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륜(吳成崙, 1900 ~ 1947 ?) 중국명 마천일(馬天一)[1].

1922년 3월 30일 상해에서 김익상(金益相)과 함께 육군대장(陸軍大將) 전중의일(田中義一)에게 폭탄을 투척했다 체포되었으나 5월 6일 탈옥하여 도주함.
그 후 독일 등지를 거쳐 소련으로 가서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졸업.
중국으로 귀환하여 한동안 김원봉의 의열단에서 활동
1930년대 중반부터 전광(全光)이라는 가명으로 만주의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
1936년 재만한인조국광복회 발기인
일본군의 토벌에 쫓기다 1941년 1월 투항, 귀순함.
귀순 후 그의 말년 행적은 분명치 않다.

생애

기사

脫獄 田村의 自白, 오성륜과는 항주에서 길을 나눠 매일신보 [每日申報] 1922년 05월 23일
571 (1922년 3월) 30일 상해에서 전중대장(田中大將)에게 폭탄을 투(投)하다.
607 (1922년 5월) 6일 전중대장(田中大將) 저격범 吳成崙(오성륜)은上海(상해)에셔破獄逃躲(파옥도타)하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사람으로는 独立鬪士(독립투사)였다는 吳成崙(오성륜)(中国名(중국명) 馬天一(마천일)),金炯斗(김형두),趙(조)훈등으로 모두 共産大學生(공산대학생)이었는데
(吳成崙(오성륜))과함께불원에비률빈(比律賓(비율빈))으로부터도라오는길에상해에상륙할 륙군대장 뎐중의일(陸軍大將田中義一)... (吳成崙(오성륜))등이모히여동년안으로조선안에서폭탄과권총으로써관뎡을파...
各國人環列(각국인환열)한上海埠頭(상해부두) 田中大將(전중대장)을爆擊(폭격) 1926.11.11 조선일보 2면
(강비호돌))과 오성륜(吳成崙(오성륜))등의 권유로의렬단에입단하야 최하청(崔河淸(최하청))진공목(陳公木(진공목))등으로더불어선전출판부의 책임을지고활동하다가조선민족의해방을 엇기위하야는 민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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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모스크바 滯留(체류) 45日(일) 1970.03.05 조선일보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