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의 홍범도(洪範圖)와 최진동(崔振東). '홍범도 일기'에 따르면 홍범도 장군은 소련 최고지도자 레닌을 접견하고 권총 1자루와 금화 100루블, 레닌이 친필 서명한 '조선군 대장' 증명서 등을 선물 받았다.[1]

봉오동 전투(1920년 6월 6일 ~ 6월 7일)는 만주 봉오동에서 독립군 부대가 일본 정규군과 싸워 대패시킨 전투이다.

개요

삼둔자 전투에서의 패전 이후 일본군 제19사단은 간도 내의 독립군단 토벌에 나섰다.

이에 만주에 주둔 중이던 홍범도(洪範圖), 최진동(崔振東), 안무(安武)등이 이끄는 대한군북로독군부의 독립군 연합부대와 신민단 예하 이흥수, 한경세의 신민단 독립군 1개 중대가 연합하여 중국 지린성 화룡현 봉오동에서 일본군 제19사단과 전투를 벌였다.


결과

교전 당시 대한북로독군부 소속 독립군은 1천 3백여명이었고 일분군은 500여명이었다. 전투 결과 일본군은 전사 157명, 중상 200여명이 발생하였고, 독립군은 전사 4명, 중상 2명이 발생하였다.

일본군을 대패시킨 봉오동전투는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높였으며 병력보강과 군비확충에 활력을 주었다. 한편 조선총독부와 일본은 독립군의 병력을 새로이 평가하고 대토벌을 계획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군의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된 북로독군부군은 청산리로 옮겨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연합하여 청산리 전투를 전개해 나갔다.

논란

홍범도가 벌였다는 봉오동·청산리전투는 알고보면 대승·대첩이 아니라 잘해야 무승부였다. 사상적 동지였던 이동휘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유시로 이동해서는 동료 독립군을 몰살하는 편에 섰던 사람이 홍범도다. 레닌으로부터 소비에트 적군 편입을 거부하는 한국 독립군을 청소해줘 고맙다고 격려금과 권총까지 선물받고, 소련공산당에 입당하여 당원이 된 사람이다. 홍범도가 과연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려는 것이며, 1등급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려는 것일까?
항일 의병장 유인석, “상놈 주제에 양반에게 대든” 죄목으로 의병 선봉장 김백선의 목을 베다.
항일무장투쟁의 영웅 김좌진은 독립 군자금 마련 위해 무장 강도 행각 벌여.
독립 군자금 강제 징수하다 연해주 한인 교포들에게 맞아죽은 독립군 대장 최영호.
자유시에서는 소련 적군과 손잡은 한인 무장부대가 동료 대원 수백 명을 사살·체포.
홍범도, 자유시 참변 당시 가해자 편에 서서 한인 독립군 몰살 후 레닌에게 군복·권총 선물받아

함께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