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苦難의 行軍)은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나라의 경제사정이 극히 어려워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김정일이 내놓은 당적 구호로서, 1996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제시되었다.[1] 이 기간에 대규모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개요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 기간에 사망한 김일성의 시신 영구보존을 위한 금수산태양궁전 건설에 동원된 북한 노동자들.

고난의 행군은 북한에서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후부터 2000년 무렵까지 사이에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김정일이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던 일을 말하며, 이 기간에 일어난 최악의 식량난으로 수십만 또는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아사하였다.

1988년의 서울 올림픽에 맞대응하기 위해 북한은 1989년 7월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2]을 무리하게 개최하여 외화를 탕진하고, 이어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붕괴로 이들 국가로부터 받던 원조가 중단되고[3], 자연재해와 정책 실패 등으로 인해 극심한 경제난에 처하게 된다. 이 기간에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하는데, 김정일이 적대계층을 말살하기 위해 고의로 방치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경제난 속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사망한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금수산태양궁전을 초호화판으로 짓는 등의 무리한 일을 벌인 것도 사태 악화에 한몫했다. 또 그동안 배급체제에 익숙해져 자생능력이 없던 주민들이 갑자기 배급이 끊어지자 독자적으로 식량을 확보할 방법이 없었던 것도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2010년 11월 22일 대한민국 통계청이 유엔의 인구센서스를 바탕으로 발표한 북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1996~2000년)' 시기 실제에 근접한 아사자 수는 33만여 명이다.[4][5]

그러나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의 평양 특파원을 지낸 하기와라 료(萩原遼, 1937~2017)[6]는 《김정일의 숨겨진 전쟁》(2004년)[7][8]이란 책에서 아사자 수는 300만명이며, 김정일이 고의적으로 굶어 죽게했다고 주장한다.[9]

고난의 행군은 슬로건이기도한데 1938년 말 ~ 1939년 초 김일성이 이끄는 유격대가 만주에서 혹한과 굶주림을 겪으며 100여 일간 행군한 데서 유래했다.[1]

고난의 행군에서 정작 지도자는 고난의 행군을 하지 않았고 독재치하의 북한국민이 받았다. 독재사회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셈.

김대중의 햇볕정책으로 기사회생한 김정일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고난의 행군 기간에 김정일 정권은 거의 붕괴 위기로 내몰렸으나, 때마침 남한에 김대중이 집권하여 소위 햇볕정책을 펼치며 막대한 대북 지원을 해주어 김정일이 기사회생했다고 한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이 5억불 가까이를 불법으로 비밀송금 해준 것도 김정일의 회생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함께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