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조선(朝鮮)의 4대 군주.

행적

노비제도에 관한 것

1420년 예조판서 허조의 건의에 따라 노비고소금지법을 제정하였다. 내용은 노비가 주인을 관청에 고소하거나 고발하면 고소·고발 접수를 거부하고 즉시 사형시키는 법이다. [1] 이 법이 특히 잔인한 점은 노비가 주인을 고소했을 경우 평민인 노비의 배우자 또한 사형에 처했다는 점[2]이다. 이 법이 제정된 이후 주인들이 노비를 때려죽이는 일이 빈번[3] 했다.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노비가 주인을 고소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글창제

한글을 창제하였다. 일반인의 상식과 달리 세종의 한글 창제목적은 자주적인 글자를 만들어 한국어를 제대로 표기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조선에서 쓰이던 한자음이 중국의 것과 너무나 달랐기에 중국 한자음을 조선에 도입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일종의 발음기호로서 만든 것[4]이었다.

총평

세종은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민본주의나 자주적 군주와는 거리가 멀고 유교적 가치에 충실하였던 임금이다. 외교관계에 있어서도 상국인 명나라에 대해 사대를 아끼지 않았으며 사회적으로도 관리의 권한을 확대하고 노비의 권리를 박탈하는 등 엄격한 신분제도를 도입하였다. 다만 이는 이미 조선의 건국부터 예견된 일이었던 것이었다. 조선은 다원적 사회인 고려의 각종 사회질서를 배척하는 강경한 성리학자들에 의해 개국되었으며 건국 초기부터 그들에 의해 기초가 다져져 왔기에 국가체제가 공고해짐에 따라 성리학적 질서는 끊임없이 강화될 운명이었다.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한 인물이 세종인 것이다.

각주

  1. 세종실록 9권, 세종 2년 9월 13일 무인 4번째기사 1420년 명 영락(永樂) 18년4
  2. 이영훈,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Ebook], 백년동안, 2018
  3. 세종실록 64권, 세종 16년 6월 8일 계축 5번째기사
  4. 이영훈,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Ebook], 백년동안,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