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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최형우-승소옥.jpg|250픽셀|섬네일|오른쪽|최일천(최형우) - 승소옥 부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에 나오는 사진.]]
[[파일:최형우-승소옥.jpg|250픽셀|섬네일|오른쪽|최일천(최형우) - 승소옥 부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에 나오는 사진.]]
'''최형우'''(崔衡宇, 1905.10.11 ~ 1950.11.05)는 본명이 '''최일천'''(崔日泉)이며, 해방전 만주에서 교사 겸 문필가로 활동했다. 해방 후에는 서울에서 기자와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만주 회덕현(懷德縣, 怀德县)<ref>오늘날의 [https://ko.wikipedia.org/wiki/%EA%B6%81%EC%A3%BC%EB%A7%81%EC%8B%9C 궁주링시 (公主岭市)]</ref><ref>[https://baike.baidu.com/item/%E6%80%80%E5%BE%B7%E5%8E%BF/6267200?fromtitle=%E6%80%80%E5%BE%B7&fromid=8783331 怀德县 (吉林省四平市东部怀德县)] 百度百科</ref> 오가자(五家子)<ref>[https://www.google.com/maps/place/Wujiazi,+%EA%B6%81%EC%A3%BC%EB%A7%81%EC%8B%9C+%EC%93%B0%ED%95%91%EC%8B%9C+%EC%A7%80%EB%A6%B0%EC%84%B1+%EC%A4%91%EA%B5%AD/@43.7652877,125.0117322,15z/data=!4m5!3m4!1s0x5e38565d50089a4b:0x3b99d952dcc62685!8m2!3d43.763399!4d125.022547 Wujiazi (五家子) 궁주링시 쓰핑시 지린성(公主岭市 四平市 吉林省) 중국] 구글 지도</ref> 시절의 [[김일성]]과도 교류가 있었다. [[6.25]] 때 인민군에 끌려가 처형 당했다.
'''최형우'''(崔衡宇, 1905.10.11 ~ 1950.11.05)는 본명이 '''최일천'''(崔日泉)이며, 해방전 만주에서 교사 겸 문필가로 활동했다. 해방 후에는 서울에서 기자와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 1, 2집을 간행했다. 1930년말 ~ 1931년 초 기간에 만주 회덕현(懷德縣, 怀德县)<ref name="h1">오늘날의 [https://ko.wikipedia.org/wiki/%EA%B6%81%EC%A3%BC%EB%A7%81%EC%8B%9C 궁주링시 (公主岭市)]</ref><ref name="h2">[https://baike.baidu.com/item/%E6%80%80%E5%BE%B7%E5%8E%BF/6267200?fromtitle=%E6%80%80%E5%BE%B7&fromid=8783331 怀德县 (吉林省四平市东部怀德县)] 百度百科</ref> 오가자(五家子)<ref name="5h">[https://www.google.com/maps/place/Wujiazi,+%EA%B6%81%EC%A3%BC%EB%A7%81%EC%8B%9C+%EC%93%B0%ED%95%91%EC%8B%9C+%EC%A7%80%EB%A6%B0%EC%84%B1+%EC%A4%91%EA%B5%AD/@43.7652877,125.0117322,15z/data=!4m5!3m4!1s0x5e38565d50089a4b:0x3b99d952dcc62685!8m2!3d43.763399!4d125.022547 Wujiazi (五家子) 궁주링시 쓰핑시 지린성(公主岭市 四平市 吉林省) 중국] 구글 지도 : 장춘(신경)에 가까이 있다.</ref> 시절의 [[김일성]]과도 교류가 있었다. [[6.25]] 때 인민군에 끌려가 처형 당했다.<ref name="nov">[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joosungha/co-sh-02142020091112.html 북한이 따라 배우라는 소설의 주인공들] RFA 2020-02-14</ref>


북한에서는 그를 최일천으로, 남한에서는 최형우로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에서는 최형우란 이름은 해방 후 서울에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를 간행할 때 쓴 필명이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만주 시절의 기록에도 최형우로 나온다.
북한에서는 그를 최일천으로, 남한에서는 최형우로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에서는 최형우란 이름은 해방 후 서울에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를 간행할 때 쓴 필명이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만주 시절의 기록에도 최형우로 나온다.
[[김일성]] 회고록에는 그가 오가자(五家子)에 가 있을 때 최형우의 집에서도 몇 주일씩 유숙했으며, 최형우가 최천, 최찬선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했다.<ref>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2권> (1930.5~1933. 2월의 기록) pp.188~190.</ref>


==약력==
==약력==
그의 대체적인 약력은 아래와 같다.<ref>[http://dongne.donga.com/2010/11/30/d-story-60-%EA%B9%80%EC%9D%BC%EC%84%B1-%ED%9A%8C%EA%B3%A0%EB%A1%9D-%EC%86%8D-%EB%8F%99%EC%95%84%EC%9D%BC%EB%B3%B4/ D-Story 60 : 김일성 회고록 속 동아일보] 동네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11월 - 30 - 2010</ref>
그의 대체적인 약력은 아래와 같다.<ref name="dongne">[http://dongne.donga.com/2010/11/30/d-story-60-%EA%B9%80%EC%9D%BC%EC%84%B1-%ED%9A%8C%EA%B3%A0%EB%A1%9D-%EC%86%8D-%EB%8F%99%EC%95%84%EC%9D%BC%EB%B3%B4/ D-Story 60 : 김일성 회고록 속 동아일보] 동네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11월 - 30 - 2010</ref><ref>[http://www.cybernk.net/infoText/InfoHumanDetail.aspx?mc=EJ1103&hid=EJ110300230028&rightType=3&direct=1 최일천] - 북한지역정보넷</ref><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61483&cid=58056&categoryId=58090 최일천 (崔日泉, 1905.10.11 ~ 1950.11.05)] 조선향토대백과</ref>


* 1905년 10월 11일 평안북도 정주시 출생
* 1905년 10월 11일 평안북도 정주시 출생


* 중국 봉천성 류하현에서 성장하고 소학교 다님
* 중국 봉천성 유하현(柳河縣)에서 성장하고 소학교 다님


* 정의부 산하 독립군에서 병사 생활을 하다가 오동진 사령의 서기
*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9D%98%EB%B6%80 정의부(正義府)] 산하 독립군에서 병사 생활을 하다가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B%8F%99%EC%A7%84_(1889%EB%85%84) 오동진(吳東振, 1889~1944)] 사령의 서기가


* 1927년 길림성 회덕현 오가자의 삼성학교에서 교원 생활
* 1927년 길림성 회덕현((懷德縣)<ref name="h1"/><ref name="h2"/> 오가자(五家子)<ref name="5h"/>의 삼성학교에서 교원 생활


* 1930년 가을 이후 오가자 반제청년동맹 위원장, 잡지 <농우> 주필로 사업
* 1930년 가을 이후 오가자 반제청년동맹 위원장, 잡지 <농우> 주필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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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 정계에 진출하여 조선혁명당 정치부장, 신진당 중앙위원회 부장, 김일성장군환영위원회 위원, 민족자주연맹 집행위원 등 중요 직책 역임
* 남한 정계에 진출하여 조선혁명당 정치부장, 신진당 중앙위원회 부장, 김일성장군환영위원회 위원, 민족자주연맹 집행위원 등 중요 직책 역임


* 1950년 11월 05일 : [[6.25 전쟁]] 중 인민군에 납북되어 가다 처형 당함.
* 1950년 11월 05일 : [[6.25 전쟁]] 중 인민군에 납북되어 가다 처형 당함.<ref name="nov"/>
 
* 1989년 4월 3일자 노동신문에 「태양과 일생­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의 저자인 최일천 선생께 베풀어 주신 은정에 대한 이야기」란 기사가 실림.<ref>[https://ko.wikipedia.org/wiki/%ED%97%88%EB%8F%99%EC%B0%AC 허동찬(許東粲, 1932 ~ )],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19930204004001 새전기 「세기와 더불어」 허동찬씨의 분석 (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4)] 서울신문 1993-02-04</ref>
{{인용문|거기에는 최형우(일천은 별호)의 「소사」가 66년쯤에 비로소 북한에서 주목받게 되었고 그의 문장이 68년에 나온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에 반영되었다고 씌어 있는 모양이다<주④>.<br>
<주④>와다 하루키, 「김일성과 만주 항일무장투쟁」 53면 }}
 
* 1993년 4월 20일 북한에서 제4회 「조국통일상」을 수여  ※ 수여내역 : 최일천(「해외조선혁명운동 소사」 작가)<ref name="award"/>
 
*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가묘가 만들어져 있다.<ref>[http://nktoday.kr/?p=4560 <nowiki>[최재영 목사 방북기17-남북의 국립묘지를 찾아 역사화해를 모색하다③]</nowiki> 평양 신미리애국열사릉 편] NK투데이 2015-03-09</ref>
 
* 그의 활동상황이 [[로동신문]] 2006년 12월 1일자 2면 ‘소중한 추억’에 게재됨.<ref name="dongne"/>
 
* 승소옥과의 사이에 난 아들은 북한에 있고, 후처에서 난 아들이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했다고 함.<ref name="nov"/>
 


[[김일성]]은 [[6.25]] 때 그를 처형시키고서, 자신이 사망하기 직전 뒤늦게 복권시키고, 1993년 4월 20일 제4회  「조국통일상」을 수여했다.<ref name="award">[https://nkinfo.unikorea.go.kr/nkp/trend/viewIssue.do?diaryId=7207&issueMenuId=ISSUE_0002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nowiki>[조국통일상]</nowiki> 수여 정령 발표] 주간북한동향 제586호 2002-04-04 : 통일부 북한정보포털</ref> 제1회 수상자는 민족지도자 [[김구|백범 김구]], [[김규식]], [[여운형]], 월북자 [[홍명희]], 홍기문 등 112명이며, 밀입북자 [[문익환]], [[임수경]]과 남한내 반정부 투쟁인사들에게도 같은 상이 수여된 바 있다.


[[김일성]]은 [[6.25]] 때 그를 처형시키고서, 자신이 사망하기 직전 뒤늦게 복권시키고, 1993년 4월 20일 제4회  「조국통일상」을 수여했다.<ref>[https://nkinfo.unikorea.go.kr/nkp/trend/viewIssue.do?diaryId=7207&issueMenuId=ISSUE_0002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nowiki>[조국통일상]</nowiki> 수여 정령 발표] 주간북한동향 제586호 2002-04-04 : 통일부 북한정보포털</ref> 제1회 수상자는 민족지도자 [[김구|백범 김구]], [[김규식]], [[여운형]], 월북자 홍명희, 홍기문 등 112명이며, 밀입북자 문익환, [[임수경]]과 남한내 반정부 투쟁인사들에게도 같은 상이 수여된 바 있다.
북한이 처형한 최형우를 뒤늦게 복권시킨 것은 그의 저서들이 [[김일성]] 우상화에 유용하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2권 (1992년)》에도 최일천의 이름으로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ref>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 (1992년) 제4장 10. 잊을수 없는 사람들</ref>


북한이 처형한 최형우를 뒤늦게 복권시킨 것은 그의 저서들이 [[김일성]] 우상화에 유용하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도 최일천의 이름으로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ref>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 제4장 10. 잊을수 없는 사람들</ref>
===[[동아일보]] 사령(辭令)===
[[동아일보]]나 동아일보 사사(社史)에 나온 최형우(崔衡宇)의 인사 발령 사항은 아래와 같다.<ref name="dongne"/> 1927년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이름이 최일천 아닌 최형우로 나온다.  신경(新京)은 장춘(長春)이 1932년부터 만주국의 수도가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동아일보 사사 1권 부록과 당시 보도를 보면 ‘최형우’는 기간은 명확하지 않지만 신경(新京, 길림성 장춘) 지국장과 신경지국 기자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인용문|신경(新京)……김이삼(金利三, 1928. 3~) 최형우(崔衡宇, ?~) 송명배(宋明培, 1938. 2~) 김병권(金秉權, 1939. 4~) 김경규(金景圭, 1939. 9~) 최경가(崔景加, 1940. 2~) 유시용(劉時鎔, 1940. 5~)}}
 
* 1927년 4월 11일자 4면 : 장춘지국 변경 지국장 咸錫殷 기자 金玉斌 金利三 崔衡宇 고문 崔德潤 李春基 임명
 
* 1931년 12월 3일자 3면 : 장춘지국 ; 장춘통신원 崔衡宇 任 장춘지국장
 
* 1937년 6월 13일자 6면 : 新京 소개판 ; 신경과 재류동포(신경지국장 崔衡宇)
 
* 1938년 2월 4일자 8면 : 신경지국 ; 宋明培 任 지국장 崔衡宇 지국장 의원해직
 
* 1938년 2월 4일자 8면 : 신경지국 ; 고문 李鴻周 李鍾元 朴泰晉 崔衡宇 기자 洪揆植 집금원(集金員) 宋英培 임명
 
* 신동아 1935년 10월호 119~122쪽 최형우, 재만동포의 근황(新京 崔衡宇)


==저서==
==저서==


아래 저서의 내용은 정확성이 떨어진다. [[김일성]]과 관련된 부분은 북한의 실력자로 막 등장한 그에게 잘 보일 의도에서인지 상당히 미화하여 기술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으로 가지는 않고 서울에서 활동했다.
아래 저서의 내용은 정확성이 떨어진다. <ㅌ·ㄷ> (타도제국주의동맹)를 [[김일성]]이 주도하여 결성한 것처럼 말했으나 사실이 아니다.<ref>[http://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1482 <nowiki>[북한알기 키워드]</nowiki> 타도제국주의동맹 (ㅌ·ㄷ)] NK 조선  2001.10.09  </ref><ref>[[김일성#ㅌ·ㄷ(타도제국주의동맹)는 김일성 아닌 이종락이 조직]]</ref><ref>[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507010003329 종북386의 롤모델 ‘26년<ㅌ·ㄷ>’] 아시아투데이" 2015. 05. 08.</ref> 그는 [[김일성]]이 1931년 초 오가자(五家子)에서 벌인 살인사건<ref>[[김일성#오가자(五家子)에서의 살인 - 길흑농민동맹사건]]</ref>에 대해서도 알았을 것이나 책에는 이에 대한 언급도 없다. [[김일성]]과 관련된 부분은 북한의 실력자로 막 등장한 그에게 잘 보일 의도에서인지 상당히 미화하여 기술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으로 가지는 않고 서울에서 활동했다.  


* 최형우(崔衡宇),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1집(第一輯)》, 서울(漢城) : 동방문화사(東方文化社), 1945년 12월 10일
* 최형우(崔衡宇), [http://dlps.nanet.go.kr/SearchDetailView.do?cn=MONO1198024256&sysid=nhn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1집(第一輯)》], 서울(漢城) : 동방문화사(東方文化社), 1945년 12월 10일
* 최형우(崔衡宇),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2집(第二輯)》, 서울 : 동방문화사(東方文化社), 1946년
* 최형우(崔衡宇),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2집(第二輯)》, 서울 : 동방문화사(東方文化社), 1946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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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_제1집.pdf|《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1집(第一輯)》 [[김일성]] 관련 부분
파일: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_제1집.pdf|《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1집(第一輯)》 [[김일성]] 관련 부분 pdf 파일. 특이하게 [[김일성]]의 본명을 김성주(金誠柱)로 적었다. 또 오가자(五家子) 시절 동지들이 그에게 일성(一星)이란 별호를 지어 주었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최형우 본인이 지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 name="sams">이명영(李命英, 1928~2000), 《김일성 열전(金日成 列傳)》 (新文化社, 1974) pp.122~124.</ref><ref name="leemy9">이명영, [https://news.joins.com/article/1374074 진위 김일성 열전 (9) 김성주의 별명도 김일성] 중앙일보 1974.04.15 종합 3면</ref>
파일: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 제2집.pdf|《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2집(第二輯)》 [[김일성]] 관련 부분
파일: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 제2집.pdf|《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2집(第二輯)》 [[김일성]] 관련 부분 pdf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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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최형우와 김일성의 관계에 대한 연구
*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AA%85%EC%98%81_(%EA%B5%90%EC%88%98) 이명영(李命英, 1928~2000)], [https://news.joins.com/article/1374074 <nowiki>[진위 김일성 열전 : 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9)]</nowiki> 김성주의 별명도 김일성] 중앙일보 1974.04.15 종합 3면
* [https://ko.wikipedia.org/wiki/%ED%97%88%EB%8F%99%EC%B0%AC 허동찬(許東粲, 1932 ~ )],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19930204004001 새전기 「세기와 더불어」 허동찬씨의 분석 (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4)] 서울신문 1993-02-04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19930330006002 새전기 「세기와 더불어」 허동찬씨의 분석 (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6)] 서울신문 1993.03.30


==각주==
==각주==
<references/>
<references/>


[[분류:김일성]]
[[분류:김일성 관련 인물]]
[[분류:김일성 가짜설]]
[[분류:김일성 가짜설]]
[[분류:언론인]]
[[분류:독립운동가]]
[[분류:납북자]]
[[분류:국민부]]
[[분류:숙청]]

2024년 4월 1일 (월) 08:06 기준 최신판

최일천(최형우) - 승소옥 부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에 나오는 사진.

최형우(崔衡宇, 1905.10.11 ~ 1950.11.05)는 본명이 최일천(崔日泉)이며, 해방전 만주에서 교사 겸 문필가로 활동했다. 해방 후에는 서울에서 기자와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제 1, 2집을 간행했다. 1930년말 ~ 1931년 초 기간에 만주 회덕현(懷德縣, 怀德县)[1][2] 오가자(五家子)[3] 시절의 김일성과도 교류가 있었다. 6.25 때 인민군에 끌려가 처형 당했다.[4]

북한에서는 그를 최일천으로, 남한에서는 최형우로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에서는 최형우란 이름은 해방 후 서울에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를 간행할 때 쓴 필명이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만주 시절의 기록에도 최형우로 나온다.

김일성 회고록에는 그가 오가자(五家子)에 가 있을 때 최형우의 집에서도 몇 주일씩 유숙했으며, 최형우가 최천, 최찬선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했다.[5]

약력

그의 대체적인 약력은 아래와 같다.[6][7][8]

  • 1905년 10월 11일 평안북도 정주시 출생
  • 중국 봉천성 유하현(柳河縣)에서 성장하고 소학교 다님
  • 1927년 길림성 회덕현((懷德縣)[1][2] 오가자(五家子)[3]의 삼성학교에서 교원 생활
  • 1930년 가을 이후 오가자 반제청년동맹 위원장, 잡지 <농우> 주필로 사업
  • 1931년 12월-1945년 장춘과 베이징, 심양 등지에서 <동아일보> 지국장 및 기자로 일함
  • 1945년 해방 후 서울에서 <동방문화사> 기자로 일함
  • 남한 정계에 진출하여 조선혁명당 정치부장, 신진당 중앙위원회 부장, 김일성장군환영위원회 위원, 민족자주연맹 집행위원 등 중요 직책 역임
  • 1950년 11월 05일 : 6.25 전쟁 중 인민군에 납북되어 가다 처형 당함.[4]
  • 1989년 4월 3일자 노동신문에 「태양과 일생­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의 저자인 최일천 선생께 베풀어 주신 은정에 대한 이야기」란 기사가 실림.[9]
거기에는 최형우(일천은 별호)의 「소사」가 66년쯤에 비로소 북한에서 주목받게 되었고 그의 문장이 68년에 나온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에 반영되었다고 씌어 있는 모양이다<주④>.
<주④>와다 하루키, 「김일성과 만주 항일무장투쟁」 53면
  • 1993년 4월 20일 북한에서 제4회 「조국통일상」을 수여 ※ 수여내역 : 최일천(「해외조선혁명운동 소사」 작가)[10]
  •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가묘가 만들어져 있다.[11]
  • 그의 활동상황이 로동신문 2006년 12월 1일자 2면 ‘소중한 추억’에 게재됨.[6]
  • 승소옥과의 사이에 난 아들은 북한에 있고, 후처에서 난 아들이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했다고 함.[4]


김일성6.25 때 그를 처형시키고서, 자신이 사망하기 직전 뒤늦게 복권시키고, 1993년 4월 20일 제4회 「조국통일상」을 수여했다.[10] 제1회 수상자는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 김규식, 여운형, 월북자 홍명희, 홍기문 등 112명이며, 밀입북자 문익환, 임수경과 남한내 반정부 투쟁인사들에게도 같은 상이 수여된 바 있다.

북한이 처형한 최형우를 뒤늦게 복권시킨 것은 그의 저서들이 김일성 우상화에 유용하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2권 (1992년)》에도 최일천의 이름으로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12]

동아일보 사령(辭令)

동아일보나 동아일보 사사(社史)에 나온 최형우(崔衡宇)의 인사 발령 사항은 아래와 같다.[6] 1927년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이름이 최일천 아닌 최형우로 나온다. 신경(新京)은 장춘(長春)이 1932년부터 만주국의 수도가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동아일보 사사 1권 부록과 당시 보도를 보면 ‘최형우’는 기간은 명확하지 않지만 신경(新京, 길림성 장춘) 지국장과 신경지국 기자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신경(新京)……김이삼(金利三, 1928. 3~) 최형우(崔衡宇, ?~) 송명배(宋明培, 1938. 2~) 김병권(金秉權, 1939. 4~) 김경규(金景圭, 1939. 9~) 최경가(崔景加, 1940. 2~) 유시용(劉時鎔, 1940. 5~)
  • 1927년 4월 11일자 4면 : 장춘지국 변경 지국장 咸錫殷 기자 金玉斌 金利三 崔衡宇 고문 崔德潤 李春基 임명
  • 1931년 12월 3일자 3면 : 장춘지국 ; 장춘통신원 崔衡宇 任 장춘지국장
  • 1937년 6월 13일자 6면 : 新京 소개판 ; 신경과 재류동포(신경지국장 崔衡宇)
  • 1938년 2월 4일자 8면 : 신경지국 ; 宋明培 任 지국장 崔衡宇 지국장 의원해직
  • 1938년 2월 4일자 8면 : 신경지국 ; 고문 李鴻周 李鍾元 朴泰晉 崔衡宇 기자 洪揆植 집금원(集金員) 宋英培 임명
  • 신동아 1935년 10월호 119~122쪽 최형우, 재만동포의 근황(新京 崔衡宇)

저서

아래 저서의 내용은 정확성이 떨어진다. <ㅌ·ㄷ> (타도제국주의동맹)를 김일성이 주도하여 결성한 것처럼 말했으나 사실이 아니다.[13][14][15] 그는 김일성이 1931년 초 오가자(五家子)에서 벌인 살인사건[16]에 대해서도 알았을 것이나 책에는 이에 대한 언급도 없다. 김일성과 관련된 부분은 북한의 실력자로 막 등장한 그에게 잘 보일 의도에서인지 상당히 미화하여 기술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으로 가지는 않고 서울에서 활동했다.


참고 자료

최형우와 김일성의 관계에 대한 연구

새전기 「세기와 더불어」 허동찬씨의 분석 (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6) 서울신문 1993.03.30

각주

  1. 1.0 1.1 오늘날의 궁주링시 (公主岭市)
  2. 2.0 2.1 怀德县 (吉林省四平市东部怀德县) 百度百科
  3. 3.0 3.1 Wujiazi (五家子) 궁주링시 쓰핑시 지린성(公主岭市 四平市 吉林省) 중국 구글 지도 : 장춘(신경)에 가까이 있다.
  4. 4.0 4.1 4.2 북한이 따라 배우라는 소설의 주인공들 RFA 2020-02-14
  5.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2권> (1930.5~1933. 2월의 기록) pp.188~190.
  6. 6.0 6.1 6.2 D-Story 60 : 김일성 회고록 속 동아일보 동네 (동아미디어그룹 공식 블로그) 11월 - 30 - 2010
  7. 최일천 - 북한지역정보넷
  8. 최일천 (崔日泉, 1905.10.11 ~ 1950.11.05) 조선향토대백과
  9. 허동찬(許東粲, 1932 ~ ), 새전기 「세기와 더불어」 허동찬씨의 분석 (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4) 서울신문 1993-02-04
  10. 10.0 10.1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조국통일상] 수여 정령 발표 주간북한동향 제586호 2002-04-04 : 통일부 북한정보포털
  11. [최재영 목사 방북기17-남북의 국립묘지를 찾아 역사화해를 모색하다③] 평양 신미리애국열사릉 편 NK투데이 2015-03-09
  12.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 (1992년) 제4장 10. 잊을수 없는 사람들
  13. [북한알기 키워드] 타도제국주의동맹 (ㅌ·ㄷ) NK 조선 2001.10.09
  14. 김일성#ㅌ·ㄷ(타도제국주의동맹)는 김일성 아닌 이종락이 조직
  15. 종북386의 롤모델 ‘26년<ㅌ·ㄷ>’ 아시아투데이" 2015. 05. 08.
  16. 김일성#오가자(五家子)에서의 살인 - 길흑농민동맹사건
  17. 이명영(李命英, 1928~2000), 《김일성 열전(金日成 列傳)》 (新文化社, 1974) pp.122~124.
  18. 이명영, 진위 김일성 열전 (9) 김성주의 별명도 김일성 중앙일보 1974.04.15 종합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