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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9일 (월) 10:10 판

일러두기

작성 기초 자료들

함께 보기: 이승만 TV의 "백두산 신화의 내막"

(1) 이 문서는 이영훈, “백두산 신화의 내막”, 이영훈 외 공저, 《반일 종족주의》, 미래앤, 2019, 140~150쪽을 기반으로 작성하되,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전체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2) 또한 이 글에서 언급한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위의 기본 자료를 보완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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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구호목(口號木), 백두산 구호문헌(口號文憲), 구호목, 구호나무, 구호문헌, 백두산 신화, 백두 혈통, 김일성 영생교, 백두산 밀영, 김정일 생가, 백두산 삼지연대기념비, 보천보사건

이 표제어와 관련하여, 정부 기관 등이 주도하는 대중 조작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곳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문화콘텐츠닷컴의 ‘문화원형 라이브러리’의 ‘백두산’ 항목을 참고하길 강력하게 권한다. [1]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칼럼> 중 ‘백두산 답사기’ [2]

구호나무란?

구호나무란 구호문헌이 새겨진 나무를 말한다. 여기서 ‘구호’는 북한이 주장하는 김일성의 본격적인 항일운동시기에, 그를 따르던 항일빨치산 대원들이 숲의 나무껍질을 벗겨 새겨 놓은 글귀들을 아울러 가리킨다. 즉 구호문헌은 그 글귀와 글귀를 새긴 나무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북한은 항일운동시기에 김일성을 비롯하여 김정일, 그의 생모인 김정숙 등을 찬양하는 구호문헌이 나무에 다수 새겨졌다가 발견되어 전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여러 가지 증거로 볼 때 모두 거짓이다. 북한은 현재 구호나무를 유리관 등으로 둘러싸 보존하고 있다.

구호나무.출처: 나무위키

그동안 소개된 구호 문헌의 글귀는 대강 이렇다.

* 아 조선아 백두성탄생을 알린다
  • 백두산 태양성 솟았다
  • 조선의 자랑 백두광명성
  • 광명성은 조선의 미래
  • 락락장송 같이 건장하라 백두광명성
  • 태양빛 이어 빛날 백두 광명성 장수축복
  • 백두산에 김일성 장군의 계승인 백두광명성 탄생
  • 백두광명성 김대장 후계자

이 내용들을 보면 짐작하듯, '태양'으로 상징되는 김일성에 대한 칭송보다는 그 태양의 정기를 받아 백두산에서 태어난 후예 즉 '광명성'이라는 상징으로 새롭게 나타난 김정일에 대한 찬양 일색이다. 즉 김정일의 탄생을 경축하고 그가 선택받은 후계자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암송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구호나무를 내세운 백두산 신화의 정치적 조작

조작 내용의 변화

백두산에 대한 신화적 이미지는 상당히 오랫동안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성립되었다. 그러나 이 신화가 본격적으로 정치적 선동 도구로 사용된 것은 1987년부터이다. 사실, 소위 ‘구호문헌’이라는 나무들은 해방 이후 1960년대 초에 그 일부가 발견되었다고 주장되고 있다. 당시 백두산 청봉지역에서 19그루 가량의 구호목들이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북한이 소개한 백두산 기슭 청봉숙영지의 아름드리나무에 새겨진 구호는 1987년 이후에 대거 발견된 또는 발견되었다는 것들과는 다소 다르다.

조선청년들 속히 달려나와서 항일전에 힘있게 참가하자
일어나라 단결하라 전세계 로력대중들아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싸우자

위와 같이 항일혁명과 계급투쟁을 호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1987년 이후의 구호나무 신화 조작

1987년 이후 구호나무가 대대적으로 선전된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김정일이 45세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의 생일 45세 생일인 1987년 2월 16일을 기점으로, 북한은 새로운 우상화물로서 구호문헌을 널리 선전하기 시작했다.
이 해는 김정일의 후계권력이 정리정돈 과정을 걸쳐 완성단계에 이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즉 김일성의 유일지도체제를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상 김정일 당조직부 유일지도체제를 완성하고, 김일성주석 체계를 대체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버지 김일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후계구도를 완성시키려면 김일성과 대등한 수준의 역사적 명분이 필요했으며, 이 때 필요한 수식어가 바로 ‘조선의 광명성’이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내용의 구호문헌을 조작하였던 것이다.
구호나무 날조를 앞장서 실천한 사람은 바로 당시 북한의 내각 부총리 겸 문화 예술부 부장이었던 장철이다. 재일교포 출신으로서 유일하게 북한 정권의 핵심간부로 발탁됐던 장철은, 같은 재일교포 출신인 김정일의 세 번째 처 고영희와 친분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과 가깝게 접촉할 수 있었다. 더욱이 1980년대 이후 김정일의 후계작업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구호나무 조작을 선두지휘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 때 주장한 내용은 1961년에 처음으로 주장했던 바와 전혀 다르다. 즉 이들 구호목이 백두산 일대를 넘어 저 남쪽 황해도까지 1만 2천 그루나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2천여 개가 김정일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사실 여러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보면, 구호목은 그 자체로 조작이다. 주민들을 동원하여 나무껍질을 벗기고 그 속살에 화학 약품으로 새겼다는 증언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김일성의 백두산 밀영이 대대적으로 함께 선전되었다. 그는 백두산 꼭대기 어느 지점에 통나무집(귀틀집)을 지은 뒤, 그곳이 항일 빨치산들이 은거하며 작전을 세우고 지휘하던 밀영이라고 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이 곳이 바로 김정일이 태어난 곳이라고 주장하며 이 통나무집을 참배하도록 강요하였다. 그 뒤편 산봉우리의 이름을 ‘정일봉’이라고 짓기도 하였다.
하지만 남한의 종북학자들도 차마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출생했다는 북한 주장을 드러내놓고 지지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소련으로 도피한 김일성이 머물렀던 소련군 88여단이 있던 하바로프스크 인근의 뱌츠코예 마을이 출생지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김정일이 실제 태어난 곳은 구 소련 연해주의 우수리스크 인근 라즈돌노예 마을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바뀐 김정일의 출생지가 신화화되었으나,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북한의 실상이다.

구호 문헌이 조작된 신화임을 입증하는 근거들

특수 처리되어 보존 중인 구호 나무.

(1) 구호나무의 최초 발견은 1961년이라고 하는데, 이 자체가 의문투성이다. 해방 이후 15년 이상 발견되지 않던 나무가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조작의 근거이다. 게다가 발견된 구호문헌이 백두산의 험한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혀 훼손되지 않은 채 최초에 새겨진 위치에 그대로 있었다는 사실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껍질을 벗겨내어 문헌을 새겼는데, 15년간 나무가 자라거나 껍질이 아물지도 않는 경우를 생각하기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구나 구호문헌은 칼 등으로 새겨진 것보다 ‘먹’으로 쓴 것이 대부분이다. 15년 동안 살아 있는 나무에 쓰인 찬양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수 있나?

(2) 빨치산들은 숙영(宿營)을 한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했다고 알려진다. 매순간 생사를 넘나드는 와중에 몇 시간을 들여 찬양문을 칼로 긁거나 먹을 갈아 글씨를 썼다는 것 자체가 논리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당시 김일성 부대원은 많아도 몇 백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 중 한반도로 파견된 인원은 한두 명 단위의 정찰조이다. 이 정도 인원이 그 동안 발견된 것만 1만 2천 그루나 되는 나무에 김씨 일가를 찬양하는 글을 새기고 썼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3) 무엇보다도 이 구호목이라는 나무가 북한에서는 깊숙한 내륙에서도 발견되는데 반하여, 남한에서는 한 그루도 발견되지 않았다.

(4) 북한의 TV방송 자료들을 보면, 장철이 직접 과학자들을 이끌고 백두산 지대로 가 구호나무 발굴과 복원작업을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때 나름대로 유명하다고 하는 북한의 과학자들이 구호나무 글자 복원용으로 새롭게 발명했다는 액체시약이란 것을 뿌리자, 나무에서 정말로 글자가 희한하게 드러나는 장면도 연출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미 2차 대전 시기에 독일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하고 사용했던 화학약품으로서, 간첩 등이 암호를 읽기 위해 백지에 바르는 액체와도 같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즉 오래 묵은 나무를 선택하여 특수도료를 입한 다음, 그 위에 투명 글자가 새겨진 투명 종이를 건조 부착시키는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

(5) 구호나무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부 실력이 모자라거나 눈치가 없는 이들이 자기 지역에서도 구호나무가 나왔다고 주장하다가 너무 엉성하게 만든 것이 티가 나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사건도 있다고 한다. 일본의 저명한 식물학자 앞에서 구호나무가 50년이 되었다고 자랑하다가, 나무의 수령이 40년이라는 반박을 받아 망신을 당했다는 증언도 있다.

(6) 김정일은 백두산이 아니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인근 라즈돌노예 마을에서 태어난 것이 입증되므로 백두산에서 태어났다는 구호목의 기록 자체가 거짓이다.

(7)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 시절 장군이라 불린 적이 없다. 항일연군의 지휘관들은 사장(師長), 군장(軍長), 사령(司令) 등으로 불렀고 최고 지휘관도 총사령(總司令)으로 불렀을 뿐, 자기들 끼리도 장군이라 칭하는 경우는 없었다. 김일성은 해방 후부터 자칭 장군이 되었을 뿐이므로[1][2], 구호목에 나오는 수많은 장군 칭호들도 다 조작인 것을 입증한다.

조작 이후 지금까지

구호나무 신화가 탄생한 이후, 이 신화는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단지 신화를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작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구호나무로 주장되는 나무들은 햇볕과 눈비를 막는 동시에 자연 그대로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외국에서 수입한 통유리를 씌우고 아르곤가스를 투입하는 등의 처리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 통유리를 감싼 보호막이 오르내리도록 전기적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이와 같은 비용이 나무 한 그루당 한 해 약 2만 달러가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일설에 따르면 2004년경 양강도 지역에서 발견된 구호나무에는 김씨 세습 왕조를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구호나무 신화는 넓은 범위에서 남한의 소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특히 문재인 정부 이후에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2005년 도올 김용옥은 EBS에서 해방 60주년 특집으로 구성한 다큐멘터리의 연출, 구성, 출연, 편집, 내래이션까지 맡은 적이 있다. 10부작으로 이루어진 이 다큐멘터리의 9부에서, 그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다루며, ‘1961년에 구호나무가 발견되었으니 이는 날조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도올 김용옥의 EBS 해방 60주년 기념(2005년) 10부작 다큐멘터리 중 9부, '올기강은 흐른다'


2018년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김정은, 리설주가 함께 천지에 올랐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백두산 신화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김정은 역시 백두산 또는 광명성 신화와 관련이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2019년 2월 16일 김정일의 생일인 광명성절에도 금수산궁전을 참배한 바 있다.

참고문헌

  • 이영훈, “백두산 신화의 내막”, 이영훈 외 공저, <반일종족주의>, 미래앤, 140~151쪽.

각주

  1. 「金日成(김일성)을 告発(고발)한다」 (13회)  : 〈金日成直屬(김일성직속) 記者(기자)의 手記(수기)〉 (동아일보 1962 년 05 월 16일 2면)
  2. 황장엽, ⟨북한의 진실과 허위 : 북한민주화 전략집⟩, (시대정신, 2006.04.15)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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