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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6월 경성일보에 5회에 걸쳐 연재된 국경토비전선기(國境討匪戰線記)
- 國境討匪戰線記, 農畜兼備の理想村, 山奧に土民から父と慕はれる立花巡査部長の功績 경성일보(京城日報) 1940년 06월 22일 4면 1단
- 國境討匪戰線記(二), 宿命の子金日成, 歸順したくても部下が監視, 洋燈の下で匪賊の話 경성일보(京城日報) 1940년 06월 23일 4면 1단
- 國境討匪戰線記(三), 國境警備の龜鑑, 事前に部下に水盃をさせて華と散った佐藤警視 경성일보(京城日報) 1940년 06월 25일 4면 1단
- 國境討匪戰線記, この聲を聞け!, 子供の玩具とラヂオが欲しい, 現地で警備座談會 경성일보(京城日報) 1940년 06월 26일 4면 1단
- 國境討匪戰線記, 一眸涯なし大密林, 嚴寒酷暑を衝いてただ默默挺身する警備の勇士 경성일보(京城日報) 1940년 06월 27일 4면 1단
연재 2회분에 당시 함경북도 무산군 삼장면(茂山郡 三長面)과 그 대안에 출몰하던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방면군장 김일성(북한 김일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의 출신지가 평안남도 대동군이 아니라 함경남도 갑산군 또는 만주의 간도라 하여 1937년 11월 전사한 6사장 김일성의 출신지를 따르고 있다.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식별하지 못해 생긴 혼선이다. 김일성이 귀순할 의사가 농후하다고 했지만, 당시는 만주국 경찰 김창영(金昌永, 1890-1967)이 주도하던 그에 대한 귀순 공작이 1로군 총사령 양정우(楊靖宇)의 저지로 실패로 끝난 이후이다.
この 歸順匪の情報からも 對岸の動向をはつきり知つた前田 署長は「今の様子から見ると、今 明日中には必ず出ます。しかし、 もうこちらには鐵壁の討伐陣が布かれてあるのです、やつら思ひ切 つて出て來ればたまには華々しい戰ひもやつて見たいですがね・・・豪傑笑ひの中にもいらだつ表情を隱し()れなかつた、明日の行程を慮る記者團は、互に顔を見合せて默り込んでしまつた、この夜旅舎榮屋の洋燈の下では、又しも匪賊の話ではづんだ、一行の仲間に恒川三長郵便局長も加はり、こゝは現地だけあつて聞く話も實感がとも なつて來る 金日成といふよ男はどういふ譯で匪賊の頭になつたんだ 『大正八年の萬歲事件の騷ぎに刺戟されて民族主義運動に轉じ て、匪賊となつたさうだ、そい つも哀れな宿命の子なんだね』 『やつは三十そこくの色男で 滿語の演說が實にうまいさうだ生れは咸南甲山とか間島とかい つてゐるが、子供の頃は人足で 歩いて相當苦勞したものだつて ......] 「しかし最近金日成は歸順する 傾向が濃厚に見えて來たといふ が本當ですか?」 「それは本當です、一人では脱出が出來ないばかりか
最近は直屬部下二名が監視につきまとつてゐるさうで容易に身動きが出来ないからであつて、金日成外幹部の部隊で大分歸順の意思をもつてゐるものあるさうです 「金日成が歸順して來たら後の處置はどんなにするのですか 「あれだけ頭のよささうな男だ から、いい方に向けて指導すれほ立派な人間になるでせう...」 「崔賢はどんな男ですか 『あれは汪清縣から奥地を管轄 てゐるやうですが、金日成よ りか、非常に精悍で、悪質のも のらしい』
- ゝ : 히라가나의 반복 기호. こゝ 는 ここ 를 뜻함.
- 참고
- 토비전선종주(討匪戰線縱走) : 1939년 6월 경성일보에 7회 연재.
- 국경경비진 주파기(國境警備陣 走破記) : 1939년 6월 조선일보에 5회 연재.
- 匪賊物語, 宿命の子,金日成, 注目すべき最近の薪戰術 경성일보(京城日報) 1939년 05월 28일 5면 1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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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 2023년 8월 24일 (목) 11:56 | 935 × 1,756, 5쪽 (4.74 MB) | JohnDoe (토론 | 기여) | 1940년 6월 경성일보에 5회에 걸쳐 연재된 국경토비전선기(國境討匪戰線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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