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사건(獨山事件)은 1933년 6월 5일에 있었던 혜산진(惠山鎭) 경찰서 독산(獨山) 주재소 경관과 대안(對岸) 만주 장백현(長白縣)의 마적(馬賊)으로 추정되는 무장단 50여명 사이에 있었던 교전을 말한다. 경관 6명이 전사하는 등 일본측 피해가 컸다. 조선일보는 호외를 발행하며 이 사건을 보도했다.[1] 이로부터 정확히 4년 후인 1937년 6월 4일 인근에서 보천보 사건이 일어났다.
언론 보도
- 혜산진 대안(惠山鎭 對岸)에도 마적부대(馬賊部隊)가 출현(出現) 조선일보 1933.06.06 조간 2면
- 무장단 오십명 출현(武裝團 五十名 出現) 경관 4명(警官 四名)을 살상(殺傷) 조선일보 1933.06.07 석간 2면
혜산진 관내 독산 대안(惠山鎭 管內 獨山 對岸)에서 오일(五日) 아침 격전(激戰) 끗헤
호외재록(號外再錄)
- 山上(산상)에서 突然 射擊(돌연 사격) 警官 四名 戰死(경관 4명 전사) 1933.06.07 동아일보 석간 2면
- 越境(월경)한 應援 警官隊(응원 경관대) 共產軍 討伐(공산군 토벌)을 開始(개시) 長白縣 事件(장백현 사건)의 顚末(전말) 1933.06.07 동아일보 조간 2면
- 조선중앙일보
- 국경방면(國境方面)의 무장단(武裝團), 경관대(警官隊)를 포위사격(包圍射擊), 경관 고전(警官苦戰), 전사 6명(戰死六名) 조선중앙일보 1933년 06월 07일 02면
5일(五日) 함남 혜산진 대안(咸南 惠山鎭 對岸)의 사변(事變) -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경관대 전멸 상태(警官隊全滅狀態), 혜산진 대안 2호언(惠山鎭 對岸 二號堰)에서의 마적(馬賊)과의 충돌상보(衝突詳報) 조선중앙일보 1933년 06월 08일 02면
함께 보기
각주
- ↑ 무장단 오십명 출현(武裝團 五十名 出現) 경관 4명(警官 四名)을 살상(殺傷) 조선일보 1933.06.07 석간 2면
혜산진 관내 독산 대안(惠山鎭 管內 獨山 對岸)에서 오일(五日) 아침 격전(激戰) 끗헤 : 호외재록(號外再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