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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초대 내각
최근 수정 : 2019년 6월 7일 (금) 10:30

1948년 9월 9일에 북한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이 공식 출범하고 내각 명단도 발표하였다.

북한 초대 내각 구성원 명단

1948년 9월 9일 공식 출범한 북한 정권 초대 내각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1][2][3][4][5]

스티코프 일기 1945년 8월 30일자에 벌써 내각 및 주요 요직에 대한 명단이 나오고, 최종 발표와 큰 차이가 없다.[6] 주요직책 인선에 소련이 깊숙히 개입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남한의 정부 수립으로 북한도 할 수 없이 따로 정부를 수립한 것이 아니라, 9월 9일의 북한 정권 수립 공식 발표는 이전의 북조선인민위원회의 간판을 바꾸어 달고 약간 정비한 수준이다. 공식 발표만 남한보다 늦게하여 분단의 책임을 남한에 뒤집어씌우겠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내각에 해방 후 남한에서 정치활동을 하다 여의치 않아 월북한 인사들을 많이 집어넣은 것도 북한 정권이 남북한 모두를 대표한다는 선전을 하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직책 성명 소속당 전력 비고
수상(首相) 김일성(金日成, 1912~1994) 북로당 소련군 대위, 만주 빨치산 고령 사망
부수상(副首相) 박헌영(朴憲英, 1900~1956) 남로당 일제하 공산주의 운동 숙청 처형
부수상(副首相) 홍명희(洪命熹, 1888~1968) 前민주독립당 항일, 친일 고령 사망
부수상(副首相) 김책(金策, 1903~1951) 북로당 소련군, 만주 빨치산 의문사
국가기획위원회장(國家企劃委員會長) 정준택(鄭準澤, 1911~1973) 북로당 친일 전력 고령 사망
민족보위상(民族保衛相, 국방상(國防相)) 최용건(崔庸健, 1900~1976) 민주당 소련군, 만주 빨치산 고령 사망
국가검열상(國家檢閱相) 김원봉(金元鳳, 1898~1958) 前인민공화당 중국서 항일 운동 숙청 처형
내상(內相) 박일우(朴一禹, 1911~ 1955)[7][8] 북로당 독립동맹 간부 숙청 처형
외상 겸임(外相 兼任) 박헌영(朴憲英, 1900~1956) 남로당 일제하 공산주의 운동 숙청 처형
산업상 겸임(産業相 兼任) 김책(金策, 1903~1951) 북로당 소련군, 만주 빨치산 의문사
농림상(農林相) 박문규(朴文圭, 1906~?) 남로당 .... ....
상상(商相) 장시우(張時雨, 1891~1953) 북로당 .... 숙청 처형
교통상(交通相) 주영하(朱寧河, 1908~?) 북로당 .... 숙청
재정상(財政相) 최창익(崔昌益, 1896~1957) 북로당 중국서 항일투쟁 숙청 처형
교육상(敎育相) 백남운(白南雲, 1894~1979)[9] 前근로인민당 .... 고령 사망
체신상(遞信相) 김정주(金廷柱, 1903~ ?)[10] 청우당 .... 숙청[11]
사법상(司法相) 이승엽(李承燁, 1905~1954) 남로당 .... 숙청 처형
문화선전상(文化宣傳相) 허정숙(許貞淑, 1902~1991) 북로당 .... 고령 사망
노동상(勞動相) 허성택(許成澤, 1908~1958?) 남로당 .... 숙청 처형[12]
보건상(保健相) 이병남(李炳南, 1903~?) 남로당 .... ....
도시경영상(都市經營相) 이용(李鏞, 1888~1954) 前신한민족당 .... ....
무임소상(無任所相) 이극로(李克魯, 1893~1978) 어학회장 .... 고령 사망

내각 구성원 사진

다른 사진들

기타 요직

직책 성명 소속당 전력 비고
최고인민회의(最高人民會議) 상임위원장[1][15] 김두봉(金枓奉, 1891~1961?) 북로당 중국서 항일투쟁 숙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 강양욱(康良煜, 1902~1983)[16] 민주당 .. ..
최고재판소 소장[4][5] 김익선(金翊善, 1899~?)[17] 북로당 .... ....
최고 검사총장[6] 장해우(張海友, 1901~?)[18][19] 북로당 .... ....
... ... ... ... ...

레베데프의 평정서

북조선 주재 소련민정국장 니콜라이 레베데프(Н. Лебедев)는 1948년 12월 25일자로 북한의 각료 및 최고인민회의 요인들에 대한 인물 평정서를 작성하여 본국에 보고하였다. 이러한 평정서를 작성한 것 자체가 소련이 내각 및 최고인민회의 인선에 깊숙히 개입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각 인물에 대한 평정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진흥사업 성과포털"의 연구사업 "러시아문서보관소 소장 해방후 한국사회 관련 자료의 수집 번역 및 주해 (1945~1950)"의 성과물로 올라 있다.

피의 숙청 : 비명횡사 내각

북한 정권 출범 당시 초대 내각 구성원 및 요직에 있었던 사람들 중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다수가 숙청되었다. 처형 되거나 오지로 추방 당해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였다. 자신들 정권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인한 행위로 볼 수 있다.


북한 정권 초대 내각 구성원 17명 가운데 ‘자연사’로 와석종신(臥席終身)한 사람은 김일성을 비롯하여 홍명희(국내파, 부수상), 최용건(빨찌산, 민족보위상), 백남운(국내파, 근로인민당, 교육상), 허정숙(연안파, 문화선전상)의 5명뿐이다. 나머지 박헌영(국내파, 남노당, 부수상, 외무상), 김책(빨찌산, 부수상, 산업상), 박일우(연안파, 내무상), 최창익(연안파, 재정상), 이승엽(국내파, 남노당, 사법상), 장시우(국내파, 북노당, 상업상), 주영하(국내파, 북노당, 교통상), 허성택(국내파, 남노당, 노동상), 김원봉(임정계, 국가검열상), 이용(국내파, 신진당, 도시경영상), 박문규(국내파, 남노당, 농림상), 이병남(국내파, 월북자, 보건상) 등 12명이 ‘숙청’을 통해 목숨을 잃었다. 이밖에도 중국에서 공산당 8로군의 명장(名將)이었던 김무정(민족보위성 부상), 국내파, 남노당의 허헌(최고회의 의장), 연안파의 두목이었던 김두봉(최고회의 상임위원장)이 숙청을 통해 제거되었다.


북한 정권의 성격과 소련과의 관계에 대한 주한미특별대표부의 견해

김일성은 소련에 의해 양육되어 소련의 희망으로부터 일탈할 여지가 없고, 박헌영, 김두봉 등도 소련과 대립되는 의견을 가질 수 없다고 하였다. 소련이나 김일성은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남침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예견하고 있다. 상당히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견해로 소련은 자신의 북한 창조물을 전형적인 공산주의의 획일적 질서유형으로 만들었으며,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소련의 희망으로부터 일탈할 여지가 실질적으로 없다. 북한판 스탈린인 김일성은 소련에 의해 신중히 양육되었으며, 용의주도하게 한국의 “영웅”으로 추대되었고 우리의 견해로는 소련에 대해 완전히 아첨하며 충성하고 있다. 나아가 김일성은 의심할 나위없이 소련 내무성 요원과 구북한주재 소련군 사령관이었던 소련 “대사”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받고있다. 박헌영, 김무정, 김두봉 기타 등의 경우에, 이들 북한지도자들은 김일성과는 다른 배경을 갖고있지만, 이들이 김일성이나 김의 소련주인의 견해와 대립되는 기본관점이나 정책을 간직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만약 이들 지도자들이 상이한 견해를 간직하고있다면, 이들은 이곳 남한의 미국인들보다는 소련인들에게 보다 빨리 알려질 것이며, 그 결과 우리는 숙청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3년 간 지도적인 북한 공산주의자들 중 어느 누구도 망명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파고가 높게 이는 현실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북한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크레믈린의 규정에서 일탈되는 입장을 택하거나 견해를 표명하도록 유인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의 통일달성 방법과 관련된 소련의 입장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지난 3년 간의 기록에 분명히 반영되어 있다. 한국통일에 대한 그들의 개념은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소련이 통제하는 한국공산주의국가를 창조하는 것이다. 물론 소련은 유혈없는 그들의 목적 달성을 선호하지만, 우리의 견해로는 불가피할 경우 소련은 기꺼이 한국을 내전의 심연에 빠뜨릴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소련은 북한의 괴뢰를 이용해 남한에 혼란과 무질서를 조장하는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전술에 수반해서 소련은 공개적으로 한국문제의 평화적 정착을 이룩하려는 유엔의 노력을 일축하며, 자신의 요술주머니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한국의 지도자들을 비방하고 누명을 씌우며, 우리를 남한에서 축출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우리가 이 모든 노력과 활동을 통해 상황을 검토한 바, 북한은 소련의 대단히 비천한 도구이다. 우리 견해로는 평화적 수단으로 한국통일을 달성하겠다는 북한 지도자들의 어떠한 주장도, 만약 소련인들이 그러한 조치가 소련의 목적 달성에 최상이란 계산이 선다면, 소련주인에 의해 묵인될 뿐이다. 기록에 의하면, 소련과 그의 북한괴뢰는 한국통일문제 혹은 여타 다른 문제에 관해 유엔한국위원단과는 아무런 일도 하려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는 소련이 북한인들에게 유엔한국위원단과 접촉하라고 명령할 가능성이 있음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으며, 이는 소련이 그러한 조치가 한국을 “통일하려는” 그들의 목적에 이득이 된다고 판단할 때일 것이다. 드럼라이트.


함께 보기


각주

  1. 1.0 1.1 北韓人民共和國(북한인민공화국) 首相(수상)에 金日成氏(김일성씨) 동아일보 1948-09-10 1면
  2. 2.0 2.1 2.2 北韓組閣完了(북한조각완료) 동아일보 1948-09-11 1면
  3. 3.0 3.1 3.2 金日成內閣(김일성내각) 組閣(조각)을完了(완료) 경향신문 1948-09-11 1면
  4. 4.0 4.1 북한 연표 : 1948년 09월 0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5. 5.0 5.1 5.2 5.3 신편 한국사 52 대한민국의 성립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 5) 헌법 제정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 (2) 북한에서의 분단정부 수립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6. 6.0 6.1 해외사료총서 10권 쉬띄꼬프일기 > 쉬띄꼬프 일기(번역) > 쉬띄꼬프 일기 Ⅳ부 > 1948년 8월 30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무상 박일우 평정서 레베데프 작성, 1948.12.25
  8. 1947년 9월 16일자 38도선 경비에 대한 내무국장 박일우의 지시 러시아연방 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
  9. [월북지식인들의 행로] (7) 백남운 NK 조선 2001-02-11
  1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신상 겸 북조선청우당 부위원장 김정주 평정서 레베데프 / 1948년 12월 25일
  11. "3대 망하는 묏자리"라고? 풍수에 빠진 북한
  12. 허성택 위키백과
  13. 1949 The Korean Government Delegation's Visit to Moscow (Korean Version) Wilson Center Digital Archive
  14. 신진당(新進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5. 國史館論叢 第96輯 > 북한 최고인민회의 연구(이주철) > Ⅲ. 상임위원회(상설회의) 분석 > 1. 상임위원회 위원장단(상설회의 의장단) 국사편찬위원회 2001-06-30
  16. 강양욱
  1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장 김익선 평정서 발신자 레베데프, 발신일: 1948.12.25
  1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검사총장 장해우 평정서 발신자 레베데프, 1948.12.25
  19. 신편 한국사 52 대한민국의 성립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 1) 해방 후 북한 각 지역의 인민위원회 수립과 소련군 주둔 > (2) 각 지역 인민위원회의 성립과 개편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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