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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최근 수정 : 2021년 1월 16일 (토) 00:37
빌 클린턴.jpg
빌 클린턴
Bill Clinton
직책 미국 제42대 대통령
(1993.1 ~ 1997.1)
←전임후임→

미국 제42대 대통령
(1997.1 ~ 2001.1)
←전임후임→

정당 민주당
출생일 1946년 8월 19일
출생지 아칸소 주 호프
학력

조지타운 대학교(정치학/학사)
옥스퍼드 대학교(법학/석사)
예일 대학교 로스쿨(법학/박사)

경력

변호사
아칸소 주지사
아칸소 주 검찰총장

배우자 힐러리 클린턴
자녀

첼시 클린턴(1980~)

종교 개신교


개요

미국제42대 대통령. 민주당 소속이며 아내는 버락 오바마 재임 기에 국무장관을 역임하고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맞붙어 낙선한 힐러리 클린턴이다.

생애

어린시절

어린 시절 엄마가 빌 클린턴의 생부와 이혼하여, 빌 클린턴은 엄마와 계부와 함께 살았다. 계부는 알콜 중독자였으며, 빌 클린턴에게 가정폭력을 행사[1]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친모 또한 빌 클린턴을 종종 학대[2]했으며 빌 클린턴이 자란 지역은 술집과 유흥가로 가득한 동네[3]였다고 한다.

청년기

조지타운 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며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유학했다. 졸업 후 예일 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했으며 그곳에서 아내인 힐러리 클린턴을 만난다.

문제는 이 시기에 병역기피가 있었다는 점이다. 1968년 조지타운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유학하게 됐을 당시 즉시 입영해야 하는데 고향의 징집위원들이 영국 유학이 끝날때까지 연기시켜주었고, 그 다음해인 1969년 여름에는 반드시 입대했어야 했는데 이때 클린턴이 아칸소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해 ROTC 훈련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다시 병역을 연기받았다. 그러나 클린턴은 약속했던 아칸소대학교에 가지 않고 예일 대학교 로스쿨에 들어감으로써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피했다. [4]

정계 입문

1974년 생에 최초로 연방 하원 의원 선거에 민주당 소속으로 아칸소 주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한다. 그러나 2년 후인 1976년 아칸소 검찰총장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1978년에는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되였다.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은 1979년 부터 1981년 까지 2년간, 잠깐의 공백기를 거쳐 1983년 부터 1992년 까지 9년간 아칸소의 주지사로 재직했다.

대통령 선거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공화당 소속의 현직 대통령 조지 H.W. 부시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빌 클린턴이 현직 대통령인 조지 H.W. 부시를 꺾고 대통령의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로는 경제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일시적인 불경기를 겪고 있었는데 빌 클린턴의 선거 구호는

It's the economy, stupid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였을 만큼 클린턴은 조지 H.W. 부시의 경제 실정 문제를 지적하며 큰 인기를 얻어 당선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불경기가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경제 실정 탓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케인즈 학파의 주장에 경도되어 있던 1960년대와 70년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지나치게 많은 달러를 발행하였고 그 결과로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만성화된 상태였다. 따라서 당시 연방준비제도는 인플레이션을 퇴치하기 위해 통화긴축정책을 실시하였는데 그것이 그만 일시적인 불경기를 일으키고 만것이었다. 어찌 되었건 일반 미국인들은 이러한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했고 빌 클린턴은 이를 이용하여 대통령에 당선된다.

대통령 재임 시

경제

재임 전에 연방준비제도가 시행했던 인플레이션 퇴치정책으로 인해 저인플레이션의 이득을 봤으며, 재임 중 발생했던 IT붐으로 인해 투자가 활성화되어 호경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재임 중의 호경기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은 훗날 금융위기가 발생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가 있다. 우선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의 고위험 투자를 허용하는 글래스-스티걸 법안(Glass-Steagall Act)를 통과시켰는데 이로 인해 상업은행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의 위험 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2008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다. 또한 유색인종과 저소득층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된 클린턴은 '소득·직업·자산 부재(no income, no job, no asset)'[5] 즉, 직업이 없어도 소득이 없어도 수중에 현금이 없어도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을 압박함으로서 부동산 버블을 초래하였고 이 또한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다.

르윈스키 스캔들

백악관 소속 비서였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훗날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구체적인 정황은 다음과 같다.

1995년 11월 15일
르윈스키가 백악관 인턴 사원으로 근무하던 백악관 비서실장 방에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짝사랑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웃옷을 뒤로 젖힌채 허벅지와 팬티를 연결하는 속옷 끈을 보여주었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에게 "집무실로 와줄수 있겠느냐"고 말했고 르윈스키는 백악관 복도, 서재, 대통령 집무실 등으로 옮겨가면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오럴섹스를 해주었다. [6]

1996년 3월 31일
클린턴은 근무중인 르윈스키를 불렀다. 르윈스키는 클린턴에게 서류를 제출하면서 넥타이를 선물로 건냈고 이어 서재 옆 복도에서 애무를 시작했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의 음부에 시가를 삽입했다가 삽입했던 시가를 빼내 입에 물고는 "맛이 좋군"이라고 말했다. [7]

이외에도 클린턴과 르윈스키는 15차례 이상의 성접촉을 했다. 이러한 경악할만한 사건이 밝혀진 후 클린턴은 일체의 의혹을 부인했으나 관련 조사가 계속 진행되고 여러 증거가 드러나며 사실로 밝혀졌다. 이어 빌 클린턴의 탄핵논란으로 이어졌는데 이것이 탄핵 논란으로까지 번진 이유는 클린턴이 공식 석상에서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는 정치인의 거짓말을 매우 중대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기에 빌 클린턴은 하원에서 탄핵 소추까지 되었으나 결국 상원에서는 부결된다.

대통령 퇴임 이후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민주당 경선에 아내 힐러리 클린턴이 도전했을 때 지원 유세를 했으며, 8년 뒤인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힐러리 클린턴민주당 후보로 선출되었을 때도 지원 유세를 하였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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