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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지령문
최근 수정 : 2018년 10월 3일 (수) 07:55

스탈린 지령문은 스탈린이 1945년 9월 20일 소련군이 점령한 북한 지역을 통치 관리하기 위한 지침을 관련 기관에 내려보낸 비밀 전문이다. 북한 지역에 부르조아 민주정권을 세우라는 지령이 들어있어 소련이 처음부터 북한을 분할하여 단독 정권을 세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명시적 증거이다.

지령문의 내용

스탈린(소련군 최고사령관)과 안토노프(Aleksei Antonov, 1896 -1962) 군참모총장은 1945년 9월 20일 바실레프스키(Aleksandr Vasilevsky, 1895~1977) 극동군 총사령관과 연해주 군관구 군사평의회(군사위원회, Military Council), 북한을 점령한 제25군 군사평의회에 소련군의 북한점령에 따른 소련군 최고사령부의 「7개항 지시」가 담긴 지령문을 암호 전보로 내려보냈다.[1][2][3]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북한에서 소련군 부대와 지방정권기관 및 주민과의 상호관계에 대해 소련 극동사령관, 연해주군관구 군사회의와 제25군에 내린 소련군 최고사령관의 지시>

1945년 9월 20일

  1. 북한 영토 안에 소비에트 및 소비에트 권력의 다른 기관을 수립하지 말고 소비에트 제도를 도입하지 말 것.

  2. 모든 반일(反日) 민주주의정당·단체의 광범한 동맹에 기초하여 북한에 부르주아민주주의 권력을 수립하는 데 협력할 것.

  3. 붉은 군대가 점령한 한국 땅에서 반일(反日) 민주주의 정당·단체 결성을 방해하지 말고, 그들의 사업을 도와줄 것.

  4. 지방 주민에게 아래와 같이 홍보할 것.
    가) 붉은 군대의 북한 진주는 일본 강점자를 섬멸하는 것이 목적이며 한국 영토를 탐내거나 소비에트식 질서를 부식시키자는 것이 아님.
    나) 북한 인민의 개인적, 사회적 소유는 소련군 당국의 보호를 받음.

  5. 지방주민들에게 자신의 평화적인 사업을 계속하도록 호소하며 그리하여 공업, 상업, 교통 및 기타 기업들의 정상 가동을 도모하고 소련군 당국의 지시와 요구에 응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협력해 주도록 알릴 것.

  6.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 장병들에게 군기를 엄격히 지키고 주민을 괴롭히지 말며 행동을 잘 하도록 훈시(訓示)할 것. 종교 예식 수행과 행사 등을 방해하지 말고 사찰과 기타 종교시설에 손대지 말 것.

  7. 북한의 민간행정에 대한 지도는 연해주군관구 군사평의회에서 수행할 것.

스탈린 (И. Ста́лин)
안토노프 (Анто́нов)

(러시아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ЦАМОРФ), 문서군(Фонд) 148, 목록(описЬ) 3763, 문서철(дело) 111, 92∼93쪽).

공개되는 과정

이 지령문의 존재는 소련과학아카데미 산하 동방학연구소가 1981년 간행한 《소련과 북한 관계 (1945-1980)》[4]에 처음 실리고, 국토통일원이 1987년 이 책을 번역 간행하면서[5] 처음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는 핵심적인 내용인 1, 2, 7항이 삭제된 채 나머지 4개항만 공개되었다.


전체 내용은 소련 붕괴 후 일본 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이 입수하여 1993년 2월 26일자 조간에 번역 보도하면서 알려졌다.[2][6] 이때 비로소 2항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당시 스탈린이 북한에 부르조아 민주정권을 세우라고 지령한 것이 밝혀졌다. 이 지령문은 소련이 처음부터 북한에 단독정권을 세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명백한 문서적인 증거이다.


지령문의 이행 과정

지령문 중 1981년에 공개된 3, 4, 5, 6항은 별 의미도 없는 것으로, 북한 현지의 소련군은 실제로 점령군 행세를 하며 주민들에 대한 약탈, 부녀자 강간, 산업시설 해체 및 소련 반출, 종교 탄압, 정치적 반대 세력 탄압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비록 스탈린의 지령이라고 하지만 현지 북한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이 지령문에서도 치스차코프 포고문처럼 듣기 좋은 말만 잔뜩 나열하고, 실제로는 반대로 행동하는 공산주의자들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93년에 밝혀진 1, 2, 7항 중 1항은 별 의미가 없고, 핵심적인 항목은 2항과 7항이다. 7항은 즉각 효력을 발휘하여 북한의 소련군정은 연해주 군관구 군사평의회(군사위원회, Military Council) 관할로 지정되며 연해주 군관구 군사위원회 위원이었던 스티코프가 총지휘자가 되고, 평양 현지에서는 소련 제25군 군사위원 레베데프가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2항 북한에 부르조아 민주정권을 세우라는 지령은 더디게 진행되는데, 1945년 12월 25일자 "쉬킨 보고서"도 이를 지적하고, 조속한 이행을 위해 토지개혁 등의 방안을 제시한다[2][7]. 이에 따라 1946년 2월 9일 사실상의 북한 단독 정부인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어서 3월 5일 토지개혁을 단행한다.[8] 이것이 남북 분단의 실질적인 시발점이다.

쉬킨 보고서는 남북한에 단일의 임시정부를 세우고 4개국이 신탁통치하기로 결정하는 모스크바 3상회의가 진행 중일 때 스탈린에게 보고된 것으로, 소련의 본심을 담은 계획서이며 대체로 그대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모스크바 3상회의에 임하는 소련의 태도는 본심과는 다른 기만적인 것으로 거기서 결정된 신탁통치를 두고 국내에서 찬반 투쟁이 벌어진 것은 별 의미가 없고, 이를 빌미로 남한과 미군정을 흔들려는 소련의 의도에 놀아난 것이다. 미국은 소련의 본심을 파악하지 못해 소련의 기만적 협상 전술에 말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9][10]


함께 보기


각주

  1. 신편 한국사 52 대한민국의 성립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金聖甫) >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 1) 해방 후 북한 각 지역의 인민위원회 수립과 소련군 주둔 > (3) 스딸린 비밀전문과 서북5도행정국 (국사편찬위원회, 2002-12-30)
  2. 2.0 2.1 2.2 <제40회 이승만 포럼> 원문으로 본 그 비밀의 정체 : 스탈린 지령문 "북한에 소련체제 이식은 이렇게 하라" New Daily 2014.06.24 : 스탈린 지령문 원문 이미지
    소련이 만든 북한, 아직도 붕괴 안 된 이유는…"돌연변이 공산주의 북한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New Daily 2014.06.21
  3. 분단·스탈린지령문 놓고 '불꽃토론' - 조선닷컴 2006. 4. 21
  4. 소련과학아카데미 산하 동방학연구소, 《소련과 북한 관계 (1945-1980)》, 모스크바, 나우카 출판사, 1981. 13쪽.
  5. 蘇聯邦科學 아카데미 東洋學硏究所 編, 《蘇聯과 北韓과의 關係, 1945∼1980 : 文獻 및 資料》 (國土統一院 譯, 國土統一院, 1987) p.39
  6. "北韓(북한)에 부르주아 民主政權(민주정권) 수립" 스탈린, 占領(점령) 蘇聯軍(소련군)에 비밀지령 문서 50년만에 공개 1993.02.26. 동아일보 6면
  7. 구소 북 장악음모 “결정적 자료”/쉬킨중장 비밀보고서 내용·의미 한국일보 1995.08.14
  8. 이철순 부산대 정치외교학 교수, 북한의 기만적 협상 전술 한국일보 2013.03.18
  9. <광복 5년사 쟁점 재조명> <1부> (16) 신탁통치가 분단 막았을까? 동아일보 2004-12-05
  10. <광복 5년사 쟁점 재조명> <1부> (18·끝) 에릭 반 리 (Erik van Ree) 인터뷰 동아일보 2004-12-19 : dr. Erik van Ree Univ. of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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