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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년 3월 28일 상해에서 김익상(金益相)과 함께 육군대장 [https://ko.wikipedia.org/wiki/%EB%8B%A4%EB%82%98%EC%B9%B4_%EA%B8%B0%EC%9D%B4%EC%B9%98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1864~1929)]에게 폭탄을 투척했다 실패 후 체포됨.<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2070200209203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2-07-02&officeId=00020&pageNo=3&printNo=673&publishType=00020 公開(공개)된爆彈事件(폭탄사건)의眞相(진상) 少毫(소호)도隱諱(은휘)업시明快(명쾌)히陳述(진술)] 1922.07.02 동아일보 3면</ref> | * 1922년 3월 28일 상해에서 김익상(金益相)과 함께 육군대장 [https://ko.wikipedia.org/wiki/%EB%8B%A4%EB%82%98%EC%B9%B4_%EA%B8%B0%EC%9D%B4%EC%B9%98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1864~1929)]에게 폭탄을 투척했다 실패 후 체포됨.<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2070200209203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2-07-02&officeId=00020&pageNo=3&printNo=673&publishType=00020 公開(공개)된爆彈事件(폭탄사건)의眞相(진상) 少毫(소호)도隱諱(은휘)업시明快(명쾌)히陳述(진술)] 1922.07.02 동아일보 3면</ref> | ||
* 1922년 5월 2일 탈옥하여 도주함. | * 1922년 5월 2일 탈옥하여 도주함.<ref>[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2050600209203017&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2-05-06&officeId=00020&pageNo=3&printNo=616&publishType=00020 吳相崙(오상륜)은破獄逃走(파옥도주)] 1922.05.06 동아일보 3면</ref> | ||
* 그 후 독일 등지를 거쳐 소련으로 가서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졸업. | * 그 후 독일 등지를 거쳐 소련으로 가서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졸업. | ||
* 중국으로 귀환하여 한동안 [[김원봉]]의 의열단에서 활동 | * 중국으로 귀환하여 한동안 [[김원봉]]의 의열단에서 활동 |
2021년 7월 31일 (토) 11:27 판
오성륜(吳成崙, 1902[2] ~ 1947 ?)은 공산주의 계열의 항일투사이다. 중국명은 마천일(馬天一)[3]이며,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할 때는 전광(全光)이라는 가명을 썼다. 항일연군에서는 1로군 사령부 군수처장과 비서처장(秘書處長)을 지냈으며, 같은 1로군 소속이었던 6사장 김일성이나, 북한 김일성의 상관이었다.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 투항했다.
생애
- 오성륜(吳成崙, 1900 ~ 194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오성륜(吳成崙, 1900 ~ 1947) 두산백과
- 오성륜(吳成崙, 1898년 ~ 1947년) - 위키백과
행적
- 1922년 3월 28일 상해에서 김익상(金益相)과 함께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1864~1929)에게 폭탄을 투척했다 실패 후 체포됨.[4]
- 1922년 5월 2일 탈옥하여 도주함.[5]
- 그 후 독일 등지를 거쳐 소련으로 가서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졸업.
- 중국으로 귀환하여 한동안 김원봉의 의열단에서 활동
- 1930년대 중반부터 전광(全光)이라는 가명으로 만주의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
- 1936년 재만한인조국광복회 발기인
- 일본군의 토벌에 쫓기다 1941년 1월 30일 투항, 귀순함.
- 귀순 후 그의 말년 행적은 분명치 않다.
기사
- 사진: 상해에서 전중 대장에게 폭탄던진 조선인, (右) 吳成崙(23), (左) 金益相(29) 매일신보 [每日申報] 1922년 04월 07일 3면 9단
- 吳相崙(오상륜)은破獄逃走(파옥도주) 1922.05.06 동아일보 3면
- 總督府爆彈犯(총독부폭탄범)은 上海(상해)의爆彈犯金益相(폭탄범김익상) 1922.05.20 동아일보 3면
- 脫獄 共犯者 田村 逮捕, 오성륜이도 불원 체포? 매일신보 [每日申報] 1922년 05월 22일
- 脫獄 田村의 自白, 오성륜과는 항주에서 길을 나눠 매일신보 [每日申報] 1922년 05월 23일
- 公開(공개)된爆彈事件(폭탄사건)의眞相(진상) 少毫(소호)도隱諱(은휘)업시明快(명쾌)히陳述(진술) 1922.07.02 동아일보 3면
- 千號壹覽(천호일람) (續(속)) 1923.06.06 조선일보 7면
- 571 (1922년 3월) 30일 상해에서 전중대장(田中大將)에게 폭탄을 투(投)하다.
- 607 (1922년 5월) 6일 전중대장(田中大將) 저격범 吳成崙(오성륜)은上海(상해)에셔破獄逃躲(파옥도타)하다
- 모스크바 滯留(체류) 45日(일) 1970.03.05 조선일보 22면
- 그곳에서 만난 한국사람으로는 独立鬪士(독립투사)였다는 吳成崙(오성륜)(中国名(중국명) 馬天一(마천일)),金炯斗(김형두),趙(조)훈등으로 모두 共産大學生(공산대학생)이었는데
- 慶北重大件事(경북중대건사)의其一(기일) 義烈團前後活動眞相(의열단전후활동진상) 1926.11.11 동아일보 2면
- (吳成崙(오성륜))과함께불원에비률빈(比律賓(비율빈))으로부터도라오는길에상해에상륙할 륙군대장 뎐중의일(陸軍大將田中義一)... (吳成崙(오성륜))등이모히여동년안으로조선안에서폭탄과권총으로써관뎡을파...
- 各國人環列(각국인환열)한上海埠頭(상해부두) 田中大將(전중대장)을爆擊(폭격) 1926.11.11 조선일보 2면
- 本町署(본정서)에檢擧(검거)됏든 義烈團事件眞相(의열단사건진상) 1929.11.03 동아일보 2면
- (강비호돌))과 오성륜(吳成崙(오성륜))등의 권유로의렬단에입단하야 최하청(崔河淸(최하청))진공목(陳公木(진공목))등으로더불어선전출판부의 책임을지고활동하다가조선민족의해방을 엇기위하야는 민족운..
일본군 투항 당시의 사진
1941년 1월 30일 전광(全光) 즉 오성륜(吳成崙, 화살표)이 일본군에 투항한 직후의 기념 사진.[1]
1941년 1월 30일 전광(全光) 즉 오성륜(吳成崙)이 일본군에 투항한 직후 길림토벌대사령부(吉林討伐隊司令部)에서 찍은 사진. 오성륜은 조선인으로 39세라 적혀 있으므로[1] 1902년생으로 보인다.
노조에 쇼토쿠(野副昌德, 1887~1981) 소장이 지휘하는 노조에 토벌대가 토벌작전이 마감되는 1941년 3월에 작성한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조직표[7]. 이름에 X 표시가 된 사람은 이미 전사 또는 투항(귀순)했다는 표시이다. 1941년 1월 30일 투항한 1로군 사령부 비서처장(秘書處長) 전광(全光) 이름에는 X 표시가 되어 있다. 제2방면군장이었던 북한 김일성은 상관의 허락도 없이 그 전해인 1940년 10월 23일 소련으로 도주했다.
참고 자료
- [임경석의 역사극장] 독립운동가의 마음에 어린 딸이 떠올랐다 [한겨레21 제1248호] 2019-01-25
- 상하이 황푸탄 의거 주도한 독립투사들의 유언…딸아 아우야 나처럼 살길 바란다
- [임경석의 역사극장] 다나카 저격수의 탈옥 [한겨레21 제1251호] 2019. 2. 22
- ‘황포탄 의거’ 오성륜…맹수 우리 같던 감옥을 어떻게 탈출했나
- [동아플래시100] 탕!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저격한 한국인의 운명은… 동아일보 2020-09-30
함께 보기
각주
- ↑ 1.0 1.1 1.2 《アルバム 謎の金日成 写真で捉えたその正体》, 東アジア問題研究会編 / 編著者 代表 李命英, (成甲書房, 1978) pp.120~121
- ↑ 그의 생년은 1898년, 1900년 등이 기록에 보이나, 1941년 1월 일본군에 투항할 당시 사진에 39세라 했으므로 1902년생이 맞는 것같다.
- ↑ 모스크바 滯留(체류) 45日(일) 1970.03.05 조선일보 22면
- ↑ 公開(공개)된爆彈事件(폭탄사건)의眞相(진상) 少毫(소호)도隱諱(은휘)업시明快(명쾌)히陳述(진술) 1922.07.02 동아일보 3면
- ↑ 吳相崙(오상륜)은破獄逃走(파옥도주) 1922.05.06 동아일보 3면
- ↑ 사진: 상해에서 전중 대장에게 폭탄던진 조선인, (右) 吳成崙(23), (左) 金益相(29) 매일신보 [每日申報] 1922년 04월 07일 3면 9단
- ↑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C13071220200、吉林、間島、通化三省治安粛正の大要 昭和14年10月~16年3月(防衛省防衛研究所)」 件名標題:第5 討伐成果 (C1307122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