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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중 체포된 김일성 전속 간호사 조옥희(趙玉姬, 25세)의 기자회견 기사 : 국제신보(國際新報) 1951년 3월 1일자 2면

金日成의 非人道的 私生活
數많은 女性을 弄絡
心臟病, 性病에 혼겁
金日成專屬看護婦의 談

本籍을 平北 義州郡 廣坪面 淸水洞[1]에 둔 趙玉姬(二五)는 新義州高等看護學院을 修了하고 中央病院에 就職한 後 金日成專屬看護婦로 있다가 國聯軍의 平壤 後退時 越南, 馬山에 滯留한 後 今般 釜山에 와서 某機關에 勤務中이라는 바 昨合同搜査本部部長 金昌龍[2] 大領室에서 出入記者團에 金日成의 非人道的인 私生活의 內容을 暴露하였다.
그의 말하는 바에 依하면 北韓에는 中央病院이 있어 그 病院에서는 北韓傀儡들의 部長(大韓民國의 局長級) 以上의 人物이 治療를 받는 곳이라 하며 特히 金日成이 治療를 받을 때는 數十名의 護衛병이 警戒를 한다고 한다. 또한 金日成의 健康狀態는 不良하며 現在 心臟病에 걸려있다 한다. 特히 男女平等權을 부르짓는 金日成은 많은 女性을 弄絡하여 甚至於는 多種의 性病에 걸려서 現在 (사루바루산)[3] (페니시링) 等의 注射를 맞는다 한다.
金日成은 一九四八年 봄에 打字秘書 金성팔(女)[4]과 不義의 關係를 매저 妊娠한 結果 婦人科 醫師 黃병건[5]에게 內密히 手術 落胎시켰다 한다. 前記 趙는 金日成의 妻가 순産時 直接 看護하였는데 (?)置태盤[6][7]으로 出血이 甚하여 手術台 위에서 絶命하였다. 이로 因하여 中央病院의 院長以下 各所屬長과 前趙는 責任追究를 當하고 罷免되었다 한다. 金日成의 子息으로서 金유라(十一)[8]와 金경子(五)[9]의 女兒가 있다 한다.

이들 生活面을 綜合하여보건데 金日成은 男女平等權의 허울조흔 "탈"을 쓰고 모든 女性을 유린하며 甚지어는 맹장념(盲腸炎)을 手術 할 때는 自己部下를 믿을 수 없다하여 "쏘련"까지 갓다 한다.

김정숙은 4번째 아기를 출산 중에 전치태반(前置胎盤, Placenta previa)[10]으로 인한 과다 출혈로 사망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전치태반은 요즘은 사전 진단으로 알 수 있고, 출산에 임박하여 제왕절개 등으로 위험을 피할 수 있지만, 당시 의술로는 사전 진단이 어려워 출산시 산모가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것을 막기 어려웠다.

국제신보(國際新報)는 현재의 국제신문(國際新聞)으로 부산에서 간행되는 신문임. 6.25 당시 부산은 임시수도였다.

각주

  1. 독립운동가 오동진(吳東振, 1889~1944)이 平北 義州郡 廣坪面 淸水洞 출신이다.
  2. 김창룡(金昌龍, 1916~195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Salvarsan 또는 화합물 606호 (compound 606) : Arsphenamine
  4. 나중에 김일성의 후처가 된 김성애의 초명이다.
  5. 정확한 이름은 황명곤(黃明坤)으로 보인다 : 이명영(李命英, 1928 ~ 2000), 《金日成 列傳》 (신문화사, 1974) p.343 참고.
  6. 전치태반(前置胎盤)으로 "전" 자가 누락되었다 : 전치태반(前置胎盤) : 삼성병원 / 전치태반(前置胎盤) : 고려대 안암병원
  7. 임신 중의 심각한 문제들 ▣ 전치태반 중앙일보 2004.11.16
  8. 당시에도 김정일은 소련식 이름 유라를 그대로 쓰고 있다.
  9. 김경자는 김경희의 처음 이름으로 보인다.
  10. Placenta pre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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