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金元鳳, 1898 ~ 1958)은 경남 밀양 출신의 공산주의 계열 항일운동가로[1], 호는 약산(若山)이다.[2] 해방 후 남한에서 정치활동을 하다 1948년 4월 남한의 5.10 총선에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등과 함께 남북협상 참석차 평양으로 갔다가 귀환하지 않고 북한에 남았다. 북한 초대 내각의 국가검열상(國家檢閱相)이 되었다. 이후 1958년 숙청되었는데, 처형되었다는 설, 자살했다는 설이 있다.

북한 초대 내각 사진. 2열 좌로부터 두번째가 국가검열상 김원봉이다.

생애

김원봉은 중국의 국민당 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도 관련을 맺었지만 갈등관계에 있었고, 중공당과도 연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임시정부 요인으로도, 순수한 연안파로도 보기 어려운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다. 중국시절이나 해방 직후 남한에서 그의 정치적 행보는 공산주의자에 가까웠다.

김원봉의 실제 행적

[진명행의 역사저널] 김원봉, 그는 누구인가 2 - 히스토리타임즈 Apr 10, 2019

일본 자료

일제는 김원봉을 임시정부 산하의 공산주의자로 기록했다.

  • 1944년 12월의 일제 기록에 충칭(重慶) 정권하 소재 임시정부는 김구를 수괴로 하는 민족주의파와 김원봉을 수괴로 하는 공산주의파 양 진영이 분립하여 과거 20년간 대립해 오고 있다고 함.[1]

영화 "밀정"의 진실은?

【한줄 결론】이 영화는 등장인물의 연관성과 사건의 발단만 일치하고, 90%는 허구임.


논란

오늘날 남한에서 김원봉은 실제와는 다르게 터무니 없이 과장, 미화되어 선전되고 있고, 이로 인한 논란도 많다. 박근혜 정부시절 국사교과서 국정화에도 그렇게 반대하던 문재인이 최고 권력자가 되어 본인이 역사를 제멋대로 재단하는 것도 북한과 닮은 꼴이다.

북한 초대 내각의 국가검열상(國家檢閱相)이 '국군 창설의 뿌리'라니 국군이 인민군이 되고, 김정은이 국군통수권자가 된 것인가?
자유한국당은 "보수든 진보든 구분 없이 우리가 애국해야 하는 대상은 오직 대한민국뿐"이라며 "1948년 월북해 조국해방전쟁, 즉 6·25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전했다.

각주

  1. 1.0 1.1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B02031290100、本邦内政関係雑纂/植民地関係 第五巻(A-5-0-0-1_1_005)(外務省外交史料館)」 標題:18.朝鮮及台湾在住民政治処遇調査会二回総会ニ於ケル会議要録/6 朝鮮及台湾在住民政治処遇調査会第二回総会ニ於ケル会議要録の6 - 昭和19年(1944)2月8日~昭和19年12月19日
  2. 호의 취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일본인 성씨로 와카야마(若山)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