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
東京都
とうきょうと
나라
지방
코드
13000-1
인접 도도부현
도목
도화
도조
자치체장
고이케 유리코 (小池 百合子)
우편번호
163-8001
ISO 3166-2
JP-13
소재지
도쿄도 신주쿠구 니시신주쿠 2-8-1
좌표
외부링크

일본어: 東京都[2]

도쿄 전경

개요

도쿄도는 일본의 47개 도도부현 중 하나로 (都道府縣의 都에 해당한다. 都는 도쿄도밖에 없고, 道는 홋카이도 밖에 없다. 府 오사카와 교토 두개이며, 나머지는 모두 현이다.) 메이지 시대 이후 사실상 일본수도이다.

주 섬 혼슈의 동안에 위치해 있다. 일본 동쪽의 태평양에 펼쳐져 있는 도쿄 만에 접하고 있으며 북부는 비옥한 간토 평야이다. 일본의 수도 기능을 하는 도쿄 23구와 다마 지역, 이즈 제도, 오가사와라 제도로 구성된 지방자치단체이다. 한국어에서는 한국 한자음을 따라 동경도라고도 부른다.


보통 도쿄라고 하면 23구를 말한다. 오사카도 오사카라 하면 오사카시지 오사카시가 아닌 오사카부를 말하는 게 아닌듯이.

도쿄라 함은 동쪽에 있는 수도라는 뜻으로, 한중일에서 다른 도시에도 쓰던 표현이다. 북송의 당시 수도였던 지금의 카이펑을 동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려시대 때 경주를 동경이라고 하기도 했다.



전세계에서 도시권 기준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일본의 수도권은 인구가 약 3000만명 쯤 된다.

전세계 도시 중 경제규모도 가장 크다.

원래 이름은 에도로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견제하기 위해, 이곳으로 영지를 교체 시켰다.

간토지방은 원래 반란이 자주 일어나서 다스리기 힘든 지역이라는 평가가 있었어, 반란이 일어나면 그걸 구실로 영지를 뺏거나 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만 결과는 이에야스는 에도에서의 통치도 잘했고, 원래 영지였던 츄부 쪽 영지의 영향력도 잃지 않아. 영지를 교체하는 선택은 도리어 이에야스의 힘만 더 강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당시 간토의 유명한 지역은 오다와라나 가마쿠라 막부가 있었던 가마쿠라였다. 이에야스는 일본에서 제일 큰 평야의 가운데에 있는 당시의 에도의 입지가 확장 등의 잠재력이 높다고 평가 했고(가마쿠라는 관토평야 입구에 있는데, 산으로 둘어 쌓여 있어서 방어하기는 좋으나, 확장하기에는 많이 협소한 편이다.), 이 에도를 간척사업까지 하면서 탈바꿈 시켰다. 도쿠가와 막부 시대를 이 에도의 명칭에서 따서 에도시대라고 한다.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고 대정봉황 이후 메이지천황이 교토 고쇼에서 에도성(지금의 황거 고쿄)에 이주하면서 동경으로 개칭되었다.

에도시대 때 이미 참근교대 등으로 전국의 다이묘는 시기에 따라 각자의 영지와 에도를 오가게 하고, 그 자식들은 에도의 인질과 같은 상태로 에도의 저택에서 살게 하거나 해서 일본 전국이 에도를 중심으로 한 교통망이 짜여지고, 막부의 소재지로서 일본의 정치적, 상업적 중심지가 되면서 에도, 오사카, 교토는 에도시대 때 일본의 3대도시가 되었고,

대정봉황 이후 천황까지 거주하면서 명실상부하게 일본의 수도이자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일제시대 때는 어떤 의미에서는 메카였는데, 궁성요배, 동방요배 등은 천황이 사는 도쿄의 황거 방향으로 예를 표하는 의식이었다.

사실 전근대시절 임금이 사는 방향으로 절을 하거나 예를 표하는 것은 조선이나 중국에서도 하던 일이었다.



각주

  1. 더 많은 지도 사진 보기
  2. とうきょう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