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시프 스탈린 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Ста́ли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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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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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878년 12월 18일 | ||||||||||||||||||||||||||||||||||||||||||||||||||||||
출생지 |
소련 그루지야 인민자치식민주 고리 | ||||||||||||||||||||||||||||||||||||||||||||||||||||||
사망일 |
1953년 3월 5일 (74세) | ||||||||||||||||||||||||||||||||||||||||||||||||||||||
사망지 |
소련 러시아 SFSR 쿤체보 | ||||||||||||||||||||||||||||||||||||||||||||||||||||||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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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Ста́лин, Joseph Vissarionovich Stalin, 1878~1953)은 소련의 독재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인물 중 하나이다. 1945년 8월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한 후 자신들이 교육시켜 데려온 꼭두각시 진지첸(Цзин Жи Чен, 김일성) 대위를 내세워 그에게 최고 권력을 안겨주어 유사이래 없는 극악한 세습 전제왕조를 만드는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다.
생애
- 이오시프 스탈린 (1878~1953) - 위키백과
- Joseph Stalin (1878~1953) - Wikipedia
- Item #171 쓰딸린 사진 자료(외) : 북한에서 간행한 스탈린 화보
연해주 한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스탈린이 한국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시발점이 1937년 가을 연해주의 한인 지도자급 인사 2천여명을 처형하고, 20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킨 것이다. 강제로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한인들은 첫해 겨울 추위와 굶주림으로 1/3 이 사망했다.
-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 1937년 가을
남북한 분단, 김일성 발탁, 북한 공산화, 6.25 남침의 설계자
스탈린은 한반도 분단과 북한 공산화 및 6.25 남침 전쟁의 실질적 총책임자이다. 그가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선정하여 한국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쳤고, 북한 김일성 일족의 전체주의 사교 체제도 그 결과이다. 스탈린이 한국인들에게 끼친 피해는 일제통치의 피해보다 몇배 더 크다.
- 스탈린이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발탁하는 과정
- 스탈린 지령문 : 1945년 9월 20일
- 소련군이 점령한 북한 지역에 부르조아 민주정권을 수립하라는 지령 : 소련은 처음부터 한반도를 분할 지배할 계획이었다는 증거.
- 이지수, 북한 정치체제에 드리워진 스탈린의 그림자 중소연구(中蘇硏究) 제39권 제3호, 2015 가을. pp. 351~377
-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보낸 지령문 (이승만 기념관)[1]
- 1948년 4월 12일자 문건. "김일성 동무에게 보내는 충고"
- 1948년 4월 24일자 문건. "조선의 헌법문제에 대하여"
그는 김일성의 남침전쟁을 승인하고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중공군의 참전까지 독려했다. 1951년봄부터 전선이 38선 부근에서 교착되자 김일성과 중공군은 조기 휴전을 열망하지만 스탈린은 미국을 한국 전선에 붙잡아 두어 유럽쪽에 신경쓰기 어렵게 만들려고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1953년 3월 스탈린이 돌연 사망하자 불과 4개월 후 휴전협정이 타결되었다.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바친 막대한 양의 선물
김일성은 1949년 2월 22일부터 약 한 달 가까이 모스크바에 머물며 스탈린 등과 회담을 하고, 대북지원과 남침전쟁 승인을 요청했다고 한다. 스탈린에게는 막대한 양의 선물을 가져가서 바쳤다는 것이 당시 북한이 제작해 소련측에 제공한 선물 도해집의 발굴로 밝혀졌다.
- [단독]스탈린에 바친 김일성 꽃병…1.5조원 6·25 전쟁자금 됐다 중앙일보 2022.02.22
이는 아마도 스탈린이 무명의 일개 소련군 대위에 불과했던 김일성 자신을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 발탁해 주고, 소련군을 동원해 집권기반을 튼튼히 다져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을 것이다.
6.25 전쟁 중인 1952년 11월에도 스탈린의 건강을 위해 인삼 뿌리 15 상자 등 다량의 선물을 보냈다.
- They were going to treat the leader with alternative medicine methods, but they did not have time by the spring of 1953.
- 14. См. публикацию этих документов 2008 г.: Вождь и культура. Переписка И. Сталина с деятелями литературы и искусства, 1924-1952, 1953-1956 / сост. В.Т. Кабанов. М., 2008.
- (14. See the 2008 publication of these documents: Leadership and Culture. Correspondence of I. Stalin with figures of literature and art, 1924-1952, 1953-1956 / comp. V.T. Kabanov. M., 2008.)
스탈린 때문에 북한서 일어난 희극
박갑동(朴甲東, 1919~ )의 증언이다.[2]
그러나 김일성은 스탈린이 사망하자 노동당과 내각의 명의로 전체 인민에게 고하는 특별 메시지를 발표, 스탈린 사망을 전민족적으로 애도하라고 명령했다.
박갑동(朴甲東, 1919~ )의 또 다른 증언.[3]
「쓰타린」 대원수로 써야하는 것을 「쓰라린」 대원수로 교정을 잘못 보아 처벌을 받았다는데, 실수라기 보다는 다분히 고의적이었던 것 같다. 북한에서는 한때 친한 사람들끼리 스탈린을 「쓰라린」 대원수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1959년 남한으로 귀순한 한재덕(韓載德, 1911~1970)도 함남인민보(咸南人民報)의 주필이 「쓰타린」 대원수를 「쓰라린」 대원수로 한 글자를 오식(誤植)한 죄로 철직(撤職)되고 내무서 신세를 졌다고 증언했다.[5]
스탈린의 대숙청
- [스칼라튜] 스탈린 사망 60년 후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RFA 2013-03-05
1937년과 1938년에 구 소련에서 ‘대숙청’이라 불리던 대학살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스탈린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소련 공산당원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고, 농민과 소수민족을 탄압했으며, 주변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까지 간첩 혐의로 수용소에 수감해 학살했습니다. 사상자 수는 공식적으로 68만1천692 명이지만, 실제로는 2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기밀시효가 해제된 구 소련 문서에 따르면, 1937년과1938년에 소련의 비밀경찰(NKVD)이 154만8천367 명을 구속했고, 이 중 68만1천692명이 총살되었습니다.
1939년9월 히틀러가 주도한 나치 도이췰란드와 스탈린이 주도한 소련이 뽈스까를 침략하면서 제2차세계대전은 시작되었습니다. 뽈스까에서 도이췰란드와 소련은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면서 끔찍한 전범을 저질렀습니다. 1940년 4월 스탈린의 명령으로 악명 높은 구 소련 비밀경찰(NKVD)이 스몰렌스크 인근의 산림 지역인 ‘카틴 숲’에서 전쟁 포로로 붙잡힌 뽈스까 장교 2만 2천여명을 살해했습니다.
- <독재자의종말>1.요시프 스탈린 중앙일보 1994.07.22
스탈린의 숙청행각은 그의 오른팔로 후계자설까지 나돌던 키로프레닌그라드市 당서기가 34년12월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본궤도에 오르게 된다.스탈린은 숙청의 안테나이자 하수인인 비밀경찰조직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었다.숙청은 37~38 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기간 동안 赤軍간부 최고군사회의 멤버의 75%,군사령관 15명중 13명,군단장 85명중 62명,사단장 1백95명중 1백10명,대령이상 고급장교 65%가 체포됐다.
체포된 고급장교 6천여명 가운데 1천5백여명이 처형되고 나머지는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졌다.피의 숙청을 현장지휘했던 야고다도 스탈린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한다.참고 자료
- 드미트리 볼코고노프(Dmitri Volkogonov, 1928~1995)[6][7] 저, 洪晟太 역, 스탈린 한국전략문제연구소 KRIS 총서 1993.06
- 가브릴 코로트코프(Gavril Korotkov, 1925~ ) 저, 어건주 역, 《스탈린과 김일성 (권1, 권2)》 (동아일보사, 1992, 1993)
- 스탈린과 김일성. 1/ 가브릴 코로트코프 지음 서울 : 동아일보사, 1992 - 국립중앙도서관
- 스탈린과 김일성. 2/ 가브릴 코로트코프 지음 서울 : 동아일보사, 1993 - 국립중앙도서관
각주
- ↑ 안드레이 란코프 (엮음) 지음, 전현수 옮김, 『소련공산당과 북한 문제 : 소련공산당 정치국 결정서(1945∼1952)』 경북대학교출판부, 2014년 08월 20일
- ↑ 박갑동(朴甲東, 1919~ ), 환상의 터널 그 시작과 끝 : 165 중앙일보 1990.11.21 종합 9면
박갑동(朴甲東, 1919~ ), 『통곡의 언덕에서 : 남로당 총책 박갑동의 증언』 (서당, 1991년) p.409 - ↑ 박갑동(朴甲東, 1919~ ), 환상의 터널 그 시작과 끝 : 170 중앙일보 1990.12.06 종합 5면
박갑동(朴甲東, 1919~ ), 『통곡의 언덕에서 : 남로당 총책 박갑동의 증언』 (서당, 1991년) p.422 - ↑ 이정윤(李廷允, 1897~?)
- ↑ 나는 共產主義(공산주의)를 告發(고발)한다 大韓民國(대한민국)의 품안에 들면서 (1) : 韓載德(한재덕) 1959.04.10 동아일보 3면
- ↑ 러 역사학자 볼코고노프 장군 영면 - 조선일보 1995. 12. 7
- ↑ [격동의 모스크바 이야기]...(5-1) 한국전쟁 진실 밝힌 두 러시아인 뉴스핌 2019년 0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