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間島特設隊

개요

간도특설대 또는 간도특설부대는 일본 제국괴뢰국만주국동북항일연군, 팔로군 등 중국군을 공격하기 위해 1938년 12월 간도 지역의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하여 1939년부터 본격적인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존속한 800~900여 명 규모의 대대급 부대였다.

간도특설대 해설

정안기 박사의 해설중 김일성보천보 사건에 대한 부분은 오류가 많다. 이 사건의 주역 6사장 김일성은 1937년 11월 13일 전사했고, 북한 김일성이 아니다. 또한 그는 1920년 무렵부터 유명했던 전설적 항일영웅 김일성 장군을 사칭한 가짜가 맞다.

중국공산당은 일본의 중국침략 최대 수혜자

간도특설대가 싸운 부대는 주로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항일연군과 8로군이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은 일본의 중국침략의 최대 수혜자로, 일본의 침략이 아니었으면 장개석의 국민당군에 일찌감치 토벌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집단이다. 모택동은 국민당군에 스파이를 심어 군사정보를 빼내어 일본에 비싼 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등 뒷통수를 치고 다니며, 항일은 시늉만 내고 공산당의 세력보존에 최대한 힘썼다. 그 덕택에 일본 패망 후 벌어진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고 중국 대륙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1950년대에 모택동은 일본의 침략에 감사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 휘하의 동북항일연군은 일본군과 싸운다는 핑계로 양민에 대한 약탈, 납치, 방화, 살인 등을 일삼아 실제로는 마적단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자들과 맞써 싸운 간도특설대 경력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동북항일연군은 1941년 3월경이면 완전히 궤멸되고 소수의 잔존세력은 소련으로 도주한다. 백선엽 장군이 간도특설대로 전속된 1943년에는 만주에는 항일투쟁하는 독립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간도특설대가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집권후 중국인 7천만을 죽인 중국공산당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진 자들일 것이다.

김일성 등 동북항일연군 출신 조선인 빨치산이 북한을 차지한 후 6.25 남침전쟁 등으로 동족에게 입힌 피해나,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이 중국민족에게 입힌 피해는 일제 침략에 의한 피해보다 몇 십배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관련 기사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