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해방 직후 평양이 자유롭던 시기는 단 열흘을 넘기지 못했다.[1] 소련군이 진주해 오면서 일제시대보다 더 못한 상황으로 전락해 갔다. 소련군은 도처에서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했다.[2] 하루에도 수십명이 "동무 잠깐 봅시다"라는 한마디에 끌려나가 행방불명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문헌들

북한의 선전이 사실인 줄 알고 속아 월북했다 천신만고 끝에 귀환한 학생의 체험담이다. 북에서 지인이었던 이기영 (李箕永, 1895~1984)을 만났는데, 본인은 물론 이강국 (李康國, 1906~1956)도 월북을 후회한다더라고 했다.
棄權(기권)은 國民(국민)의 義務(의무)를 拋棄(포기) 1948.04.30 동아일보 3면


  • Pauley 보고서 : 1946년 6월 - 트루먼 대통령의 특사로 1946년 5~6월 기간 북한 지역을 돌아보고 대통령에 올린 보고서
Edwin Wendell Pauley, Report on Japanese Assets in Soviet-occupied Korea to the President of the Unites States June, 1946.
George M. McCune, Korea Today - 북한에서 소련군의 산업시설 청거가 별로없었다는 Pauley의 보고서에 의문을 표함.


p.1 : 1항 - 군대조직 100만 - 김일성 부하들과 일본군 경력 2년 이상자를 훈련시켜 장교로 임용. 만주와 북중국의 일본군 하급병사 출신이 많음.
p.3 : 4항 - 패한 8로군이 북한으로 들어옴. 강계와 평북 주둔. 1946년 9월 3만6천명., 10월 6만명.
p.5 : 13항 - 막대한 농업현물세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 현물세 25%는 말 뿐이고, 70~80%도 많이있고, 평균 50%는 됨. 곡물을 소련으로 반출함.
p.8 : 26항 - 북한 전역에 김구와 이승만이 민족반역자 우두머리라는 포스터를 붙임.


  • North Korea Today: USAFIK (General Headquarters, Far East Command, Supreme Commander Allied Powers, and United Nations Command) : pp.9~10.
North Korea Today, for American Eyes Only (G-2, United States Army Forces in Korea, August, 1947)
An Anthology of Selected Pieces From the Declassified File of Secret U.S. Materials on Korea Before and During the Korean War (Volume 1), (Seoul, National Unification Board, 1981) pp.1 ~ 40.
pp.9~10 - 김일성 경력

참고 자료

함께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