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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밀영
최근 수정 : 2019년 10월 13일 (일) 20:46

백두산 밀영(密營)은 북한이 조작한 김정일의 출생지로 양강도 삼지연군 백두산밀영노동자구 소백수골에 있다.

김정일의 출생

북한은 김정일이 1942년 2월 16일 백두산 밀영에서 김일성과 김정숙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생년과 출생지는 모두 조작이다. 남한의 친북학자들도 차마 그의 출생지가 북한 주장대로 백두산 밀영이라고 하지는 못하나, 생년은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서 1942년생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실제로는 1941년 2월 16일 생이나, 후계자로 결정된 1981년 무렵부터 1912년생인 김일성과 소위 꺾어지는 해(5년 단위로 크게 기념하는 해)를 맞추기 위해 생년이 1942년이라고 조작하였다. 조선중앙방송은 1981년 2월과 1982년 2월 2년 연속으로 김정일 40회 생일 방송을 내보냈다고 한다.[1][2]

이어 1984년 발간 된 김정일의 전기 <김정일 지도자>에서 ‘백두산의 항일유격대 밀영에서 탄생했다”고 처음으로 언급하며 김정일의 출생지를 백두산 밀영으로 못 박고 있다.[3] 그러나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출생했다는 주장은 1976년경부터 이미 나오기 시작했으며[4], 1982년 기사들에도 보인다.[5][6]

이코노미스트 (1982년 3월 16일자)[6] : 北韓(북한)에서 金正日(김정일)에 대한 개인숭배가 대단하나 모래로 쌀을 만든다는 정도의 金日成(김일성) 개인숭배에 까지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어 金正日(김정일)은 아직은 金日成(김일성의 창백한 반사체에 불과하다.

1942년 2월 16일은 北傀(북괴)의 경우 우주적 의의를 지닌 날이었다. 바로 그날 신성한 산속에 있는 비밀진지에서 金日成(김일성)의 한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40년 뒤 그 아들은 성장하며 嚮導星(향도성)이 되었다.

올해 金正日(김정일)의 생일은 「北韓(북한) 주민의 최대 祝日(축일)」로 기념행사를 가졌으며 1주일후 송림지구 유권자들은 1백% 대의원 선거에 참가하여 金正日(김정일)에게 1백%의 지지표를 던졌다.

1976년부터 김정일의 생일 2월 16일이 휴무일로 지정되었다.[7]

황장엽은 한국 망명 후에 김일성이 김정일의 출생지를 백두산으로 조작하는 구체적 과정을 폭로한 바 있다.[8][9]

다음은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1942년 2월 16일에 <광명성>으로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김일성이 1940년 이후부터는 소련 땅으로 넘어가 88특수여단에서 소련군 대위로 복무하면서 김정숙과 결혼하여 김정일을 낳았고, 그 이름을 소련식으로 <유라>라고 불렀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처음에 김일성도 부인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빨치산투쟁 역사의 왜곡이 성과를 거두는데 따라 김일성과 김정일의 욕망은 더 크게 자라났다. 그리하여 김정일은 1942년에 백두산 밀영에서 낳았다는 전설을 만드는 데로 한 걸음 더 전진하게 되었다.

삼지연 휴양소에 가서 휴양하고 있던 김일성은 어느 날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을 불러 김정일이 탄생한 백두산 밀영자리를 찾아내라고 과업을 주었다. 그들이 없는 것을 찾아 낼 수 없는 것은 뻔하다. 그렇게 되자 김일성은 아무래도 내가 직접 찾아내야 하겠다고 하면서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내어 여기가 밀영지였다고 지적한 다음, 그 뒷산을 <정일봉>이라고 이름지어 주었다.

당중앙의 당역사연구소에서는 거대한 화강석 바위를 구해 다가 거기에 엄청나게 큰 글자로 <정일봉>이라고 새기고, 그것을 산봉우리에 올려다 붙이는 어려운 공사를 진행하였다.[10] 그리고 그 밑에 <백두산 밀영 고향집>이라는 것을 건설해 놓고[11], 이 집에서 김일성과 김정숙이 같이 살면서 사령부를 표시하는 붉은 깃발을 띄우고 빨치산 투쟁을 지도하였으며, 김정일은 여기서 태어나 빨치산들의 총소리를 들으며 자라났다고 선전하게 되었다. 김일성이 1940년말에 소련 땅에 넘어갔다가, 1945년 9월에 처음으로 평양에 들어왔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인데 어떻게 1942년에 백두산 밀영에서 김정일을 낳았단 말인가.

김정일의 출생지를 백두산으로 조작한 것은 김일성 일족을 소위 백두혈통이라고 꾸며대어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이다.

6.25 전쟁 중인 1951년 3월 1일에 부산의 국제신보는 체포된 김일성의 전속 간호사 조옥희(趙玉姬)[12]의 증언을 보도하는데, 김일성의 자녀로 11세된 아들 김유나(Kim Yu-na), 5세인 딸 김경자(Kim Kyong-cha)가 있다고 하였다.[13] 이로보아 김정일은 한국전 당시까지도 소련식 이름인 김유라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1960년 7월 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비로소 김유라에서 김정일로 개명했다는 증언도 있다.[14] 그가 어릴 때 소련식 이름을 쓴 것은 분명하며, 이는 그가 백두산 아닌 소련에서 태어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선 땅 백두산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소련식 이름을 붙일 이유는 전혀 없지 않은가?

북한이 조작한 김정일의 출생지 백두산 밀영과 정일봉

북한이 날조한 김정일 생가는 백두산의 양강도 삼지연군 백두산밀영노동자구 소백수골에 있다.

정일봉은 백두산에서 남동쪽으로 16㎞ 떨어진 해발 1793m의 봉우리로 이곳에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귀틀집이 있다. 원래는 장수봉이라 불렸으나 1988년에 김정일(金正日)의 출생을 기념하여 명칭을 바꾸었다. 북한당국은 화산암으로 된 정일봉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 어렵게 되자 높이 7m, 너비 6.5m, 무게 100t 이상의 거대한 화강암 세 개에 각각 '정' '일' '봉' 세 글자를 음각으로 새겨 넣었다. 이 때문에 정일봉 글자는 멀리서도 선명하게 눈에 띈다.


가짜 김정일 생가 주변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귀틀집 주변에는 유격대원의 병영 등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17]

밀영들은 유격대원의 병영, 무기수리소, 재봉소, 병원, 출판소, 연락소 등이 있었는데 그 당시의 모습을 복원한 듯 보였다. 사령부 안에는 김일성 김정숙 내외와 아들 김정일 소년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고, 거기서 조금 떨어진 유격대원 병영 안 머리맡에는 소총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병영 안에 곳곳에는 가재도구들과 다음의 글들이 붙어 있었다.

“모두 다 조선혁명의 심장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모두 다 공부하자 지식은 황금보다 유력하다”

“우리는 항일주력군 조선혁명 책임진 자각 잊지 말자”

백두산 밀영 강제 참배

일제가 강요한 신사참배도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며칠씩 행군시키며 들들 볶지는 않았다. 문재인이 이런 김씨일족의 대변인 노릇하며 토착왜구 타령하는 것은 정신착란을 의심케한다.[18] 김가네를 옹호하는 자는 토착왜구보다 못한 토착 빨갱이일 것이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백두산 삼지연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백두산 혁명전적지구에는 청봉숙영지, 건창숙영지, 베개봉숙영지, 리명수숙영지, 무봉숙영지 등 7개 숙영지가 있고 가장 유명한 백두산 밀영에는 김정일이 출생했다는 귀틀집이 있다.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 사용했다는 '3호 밀영', 김일성이 묵었다는 '사령부 귀틀집', 경위대 대원들이 이용한 '경위대병실', 작식(作食)대 시설 등 엄청난 규모의 전적 및 사적시설들이 건설돼 관리되고 있다.

특히 이곳에는 1000여점의 ‘구호나무’들도 있다. ‘구호나무’는 김일성 빨치산 대원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나타낸 구호를 새겼다는 나무를 말한다.

북한은 해마다 노동당 간부, 군인, 학생, 주민들을 동원하여 혁명전적지 답사 행군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가기관인 혁명전적지답사총국을 만들어 김일성과 김정일 우상화에 매달려 왔다.

백두산의 삼지연에는 거대한 김일성 동상이 세워져 있고, 주변에 봉화탑 등 각종 우상화물이 만들어져 있는데, 삼지연대기념비라 하며, 김정일 출생지를 백두산으로 조작하기 이전인 1979년에 세워졌다.[20]

김정일 생가라 주장하는 백두산 밀영(마크된 곳)의 북서쪽에 천지, 남동쪽에 삼지연이 보인다.


삼지연대기념비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결정되기 전인 1979년 건설되어 김정일과 관련된 조형물이 하나도 없는 관계로 기존의 김일성 동상등을 모두를 헐어내고, 김일성, 김정일 둘 다를 기념하는 조형물을 다시 설계하여 공사를 하는 중이라 한다.[20]

함께 보기

참고 자료

각주

  1. (김씨 왕조의 실체) 김정일 출생을 둘러싼 비밀 자유아시아방송 2009-11-16
  2. 말썽꾸러기 김정일은 어떻게 최고통치자 됐나? 데일리NK 2011.06.12
  3. 김정일 출생(1941.2.16) DailyNK - 2005.02.16
  4. 김정일 생일 맞아|조총련, 축하집회 중앙일보 1976.02.20 종합 1면
    金正一生日祝賀(김정일생일축하) 朝總聯集會(조총연집회)열어 1976.02.20 동아일보 1면
  5. [사건으로 보는 북한] 82년 김정일 백두산출생 신화 NK조선 2002-03-09 : 생모 김정일 낳을 때 소련병영에 머물러 / 김정일 본인 40회 생일 앞두고 출생설 조작
  6. 6.0 6.1 英(영)신문 「金日成父子(김일성부자) 우상화」연쇄보도 1982.03.17 경향신문 4면
  7. 金正一(김정일)의 生日(생일)을 休務日(휴무일)로 1976.02.24 동아일보 3면
  8. 황장엽 강좌 / 민주주의철학강좌, 북한의 인권문제 (3) : ① 김일성. 김정일 <혁명역사>의 과장과 위조 : (사) 북한민주화위원회
  9. <김씨 일가의 실체> 김정일의 출생 자유아시아 방송 (RFA) 2011-02-15
  10. “정일봉은 고향집에서 216m…신비스러워” DailyNK - 2011.02.16
  11. 김정일의 생애와 숨겨진 비밀 자유아시아방송(RFA) 2017-04-18
  12. 金日成 전속 간호부 趙玉姬, 체포 후 기자회견 부산일보 1951년 03월 01일
  13. NORTH KOREAN AGENTS CONFIRM DEATH OF SOVIET MILITARY ADVISOR AND ILLNESS OF KIM IL-SONG REPORT May 11, 1951 : CIA 문서
  14. '少年 김정일'을 둘러싼 7가지 미스터리 신동아 2000년 8월호
  15. 김정일 생가 찾은 조선인민군 연합뉴스 2014.06.14
  16. “남북 정상 백두산 방문, 일주일 전 준비” RFA 2018-09-20
  17. 독립군의 요새 백두산 밀영에 가다 : 2005 민족문학작가대회 참가기(12) 백두산 삼지연 밀영 오마이뉴스 2005.08.27
  18. 靑, 조선일보에 “토착왜구 같은 시각, 한심하다” - 미디어오늘 2019. 6. 28
    곽상도 "文, 친일파 유족 소송에 변호인 참여…토착왜구라는 증거" 뉴시스 2019-07-29
  19. 김정일의 생애와 숨겨진 비밀 자유아시아방송(RFA) 2017-04-18
  20. 20.0 20.1 북, 삼지연에 김일성·김정일 동상 건설 자유아시아방송 (RFA) 2016-08-11
  21. Kim Jong-Un planning to 'purge' one of North Korea's most powerful figures after records show HE is the rightful heir to the communist state ahead of Kim Jong-Il's son dailymail 2 April 2014
  22. 보천보에 세워진 김일성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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