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유홍준(兪弘濬, 1949년 1월 18일 ~ )은 미술사 학자로 영남대 교수로 재직했다.
좌파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한자리 씩 꿰 찼다.
서울대 학생 [1] 이던 시절 간첩사건인 민청학련 사건에 연류 된 사람으로 그짝 인물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란 제목의 책을 시리즈로 간행하여 인기를 끌면서 유명해져서 노무현 정권 때 문화재 청장, 이재명 정권에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다가 논란을 일으키며 사퇴했다.
2.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은 문화유산 답사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적 일화, 인물 이야기등을 섞었으며 여기에 자신의 감상을 더해 읽는 재미를 높였다는 평가다.
90년대 부터 최근까지 30년간 문화유산 시리즈를 내면서 인지도를 높었다. 역사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독자라면 한변쯤 읽었을 책이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유적지를 직접 찾아가서 책의 내용을 확인하는 답사 문화가 확산되었다고 한다.
- 당신이 몰랐던 유홍준 관장의 모든것 ㅣ나의문화유산답사기, 그리고 33년 뒤 -채널 초판인쇄
2026년 10월 19일 국회.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고개를 숙입니다. 독립운동가의 글씨라며 박물관에 걸었던 족자는 친일파의 글씨였고, 관장 본인이 온라인 경매에서 5만 원에 산 물건이었습니다.
이틀 뒤 그는 물러납니다. 33년 전 이 사람이 쓴 책이 한국 사람들에게 남긴 말이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교수가 되지 못한 채 떠돌던 미술사가가, 원고료도 없이 월간지에 쓴 답사 연재가 1993년 5월 20일 창비에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초판 1쇄로 나옵니다. 열흘 만에 3만 부, 석 달 만에 12만 부, 이듬해 100만 부. 사람들은 책을 들고 감은사터로, 일지암으로, 소쇄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머리말 첫 인용문은 원문과 순서가 뒤집혀 있었고, 저자는 "원문을 그대로 외우지 못하고 소화한 대로 믿는 버릇"을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승일교 가처분, 호찌민과 『목민심서』, 대흥사 현판 전설, 『완당평전』 오류 200군데 — 고친 것과 안 고친 것, 기록과 전해 오는 말 사이를 따라가다 보면 2026년의 5만 원짜리 족자에 닿습니다.
책이 처음 나오던 날의 이야기, 그리고 그 책을 쓴 사람이 33년 뒤에 겪은 일까지 담았습니다.
2.1. 흥미위주의 서술과 역사왜곡 논란
다만 저자의 미술사적 해석과 문화재 평가가 널리 알려지면서, 일부 독자에게는 저자의 주관적 견해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홍준의 만담가적이고 주관적인 미술사 해석과 정치 성향이 문화재 평가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처럼 유홍준의 견해가 객관적으로 확립된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질 경우, 다른 학자들의 견해나 반대 근거가 배제되고 특정한 역사관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유홍준은 문화재 관련 이야기를 지나치게 흥미 위주의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나간다는 비판을 받는다. 재미를 좇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고증을 거치지 않은 이야기나 황당한 내용까지 섞여 있다는 것이다.
유홍준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심지어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까지 사실처럼 전달하면서 역사왜곡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러한 서술 방식 때문에 학자라기보다는 흥미 위주의 믿거나 말거나식 만담가에 가까워 보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가 잘못된 내용을 지적받더라도 해당 서술이 이미 대중 사이에서 정설처럼 자리 잡으면서 저자 본인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학계에서도 유홍준의 말을 의심하거나 검증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멌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문제인지를 지적한다.
2.2. 유홍준에 속은 문재인이 시킨 유령 공사, 임청각 복원 사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란 책에도 엉터리 내용이 많다. 유홍준이 처음 지어낸 근거없는 이야기인 일제가 안동에 철도공사를 하면서 임청각을 훼손했다는 주장을 대통령이 된 문재인이 역사적 사실로 잘못 알고 임청각 복원 지시를 내려 280억원을 들여 훼손된 적도 없는 입청각 복원공사를 벌인 것은 황당한 일이다. 당시 문화재청 관계자나 안동시도 임청각이 일제에 의해 훼손된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의 지시이니 예산을 받아 임청각 일대 정비 공사를 벌였다 한다. 이런 거짓말로 국민세금을 낭비하게 한 것은 범죄에 가깝다.
박종인의 유튜브 채널 박종인의 땅의 역사에서 제기한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의 오류 및 문재인의 당시 추진된 임청각 복원 사업 관련 전말은 다음과 같다.
- 훼손 주장의 기원: 1997년 유홍준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출간 이전에는 임청각 훼손에 대한 기록이나 말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책에 실린 내용이 사실처럼 굳어진 전설이자 창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임청각 철도 훼손설: 일제강점기 철도 부설로 인해 임청각이 반토막이 나고 오십여 칸의 부속 건물이 강제 철거당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철도로 인해 훼손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 일제의 독립운동 보복설: 철도가 임청각을 관통한 목적이 독립운동가에 대한 일제의 보복이었다는 해석은 사실이 아니며, 당시 지형에 따른 합리적인 노선 배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 99칸 대저택설: 임청각이 본래 99칸 대저택이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당시 토지 매매 및 임대 계약서 등 역사적 기록에 나타난 실제 규모는 56칸에서 68칸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 관계 기관의 실태 은폐: 문화재청과 안동시 등 관련 기관은 사업 추진 당시 임청각이 일제에 의해 훼손된 사실이 없음을 내부 회의 등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복원이 아닌 정비로 사업명을 슬그머니 바꾸어 예산을 집행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3. 중앙청 건물 철거 찬성
1995년 김영삼 정권 당시 중앙청 건물은 단지 조선총독부 청사라는 이유로 중앙청 건물을 철거하는 일이 쇼가 벌어졌는데 유홍준도 찬성했다. 중앙청 건축물의 역사적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격적으로 이뤄젔다..
김영삼은 지지율 반등을 위해서 중앙청 건물의 철거를 전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당시, 문화재나 미술사학계 내에서는 "건축사적 가치나 박물관 이전 준비 부족 등을 고려해 이전을 하거나 신축을 헌 이후에 철거해야 한다"는 신중론과 "즉시 철거해야 한다"는 찬성론이 강하게 대립했었다.
유홍준은 당시 찬성의 목소리를 냈는데, 이후 인터뷰 등에서 "총독부 건물은 당연히 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4. 광화문 현판 교체 논란
유홍준은 문화재 청장 재임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는 행동을 자주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문화제 복원은 부르는게 값인데 또 얼마나 혈세가 투입될지 두고 불 일이었다.
- 박정희 글씨의 광화문 현판을 떼 내려다 반대에 부딪히자 가난하던 시절 박정희가 시멘트 건물로 복원한 광화문을 허물고 목조로 다시 짓고 현판도 바꾸겠다며 계획에 없던 일을 벌였다.(수난의 광화문 현판 또 바뀐다, 이번이 4번째 조선일보 2018.01.31)
- 유홍준 청장 현충사는 박정희 기념관 발언 사과 한경닷컴 2005. 1. 29
- 유홍준 “현충사는 박정희 기념관 같은 곳” 발언 사과 동아일보 2005. 1. 30
- "박정희때 심은 나무" 유홍준 말에 '싹뚝' 데일리안 2005.04.28
- [횡설수설/송영언] 기억력 동아일보 2005.04.29.
- [참성단] 친일 청산 프로젝트 경인일보 2019.07.09.
5. 북한방문 북한 혁명가요 열창 논란
2005년 6월 15일 전후로 개최된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6·15 통일대축전) 행사 일환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대부분 남한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나 "적기가" 등 북한 혁명가요를 거침없이 불러 논란에 휩싸였다.
- [사설] 북 6·25영웅 기린 노래 부른 유홍준청장 조선일보 2005.06.16
- 유홍준 ‘북한노래’ 국회서도 논란 한겨레 2005-06-20
당시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6·15 통일대축전) 행사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다. 당시 유홍준도 정부 대표단 및 특별 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이런 방북인사들을 잘 지켜봐야 한다.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어떠한 행보를 이어왔는지를 말이다.
- 우리측 정부 대표단은 단장인 정동영 장관과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남측 위원장인 박병원(朴炳元) 재경부 차관,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 등 대표 9명과 임동원(林東源)ㆍ박재규(朴在圭)ㆍ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 장관 등 6명의 자문단 등으로 구성됐다
- 남측 민간대표단은 백낙청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단장으로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주암회의 김민하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현정화 여자탁구대표팀 감독 등 사회각계 인사와 백도웅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 등 종교계 인사로 이뤄졌다.
- 각 정당대표로 한명숙ㆍ원희룡ㆍ김혜경 의원이 대표단에 포함됐으며 장영달, 배기선, 유기홍, 최성, 박기춘(이상 열린우리당), 박형준, 김성조, 정문헌(이상 한나라당), 김효석(민주당), 이영순(민주노동당) 의원 등도 국회의원 신분으로 민간 대표단에 포함돼 방북한다.
6. 문화재 책임자로서는 부적격 행태
유홍준은 문화재 청장 재직시에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가장 큰 과오는 임진왜란과 6.25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은 국보1호 숭례문을 방화로 소실시킨 사건이다. 이 때문에 그는 청장에서 물러났다.[2]
이외에도 재임중에 산불로 양양 낙산사가 전소되었고 보물로 지정되어 있던 동종도 불에 녹아 사라졌다. 동종을 복원할 때는 자신의 이름을 큼직하게 박아 넣었다.
그가 공개적으로 드러낸 박정희에 대한 반감과 김일성 찬양은 문화재 청장으로서는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다. 그가 반감을 가졌던 박정희는 대통령 재임중 문화재 보호와 관리 및 복원 행정을 체계화 시켜 그 때문에 사라져 가던 수많은 문화재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그가 찬양하던 김일성은 6.25 남침 전쟁을 일으켜 무수한 문화재를 파괴하고 소실시킨 주범이다.
그가 박정희 글씨의 현판을 떼어내려고 시멘트로 복원된 건물을 허물고 목조 건물로 다시 복원한 광화문의 원래 건물도 김일성의 남침으로 불타 없어졌다. 원래의 광화문을 불태운 자는 찬양하고 복원한 사람은 저주하는 비뚤어진 그의 사고가 문화재 행정을 망쳤다.
그가 박정희를 그렇게 증오하면서도 장기간 영남대학교에 재직하며 녹을 먹은 것도 이율배반적이다.
7. 국립중앙박물관장 논란
유홍준은 이재명 정부에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으나, 개인 소장품 전시와 유물 검증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뒤 사퇴했다.
2026년 특별전에서 독립운동가 박원근의 글씨로 소개된 작품이 실제로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글씨라는 사실이 드러나 전시에서 배제되었다. 해당 작품이 현 박물관장의 개인 소장품이었다는 점에서 작품 선정 과정과 박물관의 검증 절차가 문제가 되었다.
국정감사에서는 유물의 진위 확인이 부실했던 점과 관장 개인 소장품을 공공 박물관 전시에 추천한 절차의 적절성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문제가 되자 국립중앙박물관 이름으로 사과의 글을 올리면서 세계적인 국립중앙 박물관이라는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되었다.
- 양심도 지식도 없는 관장 유홍준[박종인의 땅의 역사 278]
[박종인의 땅의 역사 278]
박종인 前 조선일보 선임기자 [펜앤초대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