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일제시대[1]를 거쳐 오면서 일본으로 갔었던 조선인들이, 일본제국의 패망으로 많은 이들이 한반도로 돌아들 갔으나 일본에 약 60여만명이 남았다.

재일동포들은 전후 일본의 조센징이라는 민족적 차별로 경제적으로는 빠찡코, 야쿠자 등 그늘의 경제권에서 삶을 영위해 나아갔다고 한다. 손정의는 매우 특별한 존재이다. 일본 사회에서 하나의 게토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는 측면에서 이들은 승화를 하지 못하고 민족의식을 살리고자 북한의 김일성 영생교에 심취해 나아 갔다.

또한 김일성 영생교에 따라 한반도 남쪽에 한국전쟁으로 정복하지 못한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등의 정권에 극도의 반감과 반한활동을 하여 왔다.


재일동포의 학교를 통한 정신적 퇴화

분명 일본 사회에서의 차별과 이로인해 눈을 뜨는 '나는 누구인가? 저들이 차별하는 나의 근원은 무엇인가?'는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물음이며 자기에 대한 질문은 한 인간이 각성해나아가고 승화해 나아가기 위한 절차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일동포들은 민족적 의식을 각성하기 위해 북한의 김일성 영생교를 믿어가는 정신적 퇴화로 나아갔다. 내부로 계속 칩거해 들어가는 정신적 퇴화는 일본의 천황제를 가져다 고대로 이식한 북한의 김일성 영생교 신자들로 탄생하였다.

이는 외부와 소통하는 방법이 한민족이라는 북한으로만 집착하고, 단 하나 접촉하는 외부인 일본 또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전체주의에서 아직 벗어나지 않은 사회이기에 정신적 퇴화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 재일동포 사회다.

재일동포들이 외부를 일본인 아닌 전세계와 자유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과도 교류하고 세계로 나아갔어야 함에도 (물론 서구유럽도 6.8혁명이라는 정신적 태만과 내 자아 지르기로 멍청해지는 역사를 가졌기에 정신 제대로 차리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 그러하지 못하고 그리스 로마 문명과 기독교 문명에 대한 접촉이 미약하였기에 정신적 쇠퇴로 나아 갔다고 볼 수 있다.

공산주의는 서구에서 민족주의와는 결합할 수 없었으나, 동양에 와서는 민족주의와 결합하였다. 동양에서 바라볼때는 서구의 식민지 상태였으므로 서구에 대한 반대로서의 공산주의가 당연스럽게 채택할 수 있는 옵션이었으나 식민지라는 현실이 서구의 민족주의가 왜곡된채 수입된 상태에서 공산주의+민족주의가 결합된 변질 공산민족주의로 태어났다. 대한민국에서도 북한의 존재로 인해 한국전쟁의 여파로 공산민족주의로는 표방할수 없었기에 진보민족주의[2]로 발전해왔다. 결국 재일동포도 대한민국도 정신적 노예상태에서 벗어 나기 위해선 북한 해방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래 3영상은 외국인 특히 서구인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영상들이다. 대한민국인들 보다 북한과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 무엇이 북한을 기괴하게 만들었는가? ( 애석하게도 현재 한글 자막 없음, 단 한글 자동번역은 가능함)


  • 일본 우익 내셔널리즘의 부흥 ( 한글 번역 있음)


  • 일본 속 북한 이야기 (한글 번역 있음)

함께 보기

영화 '김의 전쟁' 권희로 씨 별세

각주

  1. 일제 강점기 용어를 의도적으로 피합니다. 제3자적 관점하에서 보기 위한 단어로 저는 일제시대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앙청 일본기 내려오고 미군기 올라갔다는 미군 강점기의 개념 확장으로서의 영향도 피하고자 합니다
  2.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사회변혁운동으로 명칭을 바꿔 이야기 해온 점이 그 증거이다. 또한 5.18을 1980년초에 정의하기를 프롤레타리아 운동이라고 민주화인사들, 노동계에서는 정의한 바 있다. 물론 지금에와서는 절대 그말 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