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표제어에 포함된 사건 항목이 매우 많기 때문에, 각 사건에 대한 상세 내용이 포함될 수 없습니다. 일단 작업의 효율을 위해, 여러 분들이 올려주신 참고 자료 링크 등은 거짓 선동 (참고 자료)로 옮겨놓았습니다. 가능하면, 일단 제가 어느 정도 통일성 있게 틀을 잡아 놓은 뒤에 수정, 편집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거짓 선동이란 정치 집단, 특히 반체제 성향의 단체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을 근거로 대중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개 처음에는 우호적인 시민사회 단체와 연계하여 투쟁하다가,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정치계, 언론계, 학계가 가담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마녀사냥(witch hunt), 인민재판, 폭력투쟁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거짓 선동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단체가 대부분 반체제적 성향이 강한 단체이기 때문에, 거짓 선전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단체의 반체제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 들어와 국정원국가보안법이 현실적으로 무력화되면서, 후진적 민족주의, 계급주의, 반일주의, PC 이념(Political Correctness), 지역이기주의, 감성주의적 거짓 선동을 제어할 제도적, 법적 장치를 잃게 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 범주에 해당하는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 따라서 이 표제어 항목에서 모든 사건을 상세히 다룰 수는 없다. 개별 사건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별도의 개별 표제어 항목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표제어에서는 (1) 대표적인 거짓 선동 사건과 그 개요, (2) 누가, 왜, 어떻게 거짓 선동을 하나, (3) 거짓 선동의 악영향, (4) 조금 더 생각해 보기, (5) 어떻게 해야 하나의 다섯 개 항목으로 그 전체적 개념과 윤곽을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려 한다.

대표적인 거짓 선동 사건과 그 개요

UN 총회 결의 195-3호의 왜곡

이 결의문의 '이 정부(대한민국 정부)가 한국에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선언한다'라는 문구는 UN이 명백히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북한 정부는 정통성 있는 정보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UN의 자신의 결의안에 따라 설립된 정부만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대한민국 세력은 합법 정부가 세워진 곳이 남한이었음을 서술하는 '임시위원단이 감시하고 자문할 수 있었던 대다수의 한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유효한 통제권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적인 정부(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며'라는 문구를 빌미로, 대한민국 정부는 남한 지역의 정부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방점은 대한민국만이 UN의 결의에 따라 설립된 유일한 합법적 국가라는 점에 있는데, 반 대한민국 세력은 이상하게도 남한에서만 설립된 완전하지 않은 정부였다는 점만을 강조한다. 왜 이렇게 모든 논리가 평양 사람들의 궤변을 닮아 있는지!

제주 4.3 사태에 관한 거짓 선동

(1947~1954년) 오늘날의 성공과 번영의 대한민국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반대하는 반 체제 세력이 존재한다. 그러할진대, 해방 후 정국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에 반대한 세력과의 갈등은 불가피한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일어난 4.3 사건은 이 두 세력 간 갈등의 정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1948년 4월 3일, UN 총회 결의에 따른 남한 단독 정부 설립을 위한 5.10 선거를 앞두고, 이에 반대하는 남로당원 350명이 제주도 24개 지서 중 12개를 일제히 습격하며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설립된 후 10월부터 본격적인 토벌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남로당원보다 훨씬 더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되었다; 진압군에 의한 희생 10,955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 1,764명.

대한민국의 건국은 UN 결의문에 따른 합법적이고 정당한 과정이었다. 만약 이에 반대한 세력에 의해 건국이 좌절되었다면, 그 이후 대한민국의 성공과 번영의 역사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슬픈 역사였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강한 역사였다. 공산주의자들과 한편이 돼서 건국과 정부에 반대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희생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억울함은 이해되어야 하고, 그들의 피해는 보상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공과 번영의 대한민국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도 여전히 1948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반 체제 세력, 반 대한민국 세력, 또는 철이 없는 얼간이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역사 강사 설민석의 4.3 사태에 대한 강의는 그 세력의 지식과 사고가 얼마나 어이없는 수준인지를 잘 보여준다.

6.25 남침 유도설이라는 거짓

소련 해체 후 소련 정부의 기밀 문서가 공개되면서, 6.25 남침의 배후에 소련과 중국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로써, 그 이전의 북침설, 남침 유도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뻔뻔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6.25는 민족해방전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은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불쌍한 남한을 구해내고 자주적인 통일 국가를 이루어내기 위해 북한이 쳐들어왔다는 의미이다. 결국, 이 주장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보다 러시아식 또는 북한식 사회주의가 더 우월한 체제이고, 따라서 북한에 의한 적화통일이 됐으면 더 좋을뻔 했다'는 말로 들린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1) 당신은 6.25 전쟁을 통해 한반도가 공산화되어야 했다고 생각하세요?, (2) 당신은 공산주의가 자유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세요?, (3) 당신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북한, 중국, 러시아를 더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봐라.

한강 다리 폭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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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사진은 대한민국의 체제와 이승만 대통령을 싫어하는 반 대한민국 세력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하자, 6월 28일 새벽 한국군은 군사 작전의 일부로 한강인도교를 폭파한다. 이를 두고 그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의 안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뒤따라 오는 북한군에게 붙잡힐까봐 한강 다리를 건넌 뒤에 얼른 폭파해버린 거야'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정말 생각하는 수준이 유치원 애들 수준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 지식도, 인품도, 나라 사랑도, 그 어느 것 하나 세상의 그 어느 지도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분이었다. 한강 다리의 폭파가 군사 작전의 일부였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작전을 통해 북한군 전차의 도하를 막을 수 있었고, 한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승만 대통령의 실수가 있었다면, 그후 국민들의 좋지 않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실제 작전을 지휘했던 최창식 공병감을 처형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직한 성품을 가진 이승만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 복잡하고 어러운 광풍의 시대를 오점 하나 남기지 않고 뚫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거짓 선동(백년전쟁)

2012년에 공개한, 민족문제연구소라는 극좌 단체에서 만든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동영상은 지난 100년 동안의 역사를 친일파 또는 그 후손과 독립투사 또는 그 후손의 대결로 본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어이없는 부분은 (1) 어떻게 해서라도 이승만 대통령의 인격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와 (2)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로 몰아보려는 뻔한 의도이다.

이 어이없는 시도에 대항해, 전 뉴데일리 박성현 주필을 중심으로 생명의 길이라는 반박 동영상을 제작하여 발표하였다.

무엇보다, 이승만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였다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앙과 고결한 인품을 기반으로, 그 누구보다 조국과 국민을 사랑했고, 당시의 국제 정치에 관한 학식과 통찰력에 있어서 흉내낼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공산주의자들과의 격렬한 투쟁에서 승리하여 대한민국이라는 위대한 나라를 건설한 것 뿐이다. 아직도 체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반 체제 세력의 가장 큰 적일 수밖에 없다.

1919년 대한민국 건국설

반 대한민국 세력은 1948년 제헌헌법 전문의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라는 대목을 근거로 대한민국이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에 건국되었다고 주장한다. 또, 임시정부가 만든 헌법에 이미 대한민국의 국호와 체제가 상당 부분 들어가 있었다는 점과 1948년의 대한민국은 남한만의 국가인 반면, 1919년의 대한민국은 한반도 전체의 국가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첫째,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라는 문구는 법률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 수사적 표현에 불과하다.

둘째, 임시정부의 헌법은 나라가 없는 헌법이다. 당시 조선은 일제 식민지로서 그 헌법 중 어느 한 조항도 실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또, 당시 조선인 중 누가 주권, 영토, 국민, 그리고 헌법이 있는 자기 나라가 있다고 생각했겠는가?

셋째, 남한만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바로 UN이 한반도 내에서 유일하게 합법성을 인정한 성공과 번영의 우리 조국이다.

무슨 궤변을 늘어놓든, 그들은 공공연히 이런 속내를 드러낸다: (1) "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싫어. (2) 국가의 정통성은 북한에게 있는 것 아니야? (3)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북한, 중국, 러시아가 더 좋아."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을 반 체제 또는 반 국가 세력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1919년 건국을 주장하는 사람은 반 체제 또는 반 국가적 사상을 가지고 있거나, 철이없거나 둘 중 하나다.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거짓 선동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거짓 선동은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친일파 독재자'라는 말 속이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본이 지배하던 만주국 만주군 장교로 근무했기에 친일파이고, 반공을 내세우며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유신 체제까지 도입했기에 독재자라는 논리이다.

첫째, 만주군 장교로 근무하면 친일파인가? 그런 논리라면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아간 대다수의 조선인이 친일파가 되어버린다.

둘째, 그 시대가 소위 권위주의 시대, "개발 독재"의 시대였던 것은 맞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를 보는 통찰력, 그리고 강력한 카리즈마와 추진력이 없었다면, 산업화는 그만큼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산업화의 토대가 아니었다면, 민주화도 지금의 대한민국도 있을 수 없었다. 이런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였다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가벼움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다면 유신 체제(1972년 10월 선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유신 체제를 통해 당시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상당 부분 퇴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바로 앞에서 언급한 역사의 큰 흐름에서 해석해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전 뉴데일리 박성현 주필과 경기대학교 조성환 교수가 진행하는 조뱅썰전(세뇌탈출 256탄)을 참고할 것을 권유한다.

5.18 광주 사태

10월 유신(1972년 10월) 이후, 경제적 기초를 더 다져야 한다는 산업화 세력과 자유를 열망하는 민주화 세력 간의 대결이 점점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부마사태가 일어나고 마침내 10.26 사건(1979년 10월 29일)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다.

이 와중에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정국은 신군부와 민주화 세력의 대결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이를 계기로 전남 광주에서 열흘 동안(5월 18일~5월 27일)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 이때 누군가에 의해 광주 시민들 사이에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시민을 죽이러 왔다", "계엄군이 여고생의 젖가슴을 도려내고, 임신부의 배를 갈랐다"는 유언비어가 살포되면서, 시민들의 저항은 더욱더 격렬해진다. 최종적으로 166명의 민간인과 27명의 군경이 사망하는 엄청난 희생이 발생했다.

그후 광주는 민주화세력의 성지가 되었고, 5.18은 운동권의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민주화와 함께 5.18 사태는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지정되었다. 그리고 그 희생자와 유족에게는 일부 국민들에 의해 지나치다고 비판받을 정도의 보상과 혜택이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광주 사태에 관한 몇 가지 풀어야 할 의문이 있다: (1) 누가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살포했나? (2) 반 체제, 반 국가 세력은 어느 정도나 참여했는가? (3)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할 확실한 증거는 있는가?

칼기 폭파 사건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35편 여객기가 북한 공작원 김현희의 폭탄 테러로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되어 모두 115명의 탑승객과 승무원이 희생된 사건이다.

국가안전기획부는 북한의 테러였다는 공식 수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일부 좌익 단체는 이 사건을 국가안전기획부가 기획한 자작극이고, 김현희 역시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결국 노무현 정권하에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를 구성하여 재조사를 실시하여 그들 스스로 그 조사에 참여하였지만, 그들 역시 '조작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단에 속한 다수의 구성원은 아직도 자기들이 참여하여 내린 결론조차 믿지 못한다. 그리고 천안함 폭침, 세월호 침몰에 대해 똑같은 의혹을 제기한다. 항상 그렇듯 그들이 진정으로 밝혀내고자 하는 것은 객관적 진실이 아니다. 그들이 이미 진실을 독점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기에, 세상이 그들의 망상에 맞춰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진실의 바탕이 주체사상, 맑스주의 또는 PC 이념이기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기본 정신에 반하는 경우가 많다.

미군 장갑차 교통 사고

천성산 도롱뇽 소동

광우병 사태

2008월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4월 26일,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협상을 체결하자, 광우병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도가 빗발치기 시작했고, 국민들의 불안감은 급속히 증폭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5월 2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최초의 집회가 열리고, 시위는 그후 100일이 넘는 기간동안 지속되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세 번에 걸친 대국민 사과와 재협상 약속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서야 겨우 시위의 열기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2011년 대법원은 '아레사 빈슨이 광우병에 걸렸다', '주저앉는 소는 모두 광우병에 걸린 소다', '한국인의 94%가 광우병 걸릴 위험이 있다'는 PD수첩 보도에 대해 허위이거나 과장·왜곡이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통계적으로도, 광우병에 걸린 미국소의 수나 '인간광우병(vCJC)에 걸린 미국인의 수'(미국 정부 보고서)가 거의 0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이 대소동은 (1) 언론의 허위, 과장, 왜곡 보도, (2) 학자들의 잘못된 지식의 전달, (3) 반미 단체의 거짓 선동, (4) 국민의 판단력 부재가 만들어낸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이 거짓의 광풍 속에서 외롭게 '미국산 쇠고기가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진실을 주장했던 한 노학자의 증언을 통해 이 시대의 한계와 과제를 절감할 수 있다(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명예교수).

천안함 폭침

4대강 관련 거짓 선동

내로남불의 거짓 선동

국정원과 드루킹

블랙리스트

정윤회,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세월호 사건

작성 중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군 해상 맹골수로에서 청해진해운 소속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476명의 전체 승객 중 172명이 구조되고 304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262명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소재 단원고등학교의 교사와 학생이었다.

(1) 불법 과적, (2) 평형수를 29%만 채운 채 그 자리에 화물을 실었다는 점, (3) 화물을 제대로 고박하지 않았다는 점, (4) 침몰 시점에 학생들을 선실에 머물게 한 점, (5) 선장의 근무 태만, (6) 해경의 대처 미흡 등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아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분노한 국민들은 정부와 청해진 해운의 사주 유병언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태의 무마를 위해 해경 해체 결정을 발표하고, 도피 중 자살한 유병언은 변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상황에서, 국민이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여 서로의 감정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그렇지만 아주 강력하게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단결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지만 이 사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종북 세력은 언제나 그렇듯 미국이 침몰시켰을 것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박근혜 퇴진 운동을 벌여 온 반 체제 세력은 모든 책임을 박근혜 정부에게 돌리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영향력 있는 모 방송인은 다이빙벨과 관련된 코미디 같은 보도로 구조 작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으며, 심지어 '살아 있는 유병언을 어디에서 봤다'는 소문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국가 전체가 너무 빠르게 너무 깊은 슬픔의 늪 속에 빠져들었고, 차분하게 대처하자는 일부의 의견은 일방적으로 무시되었다.

다시 한번, 이성은 감성에게 굴복해야 했고, 진실은 유언비어에 무릎꿇어야 했으며, 절제와 품격은 다급한 감정의 폭풍 속에서 발디딜 곳을 잃었다.

THAAD에 관한 거짓 선동

박근혜 대통령 탄핵 (거짓 선동으로 대통령까지 탄핵하다)

2016년 10월 24일, JTBC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의 증거물로 고영태의 책상 서랍에서 찾았다는 태블릿PC를 제시한다. 최순실이 이 태블릿PC를 이용해서 청와대와 주요 국가 문서를 주고받으며 국정을 농단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촉발된 소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1) 수많은 유언비어와 가짜뉴스가 난무하기 시작하고, (2) 그 결과 친박 의원들까지 나서서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하는가 하면, (3) 친이계의 주도하에 국정감사라는 이름으로 국회가 나서서 대통령과 최순실을 마녀사냥하고, (4) 다시 또 그들의 주도하에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결의안이 통과되고, (5) 이렇게 해서 제출된 국회의 탄핵 소추안을 헌법재판소는 8:0 일방적인 판결로 인용하였다. 이 사건은 국가의 뿌리를 뒤흔들어버린, 거짓 선동을 통해 전개된 사건 중 가장 심각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대통령을 포함한 수많은 여권 인사들이 인격적으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그 타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 모든 과정이 근거 없는 유언비어와 가짜뉴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었으며, 심지어 헌법재판소의 판결 조차 거짓 선동의 광풍에 굴복한 셈이었다. 태블릿PC에 관한 유언비어 이외에도, 수많은 유언비어, 가짜뉴스가 난무했다:

  • 최태민의 악령과 최순실의 주술이 대통령의 영혼을 지배했다더라.
  • 그래서 심지어 청와대에서 굿판까지 벌였다더라.
  • 최순실이 권력서열 1위라더라.
  • 정유라가 박근혜 딸이라더라.
  • 박근혜가 최태민의 부활을 위해 세월호 아이들을 인신공양했다더라.
  • 세월호 침몰 당일 박근혜가 정윤회와 밀회를 즐겼다더라.
  • 세월호 침몰이라는 재난 상황에서도 박근혜는 출근도 안 했다더라.

이 가공할 유언비어, 가짜뉴스에 속은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자, 이 분위기를 이용해 김무승, 유승민을 중심으로한 친이계, 좌파 정치권, 좌경화된 언론계, 법조계, 노동계가 합세하여 대통령의 탄핵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대통령 탄핵 시도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이 광기의 시발점이었던 태블릿PC에 대한 의혹과 온갖 유언비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서서히 억지 법리가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다음과 같은 헌재의 판결의 요지는 이 억지 논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의 설립을 빌미로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
  • 경제공동체인 최순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권한을 남용하여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했다.
  • 직무상 비밀 문건을 유출하여 국가공무원법의 비밀 엄수 의무를 위배하였다.
  • 탄핵을 하지 않는 것보다 탄핵을 해서 얻을 수 있는 헌법적 이익이 훨씬 더 크다.

이와 같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은 (1) 유언비어, 가짜뉴스, (2) 우파 정치권의 기회주의, (3) 좌파 정치권, 언론계, 법조계, 노동계, 반 체제 세력의 망상, (4) 국민의 허약한 판단 능력이 빚어낸 또 한번의, 그러나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집단적 사기 사건이었다.

탈원전을 위한 거짓

작성 중

문재인은 탈원전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그 내용은 원자력 제로 시대를 목표로 고리 1호기를 폐쇄하고 신고리 5, 6호기의 공사를 중단하는 한편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중을 비약적인 늘려나가겠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실제로 고리 1호기를 영구 정지시켰으며(2017년 6월 19일), 그다음으로 신고리 5, 6호기의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한 수순을 밟는다. 그러자 '문재인이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을 죽이려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학계, 업계, 지자체 등 사방에서 반대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제 문재인 정권은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국민의 직접적인 참여라는 포장을 씌워 탈원전 정책을 밀고 나가려 한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의 기대와 달리 반대 의견이 우세했고, 그 사이에 1,000억이 넘는 비용이 낭비되었다.

탈원전 정책을 설득하는 가장 큰 무기는 세 차례의 대표적인 원전 사고에서 드러나 원전의 위험성이라 할 수 있다:

  1.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방사능 피폭 사망자 0명
  2.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방사능 피폭 사망자 28명~25만 명
  3.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방사능 피폭 사망자 0명

위에 기록한 사망자의 수에서 알 수 있듯이, 체르노빌 사고를 제외하고 사망자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은 그동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누군가가 거짓말을 퍼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2017년 6월 19일의 고리 1호기 영구 정지식에서, 문재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68명이 사망했으며, 원자력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문재인이나 그 참모들도 나름 빠져나갈 논리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발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후쿠시마에서의 방사능 노출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거짓 선동의 한 유형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통계로 볼 때, 원자력 에너지는 가장 저렴하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깨끗한 에너지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역사상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었다. 더 나아가서, 한국의 원자력 기술은 몇 개 되지 않는 세계 1위 수준의 기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상당수는 원자력 발전이라는 말에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과 후쿠시마에서 죽었다는 수천 명의 일본인을 연상한다.

최저 임금에 관한 거짓 선동

작성 중

문재인 정부은 3대 경제 정책 기조로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이다. 이것은 임금과 소득을 늘려서 경제 성장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위 소득주도성장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최저임금의 파격적인 인상을 이 정책의 실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으며, 선거공약에서도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돌파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2018년에 16.4%, 2019년에 10.9%를 인상해서, 불과 2년 만에 28.6%를 인상하였다. 여기에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주휴수당을 최저임금에 적용시키기로 하면서, 20%의 추가 인상 효과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2017년에 6,470원이었던 최저임금이 2019년에는 8,350으로 올랐고, 여기에 주휴수당까지 더하면 10,020원이 되어버린다. 결국, 주휴수당까지 포함한다면, 최저임금에 대한 문재인의 공약이 1년이나 앞당겨 실현된 셈이다. 물론 그들은 주휴수당은 논리적으로, 법적으로 최저임금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겠지만, 주휴수당이 '현실적으로' 최저임금의 인상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단, 주휴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주 15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의 허구성은 다양한 차원에서 비판되고 입증될 수 있다. 그렇지만 고차원적인 논리 싸움을 하지 않더라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함께 (1) 자영업자의 폐업이 속출하는 현상, (2) 주인보다 직원이 더 돈을 많이 버는 현상, (3) 실업률이 급격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그 허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기초적인 경제 지식과 어느 정도의 현실 경험만 있어도 쉽게 그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논리에 기반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전체 근로자의 9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급여가 올라갔다는 말로 진실을 가리려 한다. 이 정도까지 가면 이것을 명백한 거짓이라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경제 공황이 오기 않는 한, 해마다 급여가 조금씩이라도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억지로 최저임금의 과격한 인상을 강제하지 않았나? 따라서 이런 통계를 내미는 것 자체가 거짓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해 (1) 오히려 어려운 처지의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은 왜 숨기는가? (2)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는 현상을 왜 숨기는가?

소득주도성장론 자체가 거짓이다. 의도적인 거짓이 아니더라도, 진실이 아니면 거짓이다. 어떻게 이렇게 머리나쁜 사람들이 그 높은 자리에서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모두 우리들 자신의 책임이다!

양극화, 빈부 격차에 관한 거짓 선동

위안부 할머니에 관한 거짓 선동

위안부 소녀상

세종대학교 박유하 교수에 따르면 위안부를 소녀로 묘사하는 것은 문제라고 한다. 소녀상의 이미지는 미성년자인 순결하고 죄없는 소녀가 일본의 강압적인 강탈에 의해 강제로 위안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는 '소녀'는 위안부를 대표할 수 있는 연령대이거나 이미지가 아니며 오히려 소녀라는 이미지는 위안부 문제에서 조선인 포주 등과 같이 우리 내적인 문제에 대해 은폐하고 면책하는 면이 크다고 한다. 위안부가 된 사람 중에는 소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1960년대 한국 영화를 보면 조선인 학도병들이 만난 위안부가 성인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증언을 보면 10대 전반인 케이스는 오히려 적고, 당시 군인들에게도 예외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는 증언자의 다수가 다른 사람은 자기보다 연상이었다고 말한다. 매춘 업계에 소녀가 끌려가는 것은 세계적으로 있는 일이며 그런 의미에서 소녀가 많았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일본군의 뜻이었다기보다 업자의 뜻이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위안부의 나이는 일률적으로 추정할 수 없지만, 증언집이나 자료에 따르면, 평균 연령은 20세 이상으로 보인다.

종북 세력의 거짓 선동

언론의 거짓 선동

홍위병이 되어버린 법조계

누가, 왜, 어떻게 거짓 선동을 하나?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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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회주의적 망상을 버리지 못한 386의 뇌에 아로새겨진 뚜렷한 문신이 있다. 주사파의 뇌에는 반미사상이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고, 맑스주의자의 뇌에는 가진자에 대한 원한이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어떻게

조금 더 생각해 보기

거짓 선동의 악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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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선동은 반체제 세력만의 소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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