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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유립이 1979년에 출간한 책. 위서로 판명난지 오래이나 환빠들이 여전히 추종하고 있다.

까는 입장에서는 황당고기라고도 한다.

서지학적으로 보면 당대에 쓰일 수 없는 근대적인 용어가 나온다.

예를 들자면 영고탑(청나라 때 명명된 지명)이라는 지명이라던지

문화(컬쳐라는 서양의 개념을 일본인이 번역)라는 말이라던지


원래 고대는 작은 부족 성읍국가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커져가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고대에는 환국과 같은 큰 나라를 만들 수도, 경영 지배 할 수도 없었다.

행정력이나 교통 통신 등등 이런 것들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주나라도 직할지는 매우 작은 나라였다. 넓은 곳을 직접 경영할 수 없었기에 친인척 등등에게 영지를 분봉하였다.

로마도 작은 성읍국가에서 시작했다.

이건 환단고기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치고, 그런 환국의 후예로 볼 수 있는 한반도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삼한이라고 하는 마한 진한 변한도 단일 국가가 아니라 여러 많은 (몇십개나 되는)소국의 연맹체였다.

신라가 병합한 가야도 이런 소국의 연합이었고, 백제도 전라도 지역에는 소국들의 연합인 마한이 여전히 오랫동안 잔존하고 있어서,

백제가 전라도 지역의 마한을 완전히 병합해서 언제 그 곳을 직할 통치했는지 학계에 여러 이설이 있다.

고구려 신라 백제도 처음은 작은 나라에서 시작했다 예외가 없다.

게다가 환국은 청동기나 철기 같은 시대보다도 전에 대부분의 지역이 석기 시대 였을 때,

그런 광활한 영토의 국가를 만들었다고 하니 더더욱 신빙성이 떨어진다.)

결정적으로 고고학적 유물과 배치된다. 당대 기록도 없을 뿐더러

인류 최초의 역사기록은 기원전 3000년대 후반 수메르인들이 남긴 점토판 기록인데, 이보다 훨씬 앞서 문자도 없던 기원전 7000년대의 소위 환국의 역사가 전해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것도 1979년에 처음 나타난 책에 나오는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또 기원전 7000년대에는 지구상의 인구도 얼마되지 않아 대부분의 지역에는 사람도 살지 않고, 지명도 없을 때라 자신의 거주지 인근 외에는 어느 방향으로 어디에 어떤 곳이 있는지 알 수도 없고 교통로도 없던 시기인데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통치하는 국가가 존재할 수도 없다.

이유립은 고성 이씨(固城 李氏)인데, 환단고기 중의 단군세기(檀君世紀)를 지었다는 행촌(杏村) 이암(李嵒, 1297~1364)

이나 태백일사(太白逸史)를 지었다는 이맥(李陌, 1455~1528)은 그의 고성이씨 문중 선조이다. 위서를 지으면서 자기 집안 선대의 저작으로 꾸민 것이다.


대순진리회 계열 종교인 증산도 쪽에서 미는 책이다.

그쪽 방송인 상생방송(케이블 방송에 진출해 있다)에서 강연도 하고 증보판을 내고 있다.

2. 환단고기가 위서인 증거들

환단고기가 위서인 증거들은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2.1. 단군 때 '송화강'에 '공장'을? -가짜책 '단군세기'

행촌(杏村) 이암(李嵒, 1297~1364)이 1363년에 지었다는 환단고기의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만주의 송화강(松花江)이 나오는데, 이런 강 이름은 1363년 당시에는 없었고, 명대(明代) 선덕연간(宣德年间, 1426~1435)에 처음 등장한 이름이다.[1] 1363년 당시에는 ‘송와강(宋瓦江)’[2] 혹은 ‘혼동강(混同江)’으로 불렸다.

    행촌 이암이 썼다는 '단군세기'에 ‘송화강(松花江)’에 조선소를 세웠다는 기사가 나온다. 또 그 송화강에 일각수(一角獸)가 출현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하지만 ‘단군세기’를 썼다는 서기 1363년에 ‘송화강(松花江)’은 없었다. 그때 백두산 북쪽에 흐르던 강 이름은 ‘송화강(松花江)’이 아니라 ‘송와강(宋瓦江)’ 혹은 ‘혼동강(混同江)’이었다. ‘단군세기’가 참고로 한 ‘단기고사(檀奇古史)’를 대야발(大野勃)이 썼다는 8세기에도 송화강은 없었다. 그때 송화강 이름은 ‘粟末水(속말수)’였다. 모두 가짜.

이 외에도 태백일사에 나오는 하얼빈(哈爾濱) 같은 지명은[3] 1864년에야 처음 나타나며,[4] 영고탑(寧古塔) 등 집필했다는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던 지명이 숱하게 나오므로 환단고기는 후대에 조작해낸 위서일 수 밖에 없다.

2.2. 이태백전서의 옥진총담(玉塵叢談)은 1924년 동아일보 기사 표절

환단고기의 《태백일사(太白逸史)》에는 발해에 가림토(加臨土) 문자가 있었다면서 이태백전서(李太白全書)의 옥진총담(玉塵叢談)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옥진총담(玉塵叢談)은 이태백전집(李太白全集)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5]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글(책)이다. 옥진총담(玉塵叢談)은 유일하게 1924년 신채호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만 나오므로 신채호가 지어낸 가공의 책 이름으로 보이며, 이를 베껴쓴 태백일사는 1924년 이후에 쓰인 명백한 위서이다.

아래 박상석의 논문과 박종인의 유튜브 방송에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초대 부통령 이시영(李始榮, 1868~1953)의 1934년 간행 《감시만어(感時漫語)》 p.9 에 나오는 이태백전서 옥진총담(李太白全書玉塵叢談). 이 내용은 신채호의 1924년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이며, 《감시만어(感時漫語)》의 이 부분을 다시 환단고기가 베낀 것으로 보인다.

초대 부통령 이시영(李始榮, 1868~1953)이 1934년 중국 상해에서 간행한 저서 감시만어(感時漫語)에 이태백전서 옥진총담(李太白全書玉塵叢談)이 나오므로 이유립신채호의 동아일보 기고문보다는 이시영의 감시만어(感時漫語)을 베낀 것 같다. 감시만어 내용의 원출처는 신채호의 동아일보 기고문으로 보인다. 감시만어는 대종교적 역사인식에 기반을 둔 역사평론서로 1983년 일조각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감시만어(感時漫語) : 駁黃炎培之 韓史觀 省齋李始榮先生紀念事業會 編 (서울: 一潮閣, 1983)[6]
p.9 [原文] 韓族 言語 文字 及 道敎 : ...且李太白全書玉塵叢談云. 渤海國有書於唐國. 擧朝無解之者. 惟李白能解而答之.

아래 영상에 이태백전서 옥진총담(李太白全書玉塵叢談) 관련한 논란의 총정리가 나온다. 환단고기 태백일사의 관련 부분은이시영의 감시만어(感時漫語)를 베낀 것이며, 감시만어는 김윤경(金允經)의 동광 기고문을, 김윤경은 신채호의 1924년 동아일보 기고문을 참고하고 인용하였다.

계봉우(桂奉瑀, 1880~1953)의 1936년 저서 『조선역사(朝鮮歷史)』에도 발해문자에 대한 부분에 이태백의 답번서와 옥진총담(玉塵叢談)과 금고기관(今古奇觀)이 나온다. 이는 신채호의 1924년 동아일보 기고문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를 보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태백일사에는 금고기관(今古奇觀)이 나오지 않으며, 조선역사에는 발해문자라는 가림토문자에 대한 말도 없고 발해 문자는 전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계봉우가 태백일사를 보았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옥진총담(玉塵叢談)은 실재한 적이 없고,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가공의 책이지만, 신채호의 동아일보 기고문과 환단고기 때문에 마치 실존하는 문헌인 것처럼 말하는 경우도 많다.[7][8]

명대(明代)에 포옹노인(抱甕老人)이 편찬한 단편소설집 금고기관(今古奇觀)의 <이적선취초혁만서(李謫仙醉草嚇蠻書)>에 문제의 이태백 관련 사안이 실려 있으나,[9] 역사서 아닌 소설책인데다 최초 간행은 1632~1644년 간에 이루어져, 태백일사의 저자라는 이맥(李陌, 1455~1528)이 이 책을 참고할 수는 없었고, 태백일사에도 이 책에 대한 언급은 없다. 여기의 <이적선취초혁만서(李謫仙醉草嚇蠻書)>는 1624년 간행된 풍몽룡(馮夢龍, 1574~1646)의 소설집 《경세통언(警世通言)》에 실린 것을 전재한 것으로 보이며, 원작자는 풍몽룡이다.[10] 당 현종 당시의 역사기록을 보면 발해와는 큰 문제가 없었으므로 이태백이 답서를 지어보낸 나라는 거란(契丹)이나 토번(吐蕃, 티벳)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11][12] 원대(元代)의 잡극(雜劇) 작가 왕백성(王伯成)의 《이태백폄야랑(李太白貶夜郞)》이나,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의 소설 《수당양조지전(隋唐兩朝志傳)》에는 이태백이 답서를 보낸 나라가 거란(契丹)이라 했다.[13][14] 따라서 이태백이 발해에 답서를 보냈다는 말은 1624년에 소설에 처음 나온 말이므로 이맥(李陌, 1455~1528)이 지었다는 태백일사에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후대에 지은 위서라는 증거이다.

위 금고기관(今古奇觀)의 이태백 관련 사안은 소설에서 나온 말이므로 발해 문자의 증거가 되기는 무리이지만, 고려사에 발해에 문자가 있었다고 나온다.[15] 환단고기는 왜 고려사는 보지 않고 엉뚱한 신채호의 1924년 글을 베꼈는지 의문이다.

2.3. 일본 육군참모본부가 1889년 간행한 《만주지지(滿洲地誌)》도 베껴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 나오는 아래 글 중 밑줄 친 부분은 일제 육군참모본부가 1889년 편찬한 《만주지지(滿洲地誌)》의[16] 중국어 번역본에서 베껴온 것이다.[17] 지능(智能)이란 말은 옛문헌에는 쓰이지 않았고, 근현대에 와서야 쓰이는 말이다.

『《표훈천사(表訓天詞)》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대시에 상하와 동서남북 사방에는 아직 암흑이 보이지 않았고 언제나 오직 한 광명뿐이었다. 천상 세계에 문득 삼신이 계셨으니 곧 한 분 상제님이시다. 주체는 일신이시니, 각기 따로 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용으로 보면 삼신이시다.
삼신은 조화로 만물을 빚어내고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능력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지만 그 형체를 드러내지 않으신다. 가장 높고 높은 하늘에 앉아게시니 그곳은 천만 억 토이다. 삼신은 항상 광명을 크게 방출하고 신묘한 기운을 크게 발하며 상서로운 기운을 크게 내리신다. 기를 불어넣어 만유를 감싸고 열을 내뿜어 만물의 종자를 자라게 하며 신명들로 하여금 삼신상제님의 천명을 집행하게 하여 세상일을 다스리신다.』

『表訓天詞云, 大始上下四方, 曾未見暗黑, 古往今來, 只一光明矣. 自上界却有三神, 卽一上帝, 主體則爲一神, 非各有神也. 作用則三神也. 三神有引出萬物, 統治全世界之無量智能, 不見其形體, 而坐於最上上之天, 所居千萬億上, 恒時大放光明, 大發神玅, 大降吉祥, 呵氣於包萬有, 射熱以滋物種, 行神以理世務.』

《만주지지(滿洲地誌)》의 중국어 번역본에서[17] 오역(誤譯)까지 그대로 베껴온 말을 조선 예종 때인 1469년 수거령을 내린 도서 목록에 포함된 《표훈천사(表訓天詞)》에 나오는 말로 조작했다.[18] 이유립이 1979년 환단고기를 간행하기에 앞서 쓴 다른 글에서는 동일한 문장의 출처를 《만주지(滿洲志)》라고 밝힌 것도 있어 그는 알면서도 고의로 조작을 한 것이다.

환단고기 뿐만 아니라 1675년 편찬되었다는 《규원사화(揆園史話)》에도 똑같은 내용이 나오므로 두 책 모두 위서인 것이 증명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방송과 기사에 나온다.

‘배달민족’ 처음 나오는 《규원사화(揆園史話)》, 일본군 참모본부의 《만주지》 베낀 것

3. 이재명의 환단고기 논란

이재명 대통령은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이라고는 믿기 힘든 즉흥적이고 무식함을 드러낸 환단고기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야당 정치권에서도 비판하고 나섰다.


3.1. 이재명의 환단고기 발언..

박지향 동북아 역사재단 이사장에 '환단고기 논쟁' 물어

이재명은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자리에서 “환빠 논쟁이 있지 않느냐”, “사료는 문헌만을 의미하느냐”,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니냐”라는등 즉흥적으로 질문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재명은 질의 과정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질문이라 보기 힘든 질문도 했는데 임기가 언제까지냐며 노골적으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모욕하며 퇴진을 압박하는 행태를 보였다.[19] 이재명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는 다른 나라 언론에서도 이재명의 기행은 좋은 뉴스 거리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없이 떨어뜨리는 이재명의 행태에 화가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는 나라의 국격이나 국익 보다도 이재명 자신의 안전과 사익에 매몰된 조선말 고종과 같은 행보를 보인다는 평이다.

한편 이재명의 돌출된 행동은 박지향 이사장이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전날에도 이재명은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인천국제공항공사 이사장에게도 똑같은 모욕적인 질문을 하는 작태를 보였었다.

박지향 이사장은 재야 사학보다 전문 연구자의 검증된 학설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답했으나, 대통령은 문헌 사료의 범위를 문제 삼으며 근본적 역사 인식 차이를 언급했다. 해당 발언은 공식 보고와 무관한 즉석 질문으로, 대통령 개인의 관심사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환단고기는 주류 역사학계에서 출처 불명과 시대착오적 표현 등을 이유로 이미 위서로 정리된 책이다. 역사학계는 대통령이 검증된 학문과 유사역사를 동일선상에 올린 점을 위험하고 부적절하다고 비판하며, 국가 지도자의 역사 발언은 외교·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이재명의 환빠 논란을 지켜보던 48개 역사 학회에서는 성명서를 밝표했다.

  • 이재명 정부와 정치권은 사이비 역사'에 선 그어야"
  • "'환단고기'는 명백한 위서, 그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대아시아주의와 맞닿아 있다"

대통령실 김남준 대변인은 “역사를 어떤 시각과 입장에서 볼지가 중요하고, 그 가운데 입장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결론이었다”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인지하는지, 역사관을 어떻게 수립할 것이냐의 질문 과정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친일에 협력한 이들의 주장, 위안부는 자발적이었다는 주장,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예로 들며 “마찬가지로 그 주장이 어느 문헌에 나오는지와 어느 전문연구가가 주장하는지 물을 수 있다”고 했다.[20]

대변인의 이런 말은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하는 학계 대다수 사람들을 친일로 몰아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환단고기 자체가 1920년대 일본 극우들의 주장을 그대로 모방한 극단적인 친일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어떤 시각과 입장에서 볼지가 중요하다면서 학자도 아닌 정치인이 사실이 아닌 위서에 기반한 역사를 강요하려드는 행태이다.


3.2. 정치권으로 번진 환단고기 논란

이재명의 환빠 논란에 정치권에서도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박지향 동북아 역사재단 이사장에 '환단고기 논쟁' 물어

정치권에서는 “철 지난 환단고기 타령”. “동북아공정보다 더한 역사 환상”, “환단고기를 관점의 차이라고 하는 건 백설공주가 실존인물", "환단고기가 역사라면 반지의 제왕도 역사" 라며 비아냥 거리가 되었다.

朴 "문헌 사료를 중시한다"
李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환단고기를 관점의 차이라고 하는 건 백설공주가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며,  “개인의 소신을 역사에 강요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나경원 의원은 자신의 SNS에 “(이 대통령이) 철 지난 환단고기 타령을 늘어놓았다. 정통 역사학자를 가르치려 드는 그 용감한 무식함에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비난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환단고기는 위작이다. 1911년 이전 어떤 사료에도 등장하지 않고 근대 일본식 한자어가 고대 기록에 나오며, 고고학적 증거와 정면 충돌한다”며 “환단고기가 역사라면 반지의 제왕도 역사”라고 비판했다.

朴 "문헌 사료를 중시한다"
李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


3.3. 이재명의 환단고기 옹호에 대한 비판

환단고기 파문의 남은 문제들

4. 참고 자료

[이문영의 유사역사학 체크] 유사역사학에서 계연수, 이관집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역할
세계환단학회지 (년2회 간행)

5. 함께 보기

6. 각주

  1. 松花江 - 维基百科
  2. 松瓦江도 아닌 宋瓦江임.
  3. 태백일사 : 蘇塗經典本訓 第五 神誌秘詞 ... 其曰秤坎、扶蘇樑者,是謂辰韓古都,亦卽檀君朝鮮所都阿斯達是也,亦卽今松花江、哈爾濱也。
  4. 哈爾濱市 维基百科 : 哈爾濱作為地名,首次見諸史料為同治三年(1864年)。
  5. 李白 撰, 李太白全集, 河洛圖書出版社, 1975.
  6. 1934년 이시영 선생은 천부경과 계연수를 언급했다 한韓문화 타임즈 2020.06.25
  7. "발해는 중국 일부 아니다" 당나라 때 이태백 기록 있다 중앙일보 2006. 9. 18
  8. 민족문화유산 《발해글자》 - 김일성종합대학 : [《수당연의》, 《옥진총담》과 같은 중국의 력사책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력사기록들이 올라있다.] 운운..
  9. 《今古奇觀 第八十卷 李謫仙醉草嚇蠻書》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10. 警世通言 《第九卷李謫仙醉草嚇蠻書》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11. 박상석, <이적선취초혁만서(李謫仙醉草嚇蠻書)>의 답번서담(答蕃書談) 연구 한국고전연구 47권 1호 (2019)
  12. 邵毅平 (复旦大学中文系教授), 《李谪仙醉草吓蛮书》的虚与实 - 新民晚报 2023. 11. 26.
  13. 《隋唐兩朝志傳》 第一○○回誅韋后睿宗即位 / 第一○一回李太白立掃番書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14. 구난희, 「李謫仙醉草嚇蠻書」 敍事 형성과 渤海 인식, 고구려발해연구 2023, vol.76, pp. 225-250
  15. 고려사 > 世家 卷第一 > 太祖 8年 > 9월 > 거란에 의해 멸망한 발해인들이 계속 귀부해오다
  16. 満洲地誌 全, 参謀本部編纂課 編 (메이지[明治] 27년, 1894년) pp.182~183. 이 책은 원래 1889년 참모본부에서 편찬한 《지나지지(支那地誌)》의 제15권 〈만주부(滿洲部)〉를 별도로 간행한 것이다.
  17. 17.0 17.1 《만주지지(滿洲地志)》, 上海商務印書館, 光緖三十年(1904) 四月
  18. 예조에 명하여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수집하게 하다 예종실록7권, 예종 1년 9월 18일 무술 3/5 기사 / 1469년 명 성화(成化) 5년
  19. 일개 기업의 회의에서도 사장이 대놓고 특정인을 지목하여 "당신 임기가 언제까지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해 당사자가 느껴야 될 치욕감과 사퇴 압박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20. 대통령실 “李대통령 ‘환단고기’ 발언, 동의나 검토 지시 아니다” 중앙일보 202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