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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북한군의 사정== | ==오늘날 북한군의 사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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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 | |||
* [[(한국과 미군의) 위안부]] | |||
* [[공창제 (일본군 위안부 이전까지)]] | |||
* [[위안부]] | |||
* [[위안부 (사죄와 배상 문제)]] | |||
* [[일본의 사죄]] | |||
* [[제국의위안부]] | |||
* [[제국의위안부 사건]] | |||
==각주== | ==각주== |
2020년 1월 28일 (화) 08:57 판
위안부 문제는 어느 군대에나 따라 다닌 것으로 북한 인민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해방 전 동북항일연군 시기
김일성 등 해방 후 북한 인민군의 최고 지휘부 중 다수는 만주 동북항일연군 출신들이다. 이들 군대의 여자 문제는 어떠했던가? 이들이 소련군 88여단에 복무할 때는 지휘관들은 대부분 여자 대원들과 결혼해 있었다.
잡지 《삼천리(三千里)》의 김일성 관련 기사
시인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 1901 ~ 1958)이 간행하던 잡지 《삼천리(三千里)》에는 김일성에 관련된 기사가 4건이 나온다.
- 국경의 비적수괴 김일성 회견기 (國境의 匪賊首魁 金日成 會見記) 《삼천리(三千里) 제9권 제5호》 (1937년 10월 01일)
- 귀순한 여당원과 김일성 (歸順한 女黨員과 金日成), 그의 운명(運命)은 장차 엇더케 될가 《삼천리(三千里) 제10권 제11호》 (1938년 11월 01일)
- 김일성 비중에 무장 여군(金日成 匪中에 武裝 女群), 납치(拉致)된 二十五名 무사(無事)히 돌아오다 《삼천리(三千里) 제12권 제4호》 (1940년 04월 01일)
- 김일성 등 반국가자에게 권고문, 재만동포 백오십만의 총의로(金日成 等 反國家者에게 勸告文, 在滿同胞 百五十萬의 總意로) 《삼천리(三千里) 제13권 제1호》 (1941년 01월 01일)
6.25 전쟁 시기
여정(呂政, 1925~ ?)은 본명이 강수봉이며[1], 일제의 징병을 피해 1945년 5월 만주로 도피했다가 중국 공산당원이 되어 국공내전에 참전했다. 1950년 북한으로 돌아와 6.25에 참전하고, 훈장도 받으며 인민군 소장까지 승진했다. 1959년 연안파 숙청 때 투옥되어 10년간 징역을 살고 만기 출소하여 중국으로 탈출하였다. 1990년 동아일보에 『비화(秘話) 김일성(金日成)과 북한(北韓) : 전(前) 북한군(北韓軍) 사단(師團) 정치위원 여정 수기(呂政 手記)』를 연재하여 한국에 알려졌다.[2]
그의 동아일보 연재 수기 중 4회에 6.25 전쟁 중 인민군들의 성문제는 어떠했는지 폭로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오늘날 인민군에서 여군들의 처지도 6.25 당시와 별반 다를 것없이 유사하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
- 『비화(秘話) 김일성(金日成)과 북한(北韓) : 전(前) 북한군(北韓軍) 사단(師團) 정치위원 여정 수기(呂政 手記)』 : 金聖愛(김성애)는 시종비서 女軍(여군) 출신 戰爭(전쟁) 와중 姙娠(임신)┉소문나자 극비 결혼 동아일보 1990년 5월 13일 5면[2]
오늘날 북한군의 사정
함께 보기
각주
- ↑ 여정(呂政, 1925~ ?)위키백과
- ↑ 2.0 2.1 여정(呂政), 『붉게 물든 대동강 : 前 인민군 사단 정치위원의 수기』 (동아일보사, 1991.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