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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스탈린
최근 수정 : 2019년 7월 19일 (금) 05:35

(스탈린에서 넘어옴)

이오시프 스탈린(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Ста́лин, 1878~1953)은 소련의 독재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인물 중 하나이다. 1945년 8월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한 후 자신들이 교육시켜 데려온 꼭두각시 진지첸(Цзин Жи Чен, 김일성) 대위를 내세워 그에게 최고 권력을 안겨주어 유사이래 없는 극악한 세습 전제왕조를 만드는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다.

생애

연해주 한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스탈린이 한국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시발점이 1937년 가을 연해주의 한인 지도자급 인사 2천여명을 처형하고, 20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킨 것이다. 강제로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한인들은 첫해 겨울 추위와 굶주림으로 1/3 이 사망했다.

남북한 분단, 김일성 발탁, 북한 공산화, 6.25 남침의 설계자

스탈린은 한반도 분단과 북한 공산화 및 6.25 남침 전쟁의 실질적 총책임자이다. 그가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선정하여 한국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쳤고, 북한 김일성 일족의 전체주의 사교 체제도 그 결과이다. 스탈린이 한국인들에게 끼친 피해는 일제통치의 피해보다 몇배 더 크다.

소련군이 점령한 북한 지역에 부르조아 민주정권을 수립하라는 지령 : 소련은 처음부터 한반도를 분할 지배할 계획이었다는 증거.
1948년 4월 12일자 문건. "김일성 동무에게 보내는 충고"
1948년 4월 24일자 문건. "조선의 헌법문제에 대하여"

그는 김일성의 남침전쟁을 승인하고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중공군의 참전까지 독려했다. 1951년봄부터 전선이 38선 부근에서 교착되자 김일성과 중공군은 조기 휴전을 열망하지만 스탈린은 미국을 한국 전선에 붙잡아 두어 유럽쪽에 신경쓰기 어렵게 만들려고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1953년 3월 스탈린이 돌연 사망하자 불과 4개월 후 휴전협정이 타결되었다.

스탈린 때문에 북한서 일어난 희극

박갑동(朴甲東, 1919~ )의 증언이다.[1]

53년 3월 5일 세계 공산당을 장악하고 있던 악당 스탈린이 사망했다. 북로당원 가운데도 스탈린 사진을 짓밟으면서 『이 새끼가 10년만 일찍 죽었더라면 우리 조선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욕을 퍼붓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스탈린이 사망하자 노동당과 내각의 명의로 전체 인민에게 고하는 특별 메시지를 발표, 스탈린 사망을 전민족적으로 애도하라고 명령했다.

박갑동의 또 다른 증언.[2]

이우락은 경남도당 군사부에서 일하다가 체포되어 죽었고 정태식은 박헌영을 반대하고 김일성을 지지하던 이정윤(李廷允, 1897~?)[3] 밑에 있었으나 6·25 후 내가 그를 해방일보 교정부에 넣어주어 해방일보가 로동신문에 흡수된 후 로동신문의 교정부장까지 되었으나 스탈린을 「쓰라린」이라고 교정을 잘못 본 부하의 탓으로 5년의 형을 받았다.

「쓰타린」 대원수로 써야하는 것을 「쓰라린」 대원수로 교정을 잘못 보아 처벌을 받았다는데, 실수라기 보다는 다분히 고의적이었던 것 같다. 북한에서는 한때 친한 사람들끼리 스탈린을 「쓰라린」 대원수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각주

  1. 박갑동(朴甲東, 1919~ ), 환상의 터널 ­그 시작과 끝 : 165 중앙일보 1990.11.21 종합 9면
    박갑동(朴甲東, 1919~ ), 『통곡의 언덕에서 : 남로당 총책 박갑동의 증언』 (서당, 1991년) p.409
  2. 박갑동(朴甲東, 1919~ ), 환상의 터널­ 그 시작과 끝 : 170 중앙일보 1990.12.06 종합 5면
    박갑동(朴甲東, 1919~ ), 『통곡의 언덕에서 : 남로당 총책 박갑동의 증언』 (서당, 1991년) p.422
  3. 이정윤(李廷允, 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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