여단으로 편성되어 있다.[6]

전차 약 4,100 대, 장갑차 약 2,100 대, 야포 약 8,500 문, 방사포(다련장 로켓) 약 5,100 문, 도하장비(K-61 / S형 부교) 약 3,000 대를 보유하고 있다.[7]

평양-원산선 이남에 총전력의 70%를 배치하고 있다. 한국전쟁(북한명:조국해방전쟁)의 교훈으로 제공권의 중요성을 인식했기에 많은 대공포(AAM)들을 전선에 집중 배치하였다. 조밀한 방공망이며 세계적인 수준이다. 대공포의 경우 평양 주위와 영변일대, 황해도 4군단지역의 밀집도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매우 높다.

한편 장사정포(170mm자행포240mm방사포)는 대한민국의 수도권 지역을 기습 선제 타격할 수 있다. 백령도 인근 장산곶과 옹진반도, 연평도 근처 강령반도의 해안가를 비롯한 장재도, 무도, 대수압도 등에는 해안포 900여문이 배치돼 있다. 군항인 해주항 일원에만 100여문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해안포는 사정거리 27km의 130mm, 사정거리 12km의 76.2mm가 대표적이며 일부 지역에는 사정거리 27Km의 152mm 지상곡사포(평곡사포)가 배치되어 있다. 또 사정거리 83~95Km에 이르는 샘릿,실크웜 지대함 미사일도 NLL 북쪽 해안가에 다수 설치됐다.

조선인민군 육군은 이라크전쟁의 전훈을 받아들여 특수전 전력의 확충과 갱도 건설과 기만기 개발로 후방지역의 생존성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현재 조선 인민군 육군의 경우 방독면을 항상 휴대하게 하고 있으며 매일 방독면을 착용한 채로 구보를 하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육군 보병부대에 저격수가 편성되어 있다.

해군

조선인민군 해군은 총 6만여의 병력 규모로 해군사령부 예하에 동해와 서해의 2개의 함대 사령부와 13개 전대 및 2개의 해상저격여단으로 구성되어있다.[6]

수상전투함정 약 420 척, 잠수함정 약 145 척, 상륙함정 약 260 척, 소해정 약 30 척, 그 외 함정 약 30 척을 보유하고 있다.[8] 전력의 약 60%가 전진배치되어 있다.

조선인민군 해군은또한 대한민국 해군보다 빈약한 해상 전력으로 주로 해상전보다는 특수전 전력과 연계한 병력의 침투·상륙 수단의 확충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해군에서 가장 큰 전력인 잠수함 전력은 특수부대의 침투지원, 기뢰 부설, 수상함 공격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 빈약한 수상전력을 보조하기 위해 함대공 미사일, 대함 미사일, 지대함 미사일과 신형 어뢰의 개발과 해안방어를 강화하는 중이다.

수상전력의 거의 대부분이 전형적인 연안해군이다.

공군

조선인민군 공군은 총 11만여 명의 병력 규모로 공군사령부의 지휘 아래 4개 비행사단과 2개 전술수송여단, 2개 공군저격여단, 지상방공부대로 구성되어 있다.[6]

질이나 숫적으로도 우세한 대한민국 공군미국 공군 때문에, 조선인민군 공군은 항공전보다는 주로 후방침투, 테러, 지상방공 역할을 하고 있다.

전투기 약 920 대, 정찰기 약 30 대, 공중기동기(AN-2포함) 약 330 대, 헬기 약 300 대, 훈련기 약 170 대를 보유하고 있다.[9]

이 중 약 40%가 평양-원산선 이남에 배치되어 있다.[6]

노후된 구형 장비들이 대다수인 전술기들은 기습공격이 가능하도록 전진배치하고 있으나, 극심한 경제난으로 훈련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실제비행훈련은 1년에 10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훈련은 한달에 1회 30~40분 가량 실시할 뿐이다.

한국 전쟁의 전훈으로 조선인민군은 방공망의 확충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SA-2 , SA-5 ,SA-18 지대공 미사일 등을 배치하였다. 방공부대는 장거리 고고도 유도 체계인 S-200을 동 · 서부에 배치하고 S-75 · S-125를 비무장지대와 동·서 해안과 평양 부근에 밀집배치하고 있다. 또한, 종래의 고정식 진지에 이동식 발사장비를 추가 배치하는 추세이다. 방공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자동화된 방공통제체계를 구축하려고 하나 예산이 천문학적으로 모자란 실정이다.

전략 로켓군

미사일지도국에서 전략로켓사령부로 바뀌었다. 규모는 기밀인데 군단급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전략 로켓군은 미사일의 개발과 생산, 작전 배치 임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10] 예하에 4개의 미사일 공장과 12개의 발사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1] 1993년 5월 로동 1호 미사일,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1호(백두산 1호) 미사일, 2006년 7월 5일 대포동 2호(백두산 2호 혹은 목성 2호)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바 있으며, 2009년 4월 5일 은하 2호 위성발사 로켓을 발사한 바 있다. 본래 미사일지도국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2012년 3월 3일 김정은이 전략로켓사령부를 시찰한 이후부터 전략로켓사령부의 존재가 알려졌다. 동년 4월 15일 열병식 부터 참여하였으며, 그 존재가 김정은의 연설로 전략 로켓군으로 공식화 되어 발표되었다.[12] 탄도미사일(재래식 탄두, 화학 탄두, 핵 탄두)을 운용한다. KN-08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엔진 성능개량 시험을 실시하였다. 몇 기를 개발했는지는 확인 할 수 없다. TEL에 탑재되어 있는데 TEL은 정찰 위성이나 레이더 탐지 사각지역에 숨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위협적인 무기체계다. 150~250여 기가 실전배치된 사정거리 1300Km의 노동 탄도 미사일의 TEL도 27~40대로 파악되고 있다. 괌을 사정권에 둔 무수단 탄도 미사일 운용부대는 14대의 TEL을 보유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수부대(제 11저격여단)

조선인민군 특수부대는 총 20만여 명의 병력 규모로 비대칭적인 전력이다. 6.25 전쟁(북한명:조국해방전쟁) 이후로 현재까지 계속 대한민국 영토에 병력을 후방으로 집중 침투시키고 주요시설을 폭파하는 등의 역할을 계속 하였다. [13]

1개 특수작전대대, 8개 항공육전여단, 2개 해상저격여단, 4개 정찰병여단, 9개 경보병여단, 군단 배속 35개의 경보병대대, 특수기동 및 지원임무를 가진 5개 혼성여단, 4개 저격여단, 여단급 핵배낭 부대 등이 있다.

예비 전력

조선 인민군의 예비전력은 총 약 770만 명이다.

참고 자료

《History of the North Korean Army》, 1952/ Hichey, Doyle 국회도서관

각주

  1. 국정원, 북한의 군 징병제도
  2. 《6.25 전쟁사 제1집 - 전쟁의 배경과 원인》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戰史編纂委員會, 2004) pp. 229~230
  3. 국정원, 북한의 군 창건 과정
  4. 북한군 전방사단 병력 '얼룩무늬군복' 착용 2010-12-28 연합뉴스
  5. [국정감사] 김태영 국방 北 전자전 능력 보유 2010-10-05 매일경제
  6. 6.0 6.1 6.2 6.3 6.4 《2008 국방백서》, 대한민국 국방부, 2009년 1월 19일
  7. 대한민국 국방부 2010년 판 국방백서 <도표 1-3> 북한 지상군의 주요 장비 현황 24쪽
  8. 대한민국 국방부 2010년 판 국방백서 <도표 1-4> 북한 해군의 주요 장비 현황 25쪽
  9. 대한민국 국방부 2010년 판 국방백서 <도표 1-5> 북한 공군의 주요 장비 현황 26쪽
  10. 대포동 발사, 김정일 직접 지시 중앙일보, 2006.07.08 04:59
  11. 〈北미사일 발사〉 北,800기 미사일 보유…발사 기지 12개 넘어, 2006.07.05 18:02
  12. 김일성 흉내내며 '김정일의 말' 한 김정은[北 김정은 첫 대중연설 김일성 스타일 따라하며 김정일式 선군정치 역설 육·해·공군과는 별도로 '전략로케트군' 첫 표현 제4군 창설한 듯… 핵·미사일 더 주력할 가능성] 조선일보, 2012.04.16 03:05
  13. Bolger, Daniel P., "Scenes from an Unfinished War: Low Intensity Conflict in Korea, 1966-1969", Leavenworth Papers No. 19, Combat Studies Institute, U.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Ft. Leavenworth, Kansas, p.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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