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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생가
최근 수정 : 2019년 8월 25일 (일) 22:46

김정일은 1941년 2월 16일 소련 연해주의 라즈돌노예 마을에서 태어났다. 생가 건물은 지금도 남아 있어 한국인 연해주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1942년 2월 16일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는 북한의 주장은 완전한 날조이다. 김정일의 출생은 백두산과 아무 관계도 없으며 '백두혈통'이란 말도 아무 근거없이 지어낸 것이다.

지도에서 찾기

김일성 부부는 일본군의 토벌에 쫓겨 1940년 10월 23일 소만 국경을 불법 월경하여 소련으로 도주하였다. 월경 직후 국경수비대에 체포되어 얼마간 감옥에 있다가 1941년 1월 초부터 라즈돌노예 마을의 남야영(B 야영)에 머물렀다. 장남 김정일도 1941년 2월 16일 여기서 태어났다. 1942년 7월 중순 하바로프스크에서 동북쪽 70 km가량 떨어진 아무르 강변의 뱌츠코예 마을에 있던 북야영(A 야영)에 88여단이 창설되면서 김일성 가족은 남야영을 떠나 뱌츠코예로 이주하여 해방될 때까지 88여단에 머물렀다. 한국 학계에서는 김정일이 뱌츠코예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이 많으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며, 뱌츠코예는 출생지가 아니라 유년기를 보낸 곳이다. 라즈돌노예의 김정일 생가는 현지인들이 잘 알고 있고,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학계나 언론에서도 북한의 눈치를 보는지 외면하고 있다.

라즈돌노예 기차역에서 큰 길(Ulitsa Lazo)을 따라 동쪽으로 800 m 정도 가서 북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서면 바로 나옴.
러시아 연해주(Primorskiy kray) 라즈돌노예(Razdol'noye) 라조 가(Ulitsa Lazo : Lazo St.) 88번지
골목 초입에서 바라본 구글 스트리트 뷰
골목길 왼편에 보이는 건물 중 안쪽이 88번지임.

생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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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올린 김정일 생가 사진

구글 맵 건물 이미지

구글 맵에도 김정일 생가 건물 사진이 많이 올라 있고, 일부에는 김정일이 태어난 집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김정일 출생지와 생가에 대한 고증

남야영 시절의 김일성과 김정숙 :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8권 (계승본)에 나오는 사진이다. 김일성 자필로 1941년 3월 1일 B 야영(남야영)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써 놓았다. 1941년 2월 16일 김정일 출생 13일 뒤의 사진이다. 조작된 사진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김일성 자필로 당시 그가 남야영에 있었다고 적어놓았으니 김정일이 1941년 2월 16일 남야영(하마탄, 라즈돌노예) 출생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일본군의 토벌에 쫓기던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방면군장 김일성은 전투 중인 상관과 동료, 부하들을 버리고, 불과 수명의 인원과 아내 김정숙을 데리고 1940년 10월 23일 소만 국경을 불법 월경하여 소련으로 도주한다. 월경 직후 국경수비대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1902-1964)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난다. 소련으로 도피한 동북항일연군 인원들은 우수리스크 인근 라즈돌노예의 남야영(南野營, Южный лагерь, B 야영)과 하바로프스크 인근 뱌츠코예의 북야영(北野營, Северный лагерь, A 야영)에 수용된다. 김일성은 1941년 1월부터 남야영에 머물다 1942년 7월 중순 북야영에 동북항일연군 인원 대다수를 수용한 88여단이 창설되면서 뱌츠코예로 이주하여 해방될 때까지 88여단에 있었다.

김정일이 백두산이 아니라 남야영이 있던 라즈돌노예에서 태에났다는 증거는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8권 (계승본)에 나오는 사진이다. 김일성 자필로 1941년 3월 1일 B 야영(남야영)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써 놓았다. 김일성 부부가 3월 1일에 남야영(B야영)에 있었다면 2월 16에 백두산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정일이 북한 주장대로 1941년이 아닌 1942년 2월 16일생이라 해도 1942년 1월에 김일성이 여전히 남야영에 있었다는 증거 기록이 있다. 주보중(周保中)의 ⟨동북항일유격일기(東北抗日遊擊日記)⟩에는 그가 뱌츠코예 마을의 북야영(A 야영)에서 1942년 1월 12일부터 1월 19일까지 남야영을 방문하고 돌아온 일을 기록하면서 거기서 김일성도 만났다고 하였다.[3] 1월에 남야영(라즈돌노예)에 있다가 2월에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애기 낳으러 눈덮인 백두산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식 밖일 뿐만 아니라 초능력을 가진 자라도 불가능하다. 설사 김정일이 1942년 생이라도 백두산이나, 뱌츠코예 아닌 라즈돌노예에서 태어난 것은 변함없다.

이처럼 김정일이 남야영(라즈놀노예)에서 태어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가 태어난 집을 특정해준 사람은 김정숙의 출산 당시 아기를 받은 조산원 엘냐이다. 김영삼 정권 시절 안기부 직원이 당시까지 생존해 있던 조산원 엘냐를 찾아가서 증언을 듣고 현지 확인을 하고 왔다고 한다.[4][5] 그러나 통일부나 안기부에서는 북한의 눈치를 보아서인지 이에 대한 어떠한 공식적인 설명도 내놓은 바가 없다. 다만 라즈돌노예 현지 사람들은 김정일의 생가를 잘 알고 있고, 많은 한인 연해주 관광객들도 그곳을 찾는다고 한다. 인터넷에 관광 다녀온 사람들이 올린 사진도 다수 있다.

지명과 명칭 유래

라즈돌노예(Раздольное, Razdol'noye)는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연해주)나데즈딘스키 군에 속하는 마을인데, 김정일이 태어날 당시의 이름은 하마탄(Хаматан, Hamatan, 蛤蟆塘)이었다[6][7]. 1920년대부터 이 지역에는 사슴 농장이 많이 생겼는데, 토착민 나나이족이 쓰던 퉁구스-만주어로 1 ~ 5 살 사이의 사슴을 뜻하는 단어 하마타나(хаматана)에서 유래한 지명이라 한다.[8][9] 라즈돌노예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우수리스크로 가는 도로와 북한 쪽에서 올라오는 도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교통의 요지이다.

우수리스크도 1957년부터 쓰이는 지명이며, 김정일 출생 당시는 보로실로프( Вороши́лов, Voroshilov, 1935~1957년)로 불렸는데, 국방상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의 이름에서 따 왔다. 남야영을 B 야영으로 부르기도 하는 것은 Вороши́лов의 B 를 딴 것이다. (러시아어 B 는 영어의 V에 해당함.) 뱌츠코예(Вя́тское, Vyatskoye)의 북야영을 A 야영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을 지나는 아무르(Амур, Amur)강의 첫 글자에서 딴 것이다.

김정일 생가는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이 살던 집

스탈린이 1937년 연해주의 한인들 지도급 인사 2천여명을 처형하고, 20만을 기차에 태워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킬 때 출발역이 라즈돌노예 역이다.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사람들은 1/3 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첫 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김정일이 태어난 집은 강제이주 당한 한인들이 남긴 빈집으로, 1940년말부터 소련으로 도주해온 동북항일연군 간부들 숙소로 이용되었다. 김일성 부부도 이런 집에 들어가 살며 김정일을 낳은 것이다. 김일성 일족은 연해주 한인들이 당한 비극의 수혜자라 할 수 있다.

김일성 주거지는, 1937년 연해주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후 빈집이 된 것을 1938년부터 소련군 장교 숙소로 이용했다고 한다. 인근 지역 택시 기사들은 ‘김일성 집’이라고 하면 주소를 보지도 않고 ‘아, 거기라면 익히 알고 있다’는 듯 두말 없이 데려다 준단다. 택시기사 뿐 아니라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
혈통 세탁을 해야 하는 북한 권력 입장에서는 이곳의 흔적을 지우고 싶겠지만 다른 나라라 쉽지가 않고, 그냥 두고 있는 상태에서는 점점 소문이 퍼질 수 밖에 없으니 눈에 가시처럼 여길 수 있겠거니 싶다.

김정일 출생지에 관한 다른 주장들

김정일의 진짜 출생지는 위에서 본 대로 라즈돌노예가 정확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가지 설이 있어왔다. 한국학계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백두산 밀영설을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88여단이 있던 하바로프스크 인근 뱌츠코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이 외에도 다소 엉뚱하지만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라는 주장도 있다.[10]

셋째는 사마르칸트설이다. 이것은 1975년 오기완이 월간 『북한』에 실린 자신의 “김정일 이야기”란 글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연락부소속의 초대소에서 일했던 할머니로부터 들은 정보를 토대로 제기한 주장이다. 대중적으로는 중국이 1980년에 『역대국제인물사전』에서 김정일의 출생지를 사마르칸트로 기록하고, 1994년에 『각국개황』에서 같은 사실을 실으면서 알려졌다.14) 현재 그 영향은 그리 크지 않고 인용빈도도 낮다.

14) 김동규,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과 김정일,” 강성윤 외, 『북한정치의 이해』 (서울: 을유문화사, 2001), pp. 177~178 참조. 사마르칸트설을 주장하는 견해로 김태서 “친애하는 지도자,” 『신동아』, 1991년 7월호; 동서문제연구소, 『북한인명사전』 (서울: 중앙일보, 1990); 『내외통신』, 1994년 7월 11일; 『경향신문』, 1994년 7월 3일 등이 있다.

사마르칸트 설은 Mark Gayn (1909–1981)[11]이 1979년경 작성한 문건에도 등장하고 있다.[12]

The following is a brief biographical sketch of Kim Chung Il:

-Born the first son of Kim Il Sung on February 16, 1940, in Samarkant, Russia. His Russian name was Shura.

-Migrated to North Korea with parents in October 1945, along with the Soviet occupation forces.

............

Mark Gayn은 1972년 북한의 초청을 받아 방북한 적이 있으므로 그때 들은 말일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사마르칸트 설은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발표되기 이전부터 나온 것이다. 다수의 한국 신문 기사들도 이를 보도하고 있다.[13][14][15][16]

하지만 김일성은 사마르칸트와는 어떤 연고도 없고, 김정일이 거기서 태어났을 가능성도 없다. 스탈린이 1937년 연해주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일과 관련해서 생겨난 잘못된 주장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김정일의 출생지에 관한 설로는 가장 먼저 나온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1970년대에는 김정일은 그다지 주목받던 인물도 아닌데다 그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고, 김일성이 해방 전 소련군 88여단에 있었다는 것도 잘 몰랐다.

빨치산 여대원 김선(金善)의 증언

김정숙의 동료 빨치산 여대원 김선(金善, 1920~?)은 재일 한국인 논픽션 작가 김찬정(金賛汀)에게 한 증언에서 김정일은 1942년 2월 16일 하마탄의 남야영 인근의 병원에서 태어났다고 했다.[6] 그러나 김선은 다른 증언에서는 김정숙이 당시 여자 아이를 낳았는데 일찍 죽었다고 했다.[17] 뿐만아니라 1997년 3월 정창현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은 김정일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직접 보거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였다.[18] 따라서 김선의 증언은 김정일의 출생지를 아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재덕(李在德, 1918~?) 등 다른 빨치산 여대원들의 1990년대에 나온 후일 증언도 역시 믿을만하지 않다.[19]

김정일의 출생 연도

김정일은 실제로는 1941년 2월 16일 생이나, 후계자로 결정된 1981년 무렵부터 1912년생인 김일성과 소위 꺾어지는 해(5년 단위로 크게 기념하는 해)를 맞추기 위해 생년이 1942년이라고 조작하였다. 조선중앙방송은 1981년 2월과 1982년 2월 2년 연속으로 김정일 40회 생일 방송을 내보냈다고 한다.[20][21][22] 이어 1984년 발간 된 김정일의 전기 <김정일 지도자>에서 ‘백두산의 항일유격대 밀영에서 탄생했다”고 처음으로 언급하며 김정일의 출생지를 백두산 밀영으로 못 박고 있다.[23]

1975년에 발표된 오기완의 논문 ‘김정일 이야기(월간 『북한』, 1975)’ 및 1980년에 발행된 중국의 ‘역대 국제 인물사전’에는 김정일의 출생연도가 1941년으로 기록돼 있다.[17] 이런 기록들은 북한이 김정일의 생년이 1942년이라고 주장하기 이전의 것이므로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과 같은 인물이 나이 40이 넘어서 생년이 바뀐다는 것은 조작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백두산 밀영

북한은 1984년부터 김정일의 출생지가 백두산 밀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함께 보기

각주

  1. 『건국 70주년 2만리 역사기행』③폐허가 된 김일성 유적 자유일보 2018-08-16
  2. [포토] 북한 김정일 실제 출생지, 러시아 라즈돌리노예 연립주택 뉴데일리 2019-01-09
  3. 주보중(周保中), ⟨동북항일유격일기(東北抗日遊擊日記, 1991年 人民出版社)⟩ p.644의 1942년 1월 12일자부터 이어지는 남야영 방문 당시의 일기.
  4. 김정일이 실제 출생한 방의 위치
  5. [황호택 칼럼] 유라의 탯줄을 길게 자른 조산원 엘냐 동아일보 2015-08-05
  6. 6.0 6.1 "金正日(김정일) 출생지는 蘇(소)「하마탄」마을" 동아일보 1992.06.13 9면 : 재일 한국인 논픽션 작가 金賛汀(김찬정)씨와 증언자 金善(김선) 여사
  7. 抗联余辉 北京日报 2014-01-14: 남야영(南野营)은 블라디보스톡(海参崴)과 우수리스크(雙城子) 사이에 있는 작은 기차역(小火车站) 부근의 현지인들이 하마탕(蛤蟆塘)이라 부르는 곳에 위치했다. (南野营位于海参崴与双城子之间的一个小火车站附近,当地人称蛤蟆塘。/ 南野營位于海參崴與雙城子之間的一个小火車站附近,當地人稱蛤蟆塘。)
  8. 하마탄 지명 유래 (러시아어)
  9. Первое знакомство с Раздольным 30.06.2014, автор Ксения Амельшина: 구글 영역 The first acquaintance with Razdolniy 30/06/2014 , author Xenia Amelshina
  10. 이수석, 김정일연구에 대한 비판적 고찰: 기존 쟁점들을 중심으로 統一問題硏究 2004년 하반기호 (통권 제42호) p.86
  11. an American and Canadian journalist, who worked for The Toronto Star for 30 years. He traveled to Korea while head of the Chicago Sun's Tokyo Bureau in 1945~1946. Mark Gayn은 1972년에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12. Mark Gayn Papers, MS Coll. 215 / Series 5: Subject Files / Folder 12: Biographical Material. Kim Il Sung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p.20
  13. 김정일 권력승계 언제, 어떻게 - 시사저널 1990. 4. 15
  14. 81년부터 「권력」전면에 부상/후계승계 김정일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1994. 7. 9.
  15. [김일성사망] 국제사회 '분석불가능한 인물'..김정일은 누구 한국경제 1994.07.10
  16. 北 김정일은 어떤 인물인가 한국경제 2003. 9. 3
  17. 17.0 17.1 완전해부 인간 김정일 미스터리 : '少年 김정일'을 둘러싼 7가지 미스터리 신동아 2000년 08월호 / 491호 (pp.122~131)
  18. 김정일 연구 (통일부, 1999.12) p.8
  19. “북한 김정일 출생지 조작”/북경거주 유모 이재덕씨 첫 증언 중앙일보 1991.10.04 / 1면 ◎“백두산 태생”은 거짓 / 원래 소 하바로프스크서 출생
  20. (김씨 왕조의 실체) 김정일 출생을 둘러싼 비밀 자유아시아방송 2009-11-16
  21. 말썽꾸러기 김정일은 어떻게 최고통치자 됐나? 데일리NK 2011.06.12
  22. 김정일의 생애와 숨겨진 비밀 자유아시아방송(RFA) 2017-04-18
  23. 23.0 23.1 김정일 출생(1941.2.16) DailyNK - 200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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