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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즘
최근 수정 : 2019년 8월 1일 (목) 11:02

매카시즘이란 1950년-1954년까지 미국을 휩쓴 일련의 반공산주의 선풍이자 낙인찍기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실제로 매카시 공화당 상원의원이 지목한 사람들 중 대다수가 간첩으로 드러나면서 매카시즘은 반공산주의자 낙인찍기가 아닌 진실이었음이 밝혀졌다.

조셉 레이먼드 매카시

미국 위스콘신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변호사 출신 판사이다. 경제적 자유를 보호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위한 자유주의를 지킨 판결 등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정계로 진출한다. 이후 매카시는 국무부에 수 많은 간첩들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폭탄선언을 하게 된다. 그 후 매카시는 화병이 들어 일찍 죽었다.

역사

미국 위스콘신주(州)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J.R.매카시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의 폭탄적인 연설에서 발단했다. 1949년 이래 수년에 걸쳐 매카시가 상원의 비미(非美)활동특별조사위원회를 무대로 하여 행한, 공산주의자 적발 추방의 선풍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이 심각해지던 상황에서 전통적인 미국자본의 시장이던 중국의 공산화와 잇달아 발생한 한국의 6.25전쟁 등 공산세력의 급격한 팽창에 위협을 느낀 미국국민으로부터, 그의 주장이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매카시즘이 먼저 공격목표로 삼은 것은 중국정책에 영향력이 컸던 외교관, 국무성 및 중국통 정치학자 오언 래티모어, 국제법학자 제삽 등이었는데, 대통령 H.S.트루먼도 공산주의자에게 약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국무장관 J.F.덜레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매카시즘의 공포에 떨었고, 그 때문에 미국의 외교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경색된 반공노선을 걷게 되었다. 유력한 정치가나 지식인들도 매카시즘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매카시는 육군에 도전한 것이 치명상이 되어서 마침내 1954년 상원의 사문결의(査問決議)에 의하여 실각하였다.

진실

매카시가 국무성에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한 것은 대부분 진실이었다. 매카시에게 공격 받은 존스 홉킨스 대학의 오언 레티무어 교수가 처음으로 매카시즘이란 말을 만들어 매카시를 공격했는데 나중에 오언 레티무어가 소련간첩이라는게 밝혀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전후세계구상에 대응하여 영국에선 존 매이너드 케인즈, 미국에선 해리 D 화이트브레튼 우즈 체제라고 하는 전후 세계 경제를 설계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때 만들어진 것이 무역 및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GATT),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세계은행(WB)이다. 원래 GATT가 아닌 WTO를 만드려고 했으나 협상이 결렬되어 WTO는 이후 도하라운드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여기서 해리 D 화이트도 매카시에게 공산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는데 이후 간첩활동을 한 것이 밝혀졌다. 엘저 히스는 얄타회담을 실제적으로 주도했던 미 국무부의 차관보였다. 그런데 얄타회담 전후로 소련에 정보를 팔았고 이 때문에 회담은 소련의 입지가 공고한 채로 결론나게 된다. 결국 엘저 히스는 나중에 간첩으로 밝혀진다. 그 외에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 보좌역이었던 해리 홉킨스, CIA의 전신인 OSS의 참모장 던컨 리도 간첩이었다. 또한 내무장관 헤롤드 아이크스, 에치슨 선언으로 유명한 딘 에치슨, 헨리 월러스 미 부통령도 공산주의자였다. 오언 레티무어와 딘 에치슨은 중국과 한반도에서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철수했으며 그것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2차세계대전 중 추축국의 암호를 해독하고 소련을 감청했던 베노나(venona)프로젝트에 관한 기록들이 공개되면서 매카시의 주장이 거의 사실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국의 자생적 간첩

당시 소련의 간첩들은 소련에서 자라고 소련에서 훈련받은 사람이 몰래 미국으로 넘어와 간첩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미국에서 간첩짓을 했다. 그래서 이것이 매카시즘이 틀렸다는 이유로 쓰이곤 하는데 미국의 내무장관, 부통령, 교수 등 잘나가는 고위층들이 미국이라는 최강대국에서 간첩짓을 하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논리다. 근데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강제력을 동원한 경제는 초기엔 그 효과가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당시는 소련의 경제가 잘 돌아갔었고 사르트르, 앙드레 지드 등 서구의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에 매료되어 있었으며 수많은 지식인들이 인류사회는 공산주의로 가야한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수의 지식인들은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로 가는 길에 단기간 운용하는 시스템이고 공산주의만이 도달해야 할 사회이며 미국에도 그렇게 생각한 지식인들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당시 지식인들은 소련이야 말로 공산주의 혁명의 고향이며 사회주의의 조국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루즈벨트도 소련이 빈부격차도없고, 모두가 평등하고 그러면서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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