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 약칭 인공(人共))은 해방 직후 여운형 등 좌파들이 주도하여 만든 국가를 자칭하는 조직이며, 각료명단까지 발표하기도 했으나 미군정의 인정을 받지 못하여 실질적으로는 아무 기능도 하지 못했다. 이승만을 국가 주석으로 선임하고, 그가 귀국하자 취임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해방 직후 국내의 우파들은 임시정부의 귀국을 기다린다는 입장이었으나 좌파들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별도의 국가를 만들려고 시도한 것이 조선인민공화국이다. 미군정은 임시정부나 조선인민공화국 어느 쪽도 인정하지 않았다.

북한이 자칭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전혀 다른 조직이다.

개요


조선인민공화국 각료 선정에는 여운형박헌영 간에 의견차이가 상당히 커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여운형이 가평으로 내려간 사이에 박헌영이 기습적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여운형과 박헌영은 좌파 세력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국민적인 지지도는 여운형이 박헌영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여운형이 뭔가 일을 시작해 놓으면 박헌영 세력이 들어와 주도권을 차지하는 일이 잦아 두 사람 사이는 극도로 나빠지게 된다. 김일성여운형박헌영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가까워져 둘 사이에 밀서도 자주 오가고 비밀 회담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운형 암살의 배후가 박헌영이라는 주장도 있고, 김일성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중에 박헌영이 북한에서 숙청 당할 때 조선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이승만을 선정한 것도 중요한 빌미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언론 보도 기사

조선인민공화국 선포

해방 직후 여운형이 주도해 만든 조선건국준비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에서는 1945년 9月 6日 오후 9시 경기고녀 강당(京畿高女講堂)에서 전국인민대표자대회(全國人民代表者大會)를 열고 ‘인공’ 임시조직법안을 상정 통과시키고 조선인민공화국 전국인민위원(全國人民委員) 명단을 발표했다.

조선인민공화국 성립을 보도한 1945-09-07 매일신보 기사.[1]

조선인민공화국 각료명단 발표

1945년 9월 14일 오후 3시에 조선인민공화국 조각명단이 발표되었다. 주석은 이승만이다.

1945년 9월 14일 오후 3시 발표된 조선인민공화국 조각명단을 보도한 1945-09-24 민중일보 기사[2]

함께 보기

각주

  1. 매일신보 1945년 9월 3일 제1면 등 26종 p.3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2. 朝鮮人民共和國發表(九月十四日午後三時), 朝鮮人民共和國中央委員如左 민중일보[民衆日報] 1945년 09월 24일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