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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5월 28일자 경성일보(京城日報) 기사 "匪賊物語, 宿命の子,金日成, 注目すべき最近の薪戰術".

계통(系統)과 조직(組織)

저들 비적의 계통, 조직은 상세하지는 않지만, 대강 동북항일연합군을 근간으로 그 아래에 제1로군에서 제4로군이 있고, 그 아래에 제1군으로부터 제6군이, 그리고 또 그 아래에 사(師), 다시 그 아래가 단(團), 연(連)으로 나뉘어져 있다. 비적이라 하더라도 오늘날의 비적은 결코 오합지중(烏合之衆)이 아닌 이상과 같이 훌륭하게 군대식 편성을 가지고 규율, 훈련, 장비, 연락 등에 업신여기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함남북 대안의 밀림지대를 근성(根城)으로 삼아 준동하는 적들은 주로 양정우비(楊靖宇匪) 휘하의 김일성(金日成) 일당이라고 보아도 좋다. 이 양정우라는 놈은 만인(滿人)이지만 상당한 강자로 제일로군의 총사령, 이른바 군사령관격(軍司令官格)이다. 양정우는 통화(通化), 길림 화전(吉林 樺甸), 영안(寧安), 돈화(敦化) 등지를 근성(根城)으로 동북만(東北滿)을 도맡아 그 수중에 넣고 스스로 그 제1군의 군장(軍長)이 되어 정치주임(政主)에 안광훈(安光勳)을, 참모장에 김세형(金世衡)을 배치하고 제1사(第一師)에서 제6사(第六師)를 이끌고 천청록림(天晴綠林)의 왕자 기색으로 군림하고 있다.

작년에 함남(咸南) 보천보(普天堡)를 습격하여[1] 흉포의 극치를 떨쳤으며, 오늘날 또 함남국경 방면에서 함북으로 침입하여 우리 토벌대와 교전중인 김일성비(金日成匪)의 우두머리, 김일성은 이 양정우의 회칼(懐刀)로 제6사장(사단장격)이며 아직 스물여덟 청년이다. 그는 매우 흉포한 성격을 가지고 전후 수십 차례에 걸친 습격사건으로 인해 조선내(鮮内)의 상황에 정통하여 백두산 기슭의 그 밀림 속을 마치 자기 집처럼 출몰해서는 치안을 교란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반도인이며 함남 갑산(咸南甲山) 태생으로, 그 아버지는 지난 만세소요(萬歲騷) 사건[2]의 거괴(巨魁)로 사형당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숙명의 아들이었다, 그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는 선천적인 부모의 것이다, 어린 나이에 동변도(東邊道)로 건너가 큰아버지 곁에서 자라났으나 타고난 흉포성은 마침내 달려들어 비적떼에 투신하여 깨지 못하는 미몽을 쫓고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기구한 그의 반생(半生)이었다. 일설(樺甸縣)에는 지난 1936년 11월 화전현(樺甸縣)에서 만군 토벌대에게 사살되었으므로[3] 김영산(金永山)이라는 반도인(半島人)이 제2의 김일성으로서 그 뒤를 이었다고도 알려져 있으나 자세하지는 않다.

양정우비(楊靖宇匪)는 또 제2방면군이라는 것을 편성하여 선만국경(鮮滿國境) 교란을 기도하고 있다, 지금 그 편성을 보면 총사령이 양정우이고, 그 직계의 군장에 김일성을, 참모장으로 임수산(林水山)을 배치하고, 제7단부터 제10단까지 3단을 예하로 하여 다른 유격대를 배치하고 그 총세는 700명의 다수에 이르고 있다.

이상의 계통조직은 항상 유기적인 연락을 유지하고, 게다가 그 배후에는 코민테른이 실을 조종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 주목할 만한 경향은 그들의 놀라운 적색화(赤色化)이다.
필요 이상의 살벌 흉포는 아니지만 사상적으로 양민에게 호소하여 이를 획득하는 부드러운 경향으로 이행해 온 것이다(계속된다[4])

系統と組織
彼等匪賊の系統、組織は詳かではないが、大體、東北抗日聯合軍を根幹としてその下に第一路軍から 第四路軍があり、その下に第一軍から第六軍があつて又その下に師更にその下が團、連に分れてゐる 匪賊と雖も今日の匪賊は決して 烏合の衆ではない、以上のやうに立派に軍隊式な編成を有し規律、訓練、裝備、連絡などに侮り難いも のがある、咸南北對岸の密林地帶を根城にして蠢動する賊は主とし
て楊靖宇匪の配下で金日成の一味であると見てよい、この楊靖宇といふ奴は滿人だが相當の強か者で第一路の軍總司令、謂はば軍司令官格である、楊靖宇は通化、吉林樺甸、寧安、敦化等を根城に東北滿を一手にその手中にをさめ、自らその第一軍の軍長となり政主に 安光勳を、参謀長に金世衡を配し第一師から第六師を率ゐて天晴れ綠林の王者氣取りで君臨してゐる 昨年咸南の普天堡を襲つて兇暴の限りを盡し、今日又咸南國境方面から咸北に侵入して我が討伐隊と交戦中の金日成匪の頭目、金日成はこの楊靖宇の懐刀で第六師長(師團長格) まだ二十八の青年で ある、彼は非常に兇暴な性格をもち前後數十回に亘る襲撃事件によ

つて鮮内の狀況に精通し、白頭山麓のあの密林の中を恰も我家の如く出沒しては治安を攪亂してゐるのである、それに彼はもとく半島人であり咸南甲山の生れで、その父は過ぐる萬歲騷き事件の巨魁で死刑となつた、いけば彼は生れながらにして宿命の子であつた、 彼の民族主義的イデオロギーは先天的な親讓りのものである、幼少にして東邊道に渡り、伯父の許に育つたが生來の兇暴性は遂に驅つて匪賊の群に投せしめ醒めやらぬ迷夢を追つて自ら破滅への道を辿[5]つてゐる...........といふのが數奇な彼の半生なのであつた、一說には過ぐる昭和十一年十一月樺甸縣で滿軍討伐隊に射殺されたので金永山 半島人なる者が第二の金日成とし

てその後を繼いだともいはれてゐが詳かではない 楊靖宇匪は又、第二方面軍といふものを編成して鮮滿國境の攪亂を企てゐる、今その編成を見ると總司令が楊靖宇で、その直系の軍長に金日成を 参謀長に林水山を配し、第七團から 第十團まで三團を配下として他に遊擊隊を配しその總勢は七百名の多數に上つてゐる

以上の系統組織は常に有機的な 連絡を保ち、しかもその背後に はコミンテルンが糸を操つてゐることはいふまでもない
近時注目すべき傾向は彼等の驚くべき 赤色化である
必要以上の殺伐兇暴はやらぬが 思想的に良民に呼びかけてこれ を獲得するといふやうな傾向に 移行して來たことである(つづく[4])
후속 기사 : 匪賊物語, 食糧獲得に汲汲, 全滅は時間の問題 경성일보(京城日報) 1939년 05월 30일 5면 2단

참고

각주

  1. 보천보 사건이 일어난 때는 작년(1938년)이 아닌 재작년(1937년) 6월 4일이다.
  2. 3.1운동을 말함.
  3. 6사장 김일성이 만주군에 사살된 때는 1936년(소화 11년)이 아닌 1937년(소화 12년) 11월이며, 장소도 화전현(樺甸縣) 아닌 무송현(撫松縣)이다. 보천보 사건 5개월 뒤에 사살되었다.
  4. 4.0 4.1 匪賊物語, 食糧獲得に汲汲, 全滅は時間の問題 경성일보(京城日報) 1939년 05월 30일 5면 2단 : 비적활동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이 나오나, 김일성에 대해서는 5월 중순 함경남도 대안에서 북상하여 함경북도 대안으로 옮겨왔다는 정도로만 나온다.
  5. 辿 : 천천히 걸을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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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2023년 7월 17일 (월) 07:40825 × 2,847 (1.39 MB)JohnDoe (토론 | 기여)1939년 5월 28일자 경성일보(京城日報) 기사 匪賊物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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