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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39대 대통령이다.

1994년 6월 15일부터 18일까지 나흘간 북한을 개인 자격으로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 부부와 김일성 부부.[1] 김일성은 당시 카터에게 미국 방문을 희망한다고 말했다.[2] 김일성은 며칠 후인 7월 8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고, 그의 후처 김성애는 이후 김정일 집권기 내내 연금당해 있다 2014년 사망했다고 한다.

남북한과의 악연

카터는 재임 기간중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했으며, 박정희 정부의 인권문제를 집요하게 거론하여 한국과의 관계가 매우 불편했다. 1979년 6월 방한했는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의 분위기는 상당히 냉랭하였고, 몇 달 뒤인 10월 26일 박대통령이 피살 당했는데, 미국이 개입했다는 미확인 주장이 계속 있어왔다.

퇴임 후인 1994년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중재한다면서 6월에 북한을 방문했고, 김일성으로부터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승락을 얻어내고 일정까지 잡혔으나 7월 8일 김일성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사망하여 남북정상회담도 무산되었다. 김정일 집권 기간에도 방북한 적이 있으나 김정일은 카터가 만났던 남북한 정상이 모두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을 불길하게 여겼다고 하며, 이 때문인지 만나주지도 않았다.

박정희와의 갈등

[이주천 교수의 심층 추적] 親北 대통령 지미 카터 해부(上)
북한 취재 다녀온 샐리그 해리슨 기자 주한미군 철수 논문 발표, 이것이 카터의 정책으로 표출돼

퇴임 후 3차례 방북

[이주천 교수의 심층추적] 親北 대통령 지미 카터 해부(下)
카터의 방북은 서투른 협상 능력으로 북한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보냄으로써 북한이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의 귀중한 시간을 벌게 해 줘. 결과적으로 그는 이적행위를 한 셈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