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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최근 수정 : 2019년 7월 22일 (월) 17:13

민족문제연구소는 재야사학자이자 문학평론가 임종국의 유지를 받들어서 1991년 창립한 역사연구 단체다. 초대 소장으로는 김봉우, 2대 소장으로 헌법학자 한상범이 역임한 바 있고 현재는 3대 소장으로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재직 중이다. [1].

설립 당시의 명칭은 '반민족문제연구소'였으나 1995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로 바뀌었다. 여러 한일 단체들이 매년 진행하는 야스쿠니신사 반대 공동행동 행사에도 동참하고 있으며, 그밖에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추모 행사 사업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서적

일제의 식민지 정책, 대한민국 해방 후 과거 청산 문제 및 일본의 과거사 반성 문제를 다룬 학술 서적과 잡지들을 내고 있으며, 임종국의 저서들도 일부 재발간하고 있다. 이곳에서 발간된 서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임종국의 친일파 연구자료를 기초로 하여서 후대의 현대사 연구자들이 보강해서 출판한 친일인명사전이다.

논란

백년전쟁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 중 2012년 12월 나온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에 관한 프레이저 보고서를 토대로 한 '백년전쟁' 시리즈가 있는데 이 동영상에서 두 대통령에 관한 해석을 놓고 대조적인 반응이 나왔다.

자유민주주의 세력은 이승만이 노디 킴이라는 여성과 불륜관계로 기소 되었다는 내용에 대해 기소는 있었지만 무혐의로 처리되었음에도 기소 부분만 묘사하였고 박정희가 성격 때문에 '스네이크 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는 내용이나 남로당 가입이력 등에 대해 왜곡과 명예훼손이라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서 민족주의 사학자들 및 개혁진보 언론은 해당 내용이 사실관계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적인 역사 해석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견지했다.

또한, 양측에서 주요 쟁점이 되었던 문제 중 '스네이크 박'이라는 별명과 경제개발 계획 관련하여 미국의 요구에 굴복한 꼭두각시라는 표현은 사자명예훼손으로 간주되어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징계 결정 및 재판부의 징계 결정 취소 청구의 기각에 결정적인 요인으로도 작용하였다.

2013년 7월, 위 영상을 TV에 방영했던 RTV 측에 방송통신위원회백년전쟁이 객관성, 공정성, 명예훼손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며 ‘관계자 징계 및 경고’의 중징계를 내렸다.[2]

RTV는 이에 대해 방송 내용이 각종 사료에 근거하고 있고, 징계가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의 내용 보호를 명시하는 법률의 취지에 반한다며 재심을 요구했으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역사적으로 다양한 해석이 공존하지만 편향된 내용을 방송한 사실이 있다"라고 재심을 기각하였다.[3]

이에 대해 RTV는 서울행정법원에 재차 소송을 냈지만, 재판부는 "특정 자료와 관점에 기반을 둔 역사적 사실과 위인에 대한 평가는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지 않는 한 그 자체로 의도적인 사실 왜곡이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추측이나 과장, 단정적 표현, 편집기술을 통해 사실관계와 평가를 왜곡했다"며 "이는 명예를 훼손하고 공정성, 객관성을 위반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4]

이갑성 친일 의혹 논란

민족문제연구소는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독립운동가 이갑성의 친일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첫째, 이갑성이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의 촉탁(비서)이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국내에 남아있는 조선총독부 자료를 검토한 결과 마루야마의 촉탁 명단에는 없었다. 비공식적인 촉탁이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으나 일본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아도 마루야마와 이갑성의 접점은 없다.

둘째로 1930년대 상하이에서 활동할 당시 창씨명(岩本正一, 이와모토 쇼이치)으로 일제의 밀정으로 활동했으며, 그 근거로 명함이 발견되었으나 호적 자료를 확인한 결과 이갑성은 1940년 7월 23일에 창씨개명을 하였다. 또한 명함에 적혀있던 이름으로 볼 때 만주에 있었던 기업으로 추정되는 '일만 산업공사'는 존재한 적이 없는 기업으로 밝혀졌다.

셋째로 미쯔미시 주식회사의 신경 출장소장을 역임했다는 의혹이 있었으나 미쯔비시 본사의 사료를 검토한 결과 신경 출장소는 물론 어느 출장소에서도 이갑성을 비롯한 조선인의 근무기록은 없었다.

오히려 1934년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국외에 거주하는 조선인 중 독립운동을 한 경력이 있는 등의 이유로 주시해야 할 인물들을 기록 발행한 <국외 용의 조선인 명부>에 이갑성의 이름이 적혀있다. 명부의 기록을 보면, 1930년대 이갑성이 상해에 거주할 당시 30년대 중반부터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940년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 사건으로 7개월간 복역한 기록도 있음을 볼 때, 이갑성의 일부 관련자의 증언만을 토대로 한 친일 의혹은 근거가 없다. 위 내용은 2005년 3월 1일에 삼일절 특집으로 방송한 SBS 뉴스 추적을 토대로 서술되었다.[5]

결국, 민족문제연구소 등 여러 방면에서 오랫동안 친일파라는 공격을 받아온 이갑성은 SBS의 심층 취재와 2006년 '민족대표 33인의 재조명 학술대회'를 통해 논박되면서 뒤늦게 친일파 누명에서 벗어났다.[6][7]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없는 상태나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이갑성의 이름이 빠진 것으로 보아 민족문제연구소 측에서는 이갑성의 친일 의혹 제기를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연관 문서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인연구소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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