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間島特設隊
개요
간도특설대 또는 간도특설부대는 일본 제국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동북항일연군, 팔로군 등 중국군을 공격하기 위해 1938년 12월 간도 지역의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하여 1939년부터 본격적인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존속한 800~900여 명 규모의 대대급 부대였다.
간도특설대 해설
- 백선엽, 간도특설대 논란 종결자 정안기 박사 류석춘의틀딱TV 2020. 7. 14.
정안기 박사의 해설중 김일성과 보천보 사건에 대한 부분은 오류가 많다. 이 사건의 주역 6사장 김일성은 1937년 11월 13일 전사했고, 북한 김일성이 아니다. 또한 그는 1920년 무렵부터 유명했던 전설적 항일영웅 김일성 장군을 사칭한 가짜가 맞다.
중국공산당은 일본의 중국침략 최대 수혜자
간도특설대가 싸운 부대는 주로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항일연군과 8로군이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은 일본의 중국침략의 최대 수혜자로, 일본의 침략이 아니었으면 장개석의 국민당군에 일찌감치 토벌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집단이다. 모택동은 국민당군에 스파이를 심어 군사정보를 빼내어 일본에 비싼 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등 뒷통수를 치고 다니며, 항일은 시늉만 내고 공산당의 세력보존에 최대한 힘썼다. 그 덕택에 일본 패망 후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게 된 것이다.
1950년대에 모택동은 일본의 침략에 감사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 휘하의 동북항일연군은 일본군과 싸운다는 핑계로 양민에 대한 약탈, 납치, 방화, 살인 등을 일삼았다. 이런 자들과 맞써 싸운 간도특설대 경력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동북항일연군은 1941년 3월경이면 완전히 궤멸되고 소수의 잔존세력은 소련으로 도주한다. 백선엽 장군이 간도특설대로 전속된 1943년에는 만주에는 항일투쟁하는 무장단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
참고 자료
- 王道樂土第一線에 朝鮮人特設部隊 間島省內居住同胞子弟로 編成하야 大滿洲國防衛에 活躍! 매일신보 1938년 10월 12일 3면 1단
- 朝鮮人特設部隊 新設祝賀大會 매일신보[每日申報] 1938년 10월 17일 2면9단
- 朝鮮人特設部隊의 誕生祝賀會盛大 間島省各地에서 歡喜 매일신보[每日申報] 1938년 10월 28일 2면7단
- 大滿洲를 守護할 朝鮮人特設部隊 : 간도잇는 조선동포의 감격과 환호를 바드면서 今日、二百廿八名入所 매일신보 1938년 12월 14일 3면4단
- 朝鮮人特設部隊 和龍縣應募者二千餘命 만선일보 [滿鮮日報] 1940년 01월 31일
- 朝鮮人特設部隊 第二次募兵 만선일보[滿鮮日報] 1940년 02월 16일
- 朝鮮人特設部隊募集에 安圖區域도 編入 만선일보[滿鮮日報] 1940년 02월 20일
- 朝鮮人特設部隊의 孫,尹兩君軍官候補에 合格 만선일보[滿鮮日報] 1940년 01월 12일
- 間島特設部隊에서 軍官校生 三名 매일신보 [每日申報] 1940년 01월 25일
- 朝鮮人 特設部隊에 龍井 洪範基君 志願 매일신보 [每日申報] 1941년 01월 20일
- 半島徵兵制에 先驅하는 間島特設隊의 活躍 日滿共同防衛에 民族協和의 꽃 現地報告 매일신보 [每日申報] 1943년 01월 11일 3면 1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