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1941년 2월 16일 소련 연해주의 라즈돌노예 마을에서 태어났다. 생가 건물은 지금도 남아 있어 한국인 연해주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1942년 2월 16일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는 북한의 주장은 완전한 날조이다. 김정일의 출생은 백두산과 아무 관계도 없으며 '백두혈통'이란 말도 아무 근거없이 조작한 말이다.

지도에서 찾기

김일성 부부는 일본군의 토벌에 쫓겨 1940년 10월 23일 소만 국경을 불법 월경하여 소련으로 도주하였다. 월경 직후 국경수비대에 체포되어 얼마간 감옥에 있다가 1941년 1월 초부터 라즈돌노예 마을의 남야영(B 야영)에 머물렀다. 장남 김정일도 1941년 2월 16일 여기서 태어났다. 1942년 7월 중순 하바로프스크에서 동북쪽 70 km가량 떨어진 아무르 강변의 뱌츠코예 마을에 있던 북야영(A 야영)에 88여단이 창설되면서 김일성 가족은 남야영을 떠나 뱌츠코예로 이주하여 해방될 때까지 88여단에 머물렀다. 한국 학계에서는 김정일이 뱌츠코예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이 많으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며, 뱌츠코예는 출생지가 아니라 유년기를 보낸 곳이다.

생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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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

남야영 시절의 김일성과 김정숙 :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8권 (계승본)에 나오는 사진이다. 김일성 자필로 1941년 3월 1일 B 야영(남야영)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써 놓았다. 1941년 2월 16일 김정일 출생 13일 뒤의 사진이다. 조작된 사진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김일성 자필로 당시 그가 남야영에 있었다고 적어놓았으니 김정일이 1941년 2월 16일 남야영(하마탄, 라즈돌노예) 출생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김정일이 백두산 아닌 라즈돌노예에서 태에났다는 증거는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8권 (계승본)에 나오는 사진이다. 김일성 자필로 1941년 3월 1일 B 야영(남야영)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써 놓았다. 김일성 부부가 3월 1일에 남야영(B야영)에 있었다면 2월 16에 백두산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정일이 북한 주장대로 1941년이 아닌 1942년 2월 16일생이라 해도 1942년 1월에 김일성이 여전히 남야영에 있었다는 증거 기록이 있다. 설사 그가 1942년 생이라도 백두산이나, 뱌츠코예 아닌 라즈돌노예에서 태어난 것은 변함없다.


관광객들이 올린 김정일 생가 사진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