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
  • 토론
  • 읽기
  • 원본 보기
  • 역사 보기
여수·순천 10.19 반란사건
최근 수정 : 2021년 8월 3일 (화) 15:43

(여순반란사건에서 넘어옴)

여수·순천 10.19 반란사건 또는 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 또는 여순사건(麗順事件)은 전라남도 여수·순천 지역에서 국군 제14연대 소속이자 남조선로동당 소속의 좌익 군인인 김지회·지창수가 주동하여 일어난 군사반란과 여기에 호응한 좌익계열 시민들이 가담한 사건이다.

개요

194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7일까지 전라남도 여수, 순천에서 발생한 남로당 소속 군인들의 반란 사건이다.

여수에 주둔 중이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의 1개 대대를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기 위하여 파견하기로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 반란은 군이 일으켰다는 점에서 신생국가였던 대한민국 정부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 국군 내 존재하던 좌익 세력을 제거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개

진압

국무총리국방부 장관이범석이 10월 22일

1. 제군은 동지와 상의하여 단체로든지 또는 개인 단독으로든지 제군의 양심이 허용치 않는 현재 반란의 지휘자를 즉시 총살하고 부대에 백기를 달아 귀순의 意(의)를 표하라.


2. 전기가 부득이한 시에는 반군의 폭행이 이용되는 총기, 화약탄 및 기타 군용품을 즉시 파괴한 후, 탈주하여 토벌 국군에 투항하라.

와 같은 내용의 포고문을 반란군에 살포[1]하였다. 또한 이날 채병덕 참모총장이 반란군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2]하였다. 이어 김백일 중령이 지휘하는 육군 제5여단이 27일 여수를 점령[3]함으로써 반란은 막을 내렸다. 진압에 있어서 어려웠던 점은 반란군과 양민의 구분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일례로 여수 진압 시 검문소에서 여학생이 권총으로 검문하던 초병을 사살하고 도주[4]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화처럼 겉보기에 순진해 보이는 여중생, 여고생이 반란군으로 돌변하는 일이 적잖이 있었기에 국군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참고 자료

남한총선 결정에 남로당서 폭동 / 김구·김규식, 단정 수립안 계속 반대 / 동맹휴교 60교·306명 검거… 하루만에 폭동진압
2·7투쟁전후 제주에 무장행동 지령 / 중앙당선 당 군사부 책임자까지 파견 / 경비대 소속 남로당원들 경찰서·14개지서 등 습격 / 토벌대장도 피살, 폭동 1년 계속… 여·순 사건으로 비화
폭동진압 출동에 항거, 14연대가 반란 / 남로당 세포위, 찬반 싸고 심각한 내분 / 군 내부 「푸락치」침투에만 주력했던 박도 예측 못한 우발사고

함께 보기

각주

최근 바뀜
자유게시판
+
-
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