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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공화국 조각명단
최근 수정 : 2019년 4월 5일 (금) 19:36

동진공화국 조각명단(東震共和國 組閣名單)은 해방 당시 유포된 수많은 유언비어 중 하나이다. 해방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부터 동진공화국이 수립되며, 대통령 누구, 주요 각료는 누구라는 출처불명의 벽보와 비라가 전국 도처에 나돌았다. 명단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대부분 이승만, 김구, 여운형, 김일성(金日成) 등 4인을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 김일성의 존재가 국내에 아직 알려지기도 전에 그와는 다른 김일성이 해방 정국의 유력 인물로 거론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김일성 가짜설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자료이다.

개요

동진공화국(東震共和國)의 동진(東震)은 동쪽 진방(震方)[1]의 나라 즉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승만, 김구, 여운형, 김일성 등 4인을 포함한 동진공화국 조각명단은 해방 이튿날부터 벽보와 비라 형태로 전국 각지에 나돌았지만, 실물이나 사진은 현재 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은 혼란스러웠던 해방정국과 6.25 남침전쟁을 겪으면서 잊혀졌는데, 일본 패전 후 1946년 3월말까지 서울에 남아 일본인들의 본국 귀환 업무를 도운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1910-1992)가 1964년에 간행한 『조선 종전의 기록(朝鮮終戰の記錄)』[2]에서 이를 언급하면서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유언비어에 불과한데다 후대의 기록이라 김일성 진위 문제와 관련해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근래의 문헌 전산화 덕에 해방 직후 북한 김일성이 1945년 10월 14일 대중앞에 처음 출현하기 이전에 이를 기록한 문헌들이 몇 건 발굴되었다. 이는 북한에 김일성을 자칭하는 인물이 등장하기 전부터 김일성(金日成)이란 이름이 각료로 거론될 정도로 유명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 김일성은 이승만 김구 여운형 급의 유명인물이어야 하므로 당시 국내 사람들이 그 존재를 전혀 모르던 소련군 88여단의 진지첸(Цзин Жи Чен, Jing Zhichen, 북한 김일성) 대위가 아니라, 바로 1920년대부터 이름이 유명했으나 실제 누구인지는 불분명한 전설적인 김일성 장군으로 볼 수 있다.

9월 19일 소련 군함을 얻어타고 비밀리에 원산항으로 입북하여 평양에 온 소련군 진지첸 대위는 국내에서 무명인사에 불과했고, 김영환(金英煥)이란 가명으로 민심을 살피며 다니다 사람들이 김일성 장군을 주요 각료로 거론하며 귀국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 같은 이름을 사용하여 자신이 그 유명한 김일성 장군인 것처럼 행세한 것이다. 어릴 때 만주로 가서 거기서 성장하고 이후 동북항일연군과 소련군에 있었던 북한 김일성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어린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고향마을 사람들 몇몇 외에는 국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진공화국 각료명단을 기록한 문헌들은 북한 김일성이 가짜가 맞다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증거이며, 현재까지 발굴된 기록들은 아래와 같다.


동진공화국 조각명단 기록

동진공화국(東震共和國)의 동진을 東振 또는 東辰으로 쓴 기록도 있다.

북한에 김일성이라 자칭하는 자가 등장하기 전인 1945년 10월 14일 이전 기록이 특히 중요하다. 북한 김일성이 등장하기 전에 김일성 장군에 대해 보도한 신문 기사도 몇 건 있는데[3][4][5], 거의 전설화된 인물이며 북한 김일성이 아니다.

정관해(鄭觀海)의 《관란재 일기(觀瀾齋日記)》

정관해(鄭觀海, 1873~1949)의 《관란재일기(觀瀾齋日記)》[6]에는 동진공화국 조각명단과 함께 김일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7]

1945년 8월 17일 (음력 7월 10일) : "조선이 독립국이 되었고, 국호는 동진(東振)공화국이며 연호는 영세(永世)라 한다. 대통령은 안모 (안모는 전일의 안중근의 아들)이고, 내무대신은 여운형, 외무대신은 김일성(金日成)이라고 한다. [朝鮮爲獨立國, 國號東振共和國 年號永世, 大統領 安某, 安某 卽前日安重根之子, 內大 呂運亨, 外大 金日成云]"

1945년 8월 24일 (음력 7월 17일) : "신문을 얻어서 보니 쇼와(昭和) 천황이 4개국에 항복을 청한 것이 명확하다. 국호, 연호, 대통령, 내무 외무 대신의 설은 믿기 어렵다. [得新聞見之, 則昭和, 請降於四箇國明確, 若其國號, 年號, 統領, 內大外大之說, 皆不足信也.]"

1945년 8월 26일 (음력 7월 19일) : "김일성군(金日成軍)은 말타고 하루 500리를 달릴 수 있으며, 그 정예하기가 비할데 없다고 한다. [金日成軍, 一日能驅五百里, 其精銳無比云]"

김일성 군대는 말타고 천리마에 준하는 속도인 하루 5백리를 달릴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 김일성은 거의 전설화된 인물이며, 북한 김일성이 아니다. 북한 김일성은 만주 빨치산이나 소련군 시절 말타고 다니거나 기병부대를 거느린 적이 없다.

《최병채 일기(崔炳彩日記)》

전라북도 진산군(珍山郡, 현 충남 금산군 진산면)에 거주했던 최병채(崔炳彩, 1907~1974)가 쓴 《최병채 일기(崔炳彩日記)》 1945년 8월 18일(음력 7월 11일)자에도 아침 식사 후 지인들과 대전에 나갔다가 들은 바를 적고 있다.[8]

1945년 8월 18일 (음력 7월 11일) 토요일 : 七月十一日己未(陽八月十八日、土曜日)
대전시에 나갔다가 들은바로 조선의 독립이 확실하며 나라 명칭은 동진공화국(東辰共和國)이고, 연호도 역시 동진(東辰)이라 한다. [往大田市、依見聞、則朝鮮獨立的確、而名稱乃東辰共和國、年號亦東辰也。]
.............
대통령은 김구, 총리대신은 이승만, 외무대신은 여운형, 육군대신은 김일성이다. [大統領 金九、總理大臣 李承晩、外務大臣 呂運亨、陸軍大臣 金日成。]

《주한미군사》

미군정청 사람들도 동진공화국 조각명단이 든 비라 하나를 얻어 보고 《주한미군사(History of the United States Army Forces in Korea)》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원문 번역
Congratulations on the Independence of Chosen:

The Dawn of Democracy in the East
President -- Kim, Koo
Premier -- Rhee, Syng Man
Foreign Minister -- Lyuh, Woon Hyung
War Minister -- Kim, II Sawng
Chief of Staff -- Hwang, Wun

조선의 독립을 축하하며:

동방 민주주의의 새벽
대통령 - 김구(金九)
수상 - 이승만(李承晩)
외무장관 - 여운형(呂運亨)
국방장관 - 김일성(金日成)
총참모장 - 황운(黃雲)

"동방 민주주의의 새벽(The Dawn of Democracy in the East)"이란 말은 "동진공화국(東辰共和國)"을 번역한 말로 보인다. 辰은 보통 "진"으로 읽지만 "새벽 신"으로도 읽을 수 있으며, "晨(새벽 신)"과 같이 쓰이기도 한다. 황운(黃雲)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1944년 여운형 등과 함께 건국동맹(建國同盟) 설립에 참가한 사람으로 여운형계로 보인다.

미군은 동진공화국 조각명단을 박헌영, 여운형 등이 임의로 작성한 조선인민공화국 조각명단과 비교하며, 김구이승만을 명목상 지도자로 내세웠지만 공산당 계열이 작성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민해방보(人民解放報)

부산(釜山)에서 1945년 10월 8일 창간된 좌익지 『인민 해방보(人民解放報)』도 김구, 김일성, 여운형, 이승만 등으로 구성된 동진공화국(東震共和國)의 조각 명단(組閣名單)을 부산에서 처음 보도했다고 한다.[9] (보도 일자는 미상)

유수생(流水生)의 수필 《전재민(戰災民)》

동진공화국 조각명단 비라는 국내 뿐만 아니라 만주에까지 퍼졌던 모양이다. 동아일보 1947년 1월 7일자 4면에 실린 만주에서 귀환한 유수생(流水生, 필명)의 수필(隨筆) 《전재민(戰災民) : 만주잔류동포(滿洲殘留同胞)를 생각하며》에는 만주에서 해방을 맞았을 때 들려온 국내 소식으로 다음과 같이 나온다.[10]

우리 정부(政府)의 조각명부(組閣名簿)가 "삐라"에 실려 들어온다. 대통령(大統領)에 이승만박사(李承晚博士), 문교부대신(文敎部大臣)에 김성수씨(金性洙氏), 군부대신(軍部大臣)은 김일성씨 (金日成氏) 등々(等々) 그럴법하게 활자(活字)가 배열(配列)되였다. 누가 대통령(大統領)이거나 누가 무슨 대신(大臣)이거나 알배 아니다. 정부(政府)가 서고 독립(獨立)이 된다니 그저 좋앗다.

동진공화국 소식을 만주에서 방송으로 들었다는 사람들의 증언도 있다.[11][12]

채만식(蔡萬植)의 중편소설 《소년은 자란다》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이 1949년 2월 25일 탈고한 미발표 유고(遺稿)인 중편소설 《소년은 자란다》에도 해방 당시 떠돌던 뜬소문들 중에 동진공화국(東震共和國) 이야기가 나온다.[13][14]

5. 고국으로 고국으로

..........

고국에는 벌써 정부가 서 상해·중경(上海·重慶)에 가 있던 임시정부의 김구(金九)가 대통령으로, 김일성이 육군대신으로 모두들 들어앉았다더라.

국호를 동진공화국(東震共和國)이라고 정하였다더라.

기차가 도문(圖們)까지는 겨우 가나, 조선 땅 남양 (南陽)에서부터는 일체로 불통이 되어 시방 수만 명이 남양에 모여 오지도 가지도 못한다더라.

경향신문 기사

종로(鍾路) 네거리 한복판에는 「동진공화국수립(東震共和國樹立) 내각명단발표(內閣名單發表)」 운운(云云)한 정체불명(正體不明)의 「삐라」가 밤 사이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가하면 소련군(蘇聯軍)이 입성(入城)한다는 「데마」를 곧이고 군중(群衆)들은 서울역(驛)에 쇄도(殺到)하여 일대소동(一大騷動)을 일으키는 등(等) 가지가지 웃지 못할 이야기와 함께 광복(光復)을 맞이한 이 나라는 잠시(暫時) 무정부상태(無政府狀態)로 함입(陷入) 아니할 수 없었다.
처음엔 "동진공화국(東辰共和國)"이 선다는 말이 있었고 이승만(李承晩) 김구(金九)같은 이름이 벽보(壁報)에 나붙기도 했다. 모든 것이 어떨떨하고 그저 까닭없이 가슴은 부풀고 기쁘기만했다.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의 《조선종전(朝鮮終戰)의 기록(記錄)》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1910-1992)는 경성제대 사학과(京城帝大 史學科 朝鮮史 전공) 출신으로 다년간 조선에서 살았고, 일본 패전 후 1946년 3월말까지 서울에 남아 일본인들의 본국 귀환 업무를 도운 사람이다.[15] 당시 일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1964년 《조선종전의 기록(朝鮮終戰の記錄)》이란 책으로 간행했다. 해방 직후의 일에 대한 중요한 참고문헌이다. 여기에 나오는 동진공화국 각료명단을 종전까지 다수의 사람들이 인용하고 있었다.[2][16]

이즈음(8.16일경) 어디선지 모르게 「동진공화국(東震共和國)」의 수립이 전해지고 "대통령(大統領) 이승만(李承晩), 총리대신(總理大臣) 김구(金九), 육군대신(陸軍大臣) 김일성(金日成), 외무대신(外務大臣) 여운형(呂運亨), 기타 미정"의 각료 명단이 시내 요소에 나붙었다. 터무니없는 데마였지만 군중 속엔 그 성립을 믿는 이조차 적지 않았다.

모리타 요시오는 퇴직 후 한국의 성신여대(誠信女大)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고당 조만식(古堂 曺晩植)》

1966년에 간행된 《고당 조만식(古堂 曺晩植)》[17]에도 다음과 같이 나온다.

[pp.170~171]
평양 천지에서는 八월 二十五·六일 경까지의 해방 十일간이 자유의 황금시대(黃金時代)였다. 그러나 열흘 동안을 「시대」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짧고, 허무한 기간이었다
....
그러나 평온한 거리에도 때때로 정체불명의 정치적 벽보가 나붙어서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그 대부분은 혼란된 정치정세를 의미하는 오보(誤報)였다.
「김일성 장군이 평양에 입성한다」
「동진공화국(東震共和國) 내각 명단」
그런 종류의 오보가 흥분된 민심을 자극했다.

당시 평양에도 동진공화국 내각명단 벽보가 나붙었으며, 김일성 장군이 곧 평양에 입성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평양에 온 소련군 진지첸 대위(북한 김일성)도 이런 상황을 당연히 보았을 것이고, 자신이 사람들이 귀국을 기다리던 "김일성 장군" 행세를 하기로 한 것이다.

최영희(崔永禧)의 《격동의 해방 3년》

최영희(崔永禧, 1926-2005)의 《격동의 해방 3년》(1996)에 나오는 내용이다.[18]

1945년 8월 16일

.......

출처불명의 조각명단의 벽보가 곳곳에 나붙었다. 이 벽보에는 국호를 동진공화국(東震共和國), 대통령 이승만, 총리대신 김구, 육군대신 김일성, 외무대신 여운형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이런 류의 벽보 조각이 많이 나타났다.
  • 송남헌(宋南憲, 1914-2001)의 《해방 삼년사(解放 三年史) : 1945 – 1948》(서울, 까치, 1985) p.39 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참고 사항

동진공화국 조각명단은 비록 유언비어에 불과하지만, 해방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이승만, 김구, 여운형, 김일성을 들고 있었다. 이들 중 이승만, 김구, 여운형은 남한의 해방정국을 주도하였고, 명성만 있고 실체는 불분명한 김일성의 이름을 소련군이 데려온 꼭두각시 진지첸 대위가 사칭하면서 소련군의 도움으로 북한의 실권을 장악했다.

1944년 미군이 작성한 유력 조선인 명단

1944년에 미군이 만든 참고자료에는 한국이 해방될 경우 가장 유력한 인물로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 1883~1950),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1891~1955),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1892~1950), 양주삼(梁柱三, 1879~?) 박사, 좌옹(佐翁) 윤치호(尹致昊, 1866~1945) 등 5인을 들고 있는데, 모두 당시 국내에 있던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는 조만식은 북한주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으나 소련군에 의해 연금되면서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 김성수는 대한민국 건국 후 부통령을 지냈고, 다른 사람들은 정치활동은 하지 않았다.

<조선 유력인사 5명 美 인물평가 내용> 연합뉴스 2008-08-08 06:42
광복 1년전 美軍 정보당국이 작성한 '조선 지도자 5人' 평가표 조선일보 2008.08.09 / 종합 A2 면

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 조각명단

전국인민위원 명단 기사 원문에는 김일성(金日成) 아닌 김일성(金一成)으로 되어 있다.
조선인민공화국 조각 명단 : 朝鮮人民共和國發表(九月十四日午後三時) 민중일보(民衆日報) 1945년 09월 24일 1면

9월 14일 발표된 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 조각 명단은 박헌영 계열이 임의로 작성한 것이지만, 여기에는 동진공화국 조각명단에 빠짐없이 나오는 사람 중 유독 육군대신 김일성만 나오지 않는다. 유언비어인 동진공화국 조각명단과 달리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명단이므로 이름은 유명하나 실제로는 누군지 잘 모르는 김일성은 제외했을 것이다. 이보다 앞선 9월 6일에 발표한 조선인민공화국 전국인민위원(全國人民委員) 명단에는 김일성(金一成)이 들어 있는데, 북한 김일성이 아니라 동진공화국 육군대신으로 거론되던 김일성으로 보이며, 직무가 특정되지 않는 자리에는 지명도만으로 선임해도 별 문제될 것이 없어서 일 것이다. 당시는 이승만, 김구 등 해외에 있던 인사들이 귀국하기 전이므로 본인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임의로 작성한 명단이다. 명단 작성에 간여한 박헌영이나 여운형도 당시까지는 소련군 88여단의 존재나 진지첸 대위(북한 김일성)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88여단의 존재나, 김일성의 소련군 경력이 제대로 밝혀지는 것은 1990년 이후이고, 당시 소련군정이나 김일성 본인도 그의 소련군 경력을 극구 숨겼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은 북한 김일성의 전력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귀국길의 북한 김일성 일행이 거명한 유력 인물

진지첸(북한 김일성) 대위를 비롯한 소련군 88여단 조선인들은 1945년 9월 중순 육로로 입북을 위해 하바로프스크를 떠나 만주 무단장(牡丹江) 역에 도착했으나 일제가 기차 터널을 파괴하여 북한으로 가는 철길이 끊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역에서 서성거리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만주군관학교 출신 이기건(李奇建, 1919~ ?)이 그때의 대화에 대해 증언했다.[12][19]

다음은 蘇聯軍(소련군)의 포로취급을 받다 탈출, 歸還途中(귀환도중) 滿州(만주) 목단江驛(강역) 構內(구내)에서 金日成(김일성) 일당의 入北(입북)을 우연히 목격하게된 李奇建(이기건)씨(五三(오삼)·현內外問題研究所長(내외문제연구소장)·예비역준장)의 얘기.
......「하루빈」가는 기차를 타려고 목단江驛前(강역전)을 서성거릴 때입니다. 그때가 아마 八月(팔월) 하순경이 아닐까요. 驛構內(역구내)에 소련군장교 三(삼), 四十(사십)명 가량이 몰려있어요. 가까이갔더니 中國(중국)말로 얘기들을 하고 있었는데 그 어투로 봐서 韓國人(한국인)임이 틀림없었읍니다. 나는 中國語(중국어)에 능했지요. 그래서 그중 인상이 좋아보이는 자에게 다가가 우리말로 "당신 朝鮮(조선) 사람 아니요" 하고 반갑게 말을 붙였더니 그 말엔 대꾸를 않고 "당신은 누구요" 하고 우리말로 되물어요. 그래서 "나도 조선사람이요"했더니" 우리가 급히 조선으로 들어가려는데 왜놈들이 기차터널을 폭파해서 못 가고 있소"라고 대답합디다. 당시 목단江(강)에서 韓國(한국)의 청진 회령으로 들어가는 철도가 있었지만 咸鏡道(함경도)에서 가까운 老松嶺(노송령) 터널을 日軍(일군)이 폭파해서 막히는바람에 교통이 두절됐었지요. 그리고는 이어 "지금 朝鮮內部事情(조선내부사정)이 어떻게 됐느냐"고 캐물어요. 그래서 목단江市(강시)에서 "朝鮮(조선)에 東震共和國(동진공화국)이 탄생됐다"【注(주) : 해방직후인 八(팔)월하순 東震共和國(동진공화국)이라는 벽보내각이 나붙었으나 그 출처는 모른다】는 放送(방송)을 들은 기억이 떠올라 그 말을 전했더니 그 소련軍上尉(군상위) 복장을 한 韓國人(한국인)은 "金九(김구)요, 李承晩(이승만)이요" 하고 물읍디다. 모른다고 했읍니다. 한참있다 그 소련군 장교는 "우리는「블라디보스독」으로 일단 가서 거기서 배타고 朝鮮(조선)으로 들어가겠소"라고 말한 일이 있읍니다. 그런데 그 일당이 누구인지 모르고 헤어졌다가 내가 四七(사칠)년 북한에가서 소위 人民軍(인민군) 창설에 관여하면서 보니까 그때 목단江驛(강역)에서 보았던 그 蘇聯軍上尉(소련군상위)가 바로 北傀(북괴) 괴뢰軍總參謀長(군총참모장)으로 올라앉은 안길(安吉, 1907~1947)이었읍니다. 安吉(안길)이와 함께 있던 中尉(중위)에서 소좌에 이르는 三十(삼십)여명의 소련군 장교중엔 나중에 北韓(북한)을 틀어쥔 金日成(김일성) 金策(김책) 金一(김일) 崔賢(최현) 林春秋(임춘추)등도 서있었다고 봅니다. 아마도 金日成(김일성) 일당이 韓國(한국)으로 나오고 있던 한 장면이었다고 여깁니다.

귀국길에 오른 북한 김일성 일행은 오랜 외국생활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세가 이승만, 김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김일성(金日成)이란 이름이 국내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 이기건이 위와 같은 증언을 할 1972년 당시에는 김일성 일행이 기차로 귀국하려고 실제로 만주 무단장 역까지 갔다가 철로가 막혀 블라디보스톡에서 소련 군함을 타고 입북했다는 것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함께 보기


각주

  1. 진방(震方)은 팔방(八方)의 하나로 정동을 중심(中心)으로 한 45도 각도(角度) 안의 방위(方位)를 가리킨다.
  2. 2.0 2.1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 1910-1992), 『朝鮮終戰の記錄 : 米ソ兩軍の進駐と日本人の引揚』, 東京 : 巖南堂書店, 昭和39 [1964] : p.81
  3.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41권 일본 · 미국보도기사 / 일본보도기사 / 165. 피로 물들인 조선의 독립운동, 전쟁과 함께 치열화, 앞길에 여전히 수많은 파란 : 『朝日新聞』(東京版), 1945년 10월 3일. 국사편찬위원회 2011년 06월
  4. 名士의 片影(其五), 金日成氏 민중일보 1945년 10월 14일자 1면 기사.
  5. 莫府(모스크바)서 작전을 연구(作戰을 硏究) / 김일성 장군(金日成 將軍)은 건재 활동 중(健在 活動 中) 자유신문(自由新聞) 1945년 10월 17일자 2면
  6. 《관란재일기(觀瀾齋日記)》 해제(解題) 국사편찬위원회
  7. 정관해(鄭觀海, 1873~1949), 관란재일기(觀瀾齋日記) 한국사료총서 제44집 (국사편찬위원회 , 2001년 12월 30일)
  8. 崔炳彩日記 5 (한국사료총서 제59집) > 崔炳彩日記(一九四五年 下) > 七月 > 七月十一日己未(陽八月十八日、土曜日) 국사편찬위원회 2017년 12월 22일
  9. 『인민 해방보』 : 부산향토문화백과
  10. 유수생(流水生, 필명) 수필(隨筆) 《전재민(戰災民) : 만주잔류동포(滿洲殘留同胞)를 생각하며》 1947.01.07 동아일보 4면
  11. 白善燁(백선엽) 回顧錄(회고록) 軍(군)과 나 (11) 5년만의 平壤(평양) 1988.09.01 경향신문 5면
  12. 12.0 12.1 南北(남북)의 對话(대화) <46> 괴뢰 金日成(김일성)의 登場(등장) (5) 蘇軍(소군)과 金日成(김일성) 1972.01.25 동아일보 4면
  13. 채만식의 미발표 유고(遺稿) 「소년은 자란다」발견 중앙일보 1972.08.05 종합 4면
  14. 채만식(蔡萬植, 1902~1950), 「소년은 자란다」
  15. 조갑제(趙甲濟), 일본인들이 잊지 못하는 安在鴻의 8.15 연설 조갑제닷컴 2013-03-01
  16. 日人 森田(일인 삼전)씨가 간추린 「朝鮮終戰(조선종전)의 記錄(기록)」 (上) 1967.08.15 동아일보 4면
  17. 《고당 조만식(古堂 曺晩植)》, 고당전·평양지간행회(古堂傳·平壤誌刊行會), 평남민보사(平南民報社),서울, 1966 : pp.170~171
  18. 최영희(崔永禧, 1926-2005), 《격동의 해방 3년》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1996) p.6
  19. 曺圭河, 李庚文, 姜聲才, 「남북의 대화」 (서울, 고려원 1987)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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