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행정부

국방부 마크

國防部
Minstry of Defense

1. 개요

대한민국 국방부는 대한민국의 군사 정책을 수립하고 국군을 지휘, 관리하는 중앙 행정기관이다.

국방부는 육군, 해군, 공군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며 국가 안보와 영토 방위를 책임진다. 또한 병역 제도, 군사 외교, 방위력 개선 등 국방 전반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공식 설치되었는데, 이승만 정부가 국가 체제를 정비하면서 독자적인 군 통수 체계를 갖추기 위해 만든 핵심 기관이다.

당시 미군정에서 이양된 군사 권한을 바탕으로 국군을 창설하고 국방 행정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국방부가 중심 역할을 한다.


2. 설치근거

정부조직법

제33조(국방부) ① 국방부장관은 국방에 관련된 군정 및 군령과 그 밖에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② 국방부에 차관보 1명을 둘 수 있다.

3. 업무

국방부의 업무는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을 보좌하고 군령권(軍令權)과 군정권(軍政權)에 관한 제반 업무를 관장하는 것이다. 이 중 군정(軍政)은 군을 조직·편성하고 병력을 취득·관리하는 작용[1]이며 군령(軍令)은 국방목적을 위하여 군을 현실적으로 지휘·명령하고 통솔하는 작용[2]이다. 군령권(軍令權)은 합동참모본부에 위임되어 있으며 군정권(軍政權)은 각 군 본부 위임되어 있다. 이외에도 국방정책의 수립 및 실행, 군인사 및 복지 등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징병 업무는 산하의 병무청에 방위력 개선 및 군수품 조달 업무는 산하의 방위사업청이 담당하고 있다.

4. 조직

4.1. 역대 장관

정부조직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국방부 장관은 국방부의 장으로써 국방에 관련된 군정 및 군령과 그 밖에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문민통제라고 아예 생판 군과는 관계가 없었던 인물, 여자 이런 사람이 국방부장관을 맡는 경우가 더러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은 아주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군인출신들이 국방부장관을 해 왔다. 물론 현역군인은 당연히 아니다. 특히 육군 장성 출신들이 많았는데 문재인 때는 이래적으로 해군 공군 출신이 연속으로 국방부장관을 맡았다. 일부로 육사 출신들을 배제한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대수 이름 출신/직급 임기
제1공화국
초대 이범석(李範奭) 한국 광복군, 중장 1948년 8월 15일 ~ 1949년 3월 20일
2대 신성모(申性模) 해군, 중장 1949년 3월 21일 ~ 1951년 5월 5일
3대 이기붕(李起鵬) ㅡ 1951년 5월 7일 ~ 1952년 3월 29일
4대 신태영(申泰英) 육군, 중장 1952년 3월 29일 ~ 1953년 6월 30일
5대 손원일(孫元一) 해군, 중장 1953년 6월 30일 ~ 1956년 5월 26일
6대 김용우(金用雨) ㅡ 1956년 5월 26일 ~ 1957년 7월 6일
7대 김정렬(金貞烈) 공군, 중장 1957년 7월 6일 ~ 1960년 5월 2일
8대 이종찬(李鐘贊) 육군, 중장 1960년 5월 2일 ~ 1960년 8월 23일
제2공화국
9대 현석호(玄錫虎) ㅡ 1960년 8월 23일 ~ 1960년 9월 12일
10대 권중돈(權仲敦) ㅡ 1960년 9월 12일 ~ 1961년 1월 30일
11대 현석호(玄錫虎) ㅡ 1961년 1월 30일 ~ 1961년 5월 18일
12대 장도영(張都暎) 육군, 중장 1961년 5월 20일 ~ 1961년 6월 6일
- 신응균(申應均) 육군, 중장 1961년 6월 6일 ~ 1961년 6월 12일
13대 송요찬(宋堯讚) 육군, 중장 1961년 6월 12일 ~ 1961년 7월 10일
14대 박병권(朴炳權) 육군, 중장 1961년 7월 10일 ~ 1963년 3월 16일
제3공화국
15대 김성은(金聖恩) 해병대, 중장 1963년 3월 16일 ~ 1968년 2월 27일
16대 최영희(崔榮喜) 육군, 중장 1968년 2월 28일 ~ 1968년 8월 5일
17대 임충식(任忠植) 육군, 대장 1968년 8월 5일 ~ 1970년 3월 10일
18대 정래혁(丁來赫) 육군, 중장 1970년 3월 10일 ~ 1971년 8월 25일
제4공화국
19대 유재흥(劉載興) 육군, 중장 1971년 8월 25일 ~ 1973년 12월 3일
20대 서종철(徐鐘喆) 육군, 대장 1973년 12월 3일 ~ 1977년 12월 20일
21대 노재현(盧載鉉) 육군, 대장 1977년 12월 20일 ~ 1979년 12월 14일
제5공화국
22대 주영복(周永福) 공군, 대장 1979년 12월 14일 ~ 1982년 5월 21일
23대 윤성민(尹誠敏) 육군, 대장 1982년 5월 21일 ~ 1986년 1월 8일
24대 이기백(李基百) 육군, 대장 1986년 1월 8일 ~ 1987년 7월 14일
25대 정호용(鄭鎬溶) 육군, 대장 1987년 7월 14일 ~ 1988년 2월 25일
노태우 정부
26대 오자복(吳滋福) 육군, 대장 1988년 2월 25일 ~ 1988년 12월 4일
27대 이상훈(李相薰) 육군, 대장 1988년 12월 4일 ~ 1990년 10월 8일
28대 이종구(李鍾九) 육군, 대장 1990년 10월 8일 ~ 1991년 12월 20일
29대 최세창(崔世昌) 육군, 대장 1991년 12월 20일 ~ 1993년 2월 26일
김영삼 정부
30대 권영해(權寧海) 육군, 소장 1993년 2월 26일 ~ 1993년 12월 22일
31대 이병태(李炳台) 육군, 중장 1993년 12월 22일 ~ 1994년 12월 24일
32대 이양호(李養鎬) 공군, 대장 1994년 12월 24일 ~ 1996년 10월 18일
33대 김동진(金東鎭) 육군, 대장 1996년 10월 18일 ~ 1998년 3월 3일
김대중 정부
34대 천용택(千容宅) 육군, 중장 1998년 3월 3일 ~ 1999년 5월 24일
35대 조성태(趙成台) 육군, 대장 1999년 5월 24일 ~ 2001년 3월 26일
36대 김동신(金東信) 육군, 대장 2001년 3월 26일 ~ 2002년 7월 12일
37대 이준(李俊) 육군, 대장 2002년 7월 12일 ~ 2003년 2월 27일
노무현 정부
38대 조영길(曺永吉) 육군, 대장 2003년 2월 27일 ~ 2004년 7월 29일
39대 윤광웅(尹光雄) 해군, 중장 2004년 7월 29일 ~ 2006년 11월 24일
40대 김장수(金章洙) 육군, 대장 2006년 11월 24일 ~ 2008년 2월 29일
이명박 정부
41대 이상희(李相憙) 육군, 대장 2008년 2월 29일 ~ 2009년 9월 22일
42대 김태영(金泰榮) 육군, 대장 2009년 9월 23일 ~ 2010년 12월 4일
박근혜 정부
43대 김관진(金寬鎭) 2010년 12월 4일 ~ 2014년 6월 29일
44대 한민구(韓民求) 육군, 대장 2014년 6월 30일 ~ 2017년 7월 13일
문죄인 정권
45대 송영무(宋永武) 해군, 대장 2017년 7월 13일 ~ 2018년 9월 21일
46대 정경두(鄭景斗) 공군, 대장 2018년 9월 21일 ~ 2020년 9월 18일
47대 서욱(徐旭) 육군, 대장 2020년 9월 18일 ~ 현재
윤석열 정부
48대 이종섭(李鐘燮) 육군 중장 2022년 5월 11일 ~ 2023년 10월 7일
49대 신원식(申源湜) 육군중장 2023년 10월 7일~

4.2. 국군

대한민국 국군
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

4.3. 국방부 직할 부대

국군 부대 중에서 국방부가 직접 관할하는 부대들이 존재하는데 아래와 같다.

  • 군사안보지원사령부
  • 국방정보본부
  • 국방시설본부
  •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
  • 국군지휘통신사령부
  • 사이버작전사령부
  • 국군수송사령부
  • 국군의무사령부
  • 국방부 근무지원단
  • 계룡대 근무지원단
  • 국군체육부대
  • 국군심리전단
  • 국군재정관리단
  • 국군인쇄창


5. 논란

5.1. 여성공무원 비율

2015년 기준 국방부 내 공무원의 여성 비율은 40.5%로 타 부처의 일반직 여성 공무원 비율 33.7%보다 높다. [3] 문제는 여성 공무원들이 안보에 관심있어서 국방부가 인기가 많은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부처는 다 세종시에 내려가 있는데 국방부는 서울에 남아 있기에 인기가 높은 것이다. 병사로는 근무 못하겠다면서 국방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는건 괜찮다는 한국 여성들의 이중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세종시 자체가 병크라 행정은 수도서울에 있는게 맞다. 삼군본부가 계룡시로 내려 간 것도 좀 오버라고 본다. 물론 최전방과 너무 가깝다는 게 이유인데, 참고로 공무원도 국민 중 한 사람이다. 공무원이 세종시와 충청도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해도 되느냐 한다면

6. 문재인정부

6.1. '대깨문' 팔로우

문재인 정부 국방부 트위터 대변인이 "보수 꼴통 XX들 접근하면 뒤진다"는 '대깨문' 팔로우 논란[4][5][6]

  • 국방부 트위터 대변인서 팔로우하는 계정, 소개글부터 "내가 사랑하는 내 조국"...글서도 검찰 비난과 정부 옹호
  • 시민들은 '정치적 편향' 문제삼아..."이낙연도 그러더니 국방부도 그러느냐" "저런 사람하고만 소통하니 親北 정책만 추구"
  • 국방부 "운영하는 과정서 생긴 불찰 맞다...담당자가 자주 바뀌고 해서 인수인계 제대로 안 됐던 듯"


7. 이재명 정권

7.1. 방위출신 국방장관 안규백

7.1.1. 2022년 한미일 연합훈련 일정 유출

2022년 9월 28일 안규맥 더불당 의원은 한미일 연합훈련 일정은 물론 훈련 위치까지 본인의 SNS에 게재해 논란을 자초했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30일 한미일 3국 해군이 동해상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합니다. 26일부터 29일까지 진행하고 있는 한미 연합해상훈련 종료 후 한미 양국 해군은 동해상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함께 다국간훈련을 실시합니다.

참담합니다. 비록 예정된 훈련장소가 한국작전구역(KTO) 바깥이기는 하지만, 독도에서 불과 150여km 떨어진 곳입니다. 일본이 단독으로, 혹은 미일이 연합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군이 기꺼이 일본 해상자위대와 연합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유사시 한반도 문제에 일본 해상자위대의 개입을 허용하겠다는 것인지 윤석열 정부의 안보관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북정책에 있어서 한미일 공조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일본이 아니라 세계 어디와도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도 일본 등 다국적군과 함께 탈리스만 사브르('21), 퍼시픽 뱅가드('20, '21) 등 다양한 훈련을 했고, 2017년에는 한일 공동으로 함정 수색 및 구조훈련을 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해는, 군사작전은 다릅니다. 지금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나라입니다. 2018년 초계기 갈등, 2019년 수출규제 이후 아무런 사과도 없는 나라입니다. 강제징용도, 위안부 문제도 한국정부가 해결책을 가져오라는 식입니다. 도대체 이런 나라와 군사작전을, 그것도 독도 150km 인근에서, 말이 됩니까?

도대체 이 정부 외교관은, 안보관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자는 이 정부의 외교를 구걸외교라고 하고, 이 정부의 안보를 굴종안보라고 합니다. 야당을 떠나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뭐라 반박할 말이 없습니다.

3축체계니 뭐니 말만 거창하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문재인 정부의 유산을 계승한 전략으로 거친 단어를 뽑아내고, 문재인 정부의 유산을 계승한 방산수출로 경제적 성과를 자랑하면 그게 윤석열 정부의 성과가 됩니까? 그래놓고는 48초 회동을 자랑하고, 비속어 논란을 일으키며 비속어의 대상이 우리 야당이었다고 변명하는 행태가 참으로 우습고 안타까운 모양새 아닙니까?

우리 더불어민주당은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가안보 훼손을 결코 두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구걸외교, 굴종안보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 국정감사는 물론 21대 후반기 의정활동 전반을 통하여 세밀하게 감시하고 견제하겠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으로서 꼭 드려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국방부는 29일 입장자료를 통해 "대잠전 훈련의 경우 상당 수준의 보안이 요구되는 훈련임을 고려해 사전 언론의 협조를 구해 발표시기를 조율했다" 라고 하며 "훈련 관련 일부 내용이 개인 SNS를 통해 공개된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라고 입장을 밝혔다.


7.1.2. 안규백 국방장관의 끝 없는 안보 해체

안규백의 SNS글로 최소된 한미연합훈련...이유가 중국 잠수함의 등장?ㅣ엄튜브

엄튜브 유튜브 채널에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한미동맹 파괴 대한민국 국군의. 해체에 대한 끝없는 행태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첫째로 국회의원 시절 국가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개인 SNS에 무단으로 게시한 행위가 지적되었다. 안규백 장관은 과거 국방위원이던 시절 다음 달 동해상에서 벌어질 한미 연합 훈련의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를 공개하였으며, 이로 인해 보안상의 이유로 훈련 자체가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정보 유출에 따른 실질적인 안보 위협 초래가 지적되었다. 당시 안 장관이 훈련 정보를 공개한 이후 미국 측에서는 해당 날짜에 중국 잠수함이 인근에 출현하였다는 사실을 발표하였으며, 이는 정치인의 부주의한 정보 공개가 적대 세력에게 전략적 정보를 제공한 꼴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로 국방 안보 분야의 전문성 결여 문제다. 안 장관은 군 출신이 아닌 방위 소집 해제자로서 군의 작전, 대비 태세, 군사 역사 등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상에서는 이러한 비전문적인 인사가 국방의 수장을 맡음으로써 안보 상황에 대한 오판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그는 군 내부의 복잡한 메커니즘과 동맹 관계를 관리하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셋째로 한미 동맹의 균열과 갈등 관리 능력 부재다. 안규백 장관 체제의 국방부가 주한미군과 이견을 보이거나 동맹국이 불편해하는 요인을 제거하지 못함으로써 한미 동맹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는 이재명 정권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서 끝없이 도발하는 행태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아무리 외교를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이라도 저렇게까지 모를 수가 있나 할 정도로 즉흥적이고 미국 우선을 외치고 있는 트럼프의 코털을 건드릴 수 있냐는 것이다. 대한민국 전 국민을 생각하면 도저히 행동할 수 없는 짓이다. 결국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의도적인 한미관계 파탄이다. 이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한미 동맹의 악화로 인한 중국으로의 편입[7], 그리고 국가 경제의 파탄으로 인해서 전국민이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종속되는 국가 장악력을 높이는 상황이다.

​넷째로 군 내부 통솔 및 사기 저하 문제가 지적되었다. 군 장병들의 가치관이나 군인으로서의 양심에 반하는 명령이나 보도 자료가 하달됨에 따라 실무진들의 표정이 좋지 않고 내부적으로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로 군 개혁안에 대한 맹목적인 동조 문제가 지적되었다. 육군, 해군, 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하겠다는 등 각 군의 전문성을 저해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정책에 대하여 국방부 장관으로서 소신 있게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고 수용하는 무능력한 태도이다.



7.1.3. 위병소 근무시 총 대신 3단봉

2026년 1월, 안규백 장관이 된 이후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육군 제21보병사단에서 위병소 경계근무와 관련해 큰 논란이 일으켰다.

해당 사단은 합동참모본부의 경계작전 지침을 바탕으로, 1월 5일부터 위병소 근무 시 총기를 휴대하지 않고 대신 3단봉을 휴대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3단봉은 방탄복에 결속해 휴대하도록 세부 지시가 내려졌으며, 기존 총기와 공포탄 관련 수하 문구도 삭제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지침은 병사들의 총기 안전사고 방지와 업무 경감을 목적으로 한 조치로 해석됐으나, 전방 부대에서 총기를 사실상 배제한다는 점에서 즉각적인 비판을 받았다. “적군이나 미상 침투자를 삼단봉으로 막으라는 것이냐”, “군을 단순한 경비원 수준으로 전락시킨다”는 지적이 쏟아졌고, 국방부 훈령상 위병소 탄약 비치 규정과도 충돌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논란이 SNS와 언론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자, 해당 사단은 지침을 하루 만에 철회했다. 이후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합동참모본부 지침이 예하 부대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며 “21사단에서 선제적으로 적용한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장관은 전방 접적지역은 총기 휴대를 강화하고, 후방·도심 지역 등에서는 대체 장비를 검토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하며, 해당 정책이 2021년부터 논의된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군의 본질적인 역할(억제력과 전투 준비태세)과 병사 안전·인력 부족 문제 사이의 긴장감을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군 내부와 국민들 사이에서 “군다움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와 “현실적인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동시에 제기되며, 군 경계근무 지침에 대한 재검토 논의로 이어졌다.[8]

3단봉 지침과 관련해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이를 질타하는 게시물을 게시했다.

황교안 Hwang Kyo-ahn님의 게시물

《최전방 군인에게 총을 내려놓고 3단봉을 쥐라는 나라, 이것이 정상입니까》

강원도 양구군. 대한민국 최전방에서, 지금 군이 "위병소 병사들에게 총을 지급하지 말고 3단봉만 소지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저는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나라 군대는 지금 누구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까? 위병소는 '출입 관리'가 아니라 '전투의 시작점'입니다.

  • 위병소는 유사시첫 교전이 벌어지는 전장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근무하는 병사들에게 "총은 위험하니 내려놓고, 3단봉만 들라"고 조치했답니다.

이것이 '경계'입니까, 아니면 '방치'입니까

  • 만약 북한이 군사작전을 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식적인 가정을 해봅시다. 북한의 무장 특수요원 2~3명이 야간에 위장 침투를 하거나 차량 돌진, 흉기 위협 공격을 시도한다면, 총기 없는 위병 병사는 단 몇 초 만에 제압됩니다.

3단봉으로 자동화기를 든 적을 막을 수 있습니까? 방탄복을 입은 적 침투조를 제압활 수 있습니까? 적군 차량을 멈출 수 있습니까?

결과는 명확합니다. 우리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가상이 아니라, 과거 북한의 무장 침투 사례들이 이미 수없이 보여준 현실적인 시나리오입니다.

  • '병사 보호'가 아니라 '병사 희생'입니다.

이 지시를 내린 자들은 말할 것입니다 총기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다." "병사를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다."

그러나 저는 단언합니다. 총을 빼앗아 병사를 보호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병사를 가장 위험한상황으로 내모는 결정입니다.

총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총을 쓸 수 없게 만드는 지휘가 위험한 것입니다.

  • 군 지휘의본질을 정면으로 거스른 결정입니다.

군의 지휘란 무엇입니까 최악의상황을 가정하고 최단기에 적을 제압하고, 병사에게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휘하는 것. 그리고 그 책임을 지휘관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책임은 회피하려 하고 위험은 병사에게떠넘기고 총대신 3단봉을 쥐여주며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지휘'가 아니라 '회피'입니다 결단이 아니라 직무유기입니다

  • 이 문제는 '한 부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지시가 묵인된다면 다른 전방 부대에서도 똑같이 따라할 것이고, 경계는 형식이되고 군은 '싸울 수 없는 조직'으로 변질됩니다. 국방은 실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최전방은 행정 편의 처소가 아닙니다

국민여러분

대한민국 군인은 3단봉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존재가 아닙니다. 총을 들고도, 필요하다면 목숨을 걸고 막아내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 보루에서 총을 내려놀게 한 결정이 사실이라면, 그 지시는 즉각 철회되어야 하며, 누가 어떤 판단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군 통수권자인 이재명은 책임이 없을까요? 나라를지킬각오가없는지휘관은, 병사를 지휘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은 정치의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입니다.

병사 생명의 문제입니다.

8. 산하기관

병무청
방위사업청

9. 각주

  1. ↑ 성낙인, 헌법학, 2019년, p572
  2. ↑ 성낙인, 헌법학, 2019년, p572
  3. ↑ https://www.google.com/amp/s/m.chosun.com/news/article.amp.html%3fsname=news&contid=2016102101696
  4. ↑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27143 文정부 국방부 트위터 대변인이 "보수 꼴통 XX들 접근하면 뒤진다"는 '대깨문' 팔로우 논란
  5. ↑ 27143_35776_2553.png 국방부 대변인실에서 팔로우(구독)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난 계정. 정치 편향 논란이 나왔다
  6. ↑ 27143_35778_2812.png 해당 시민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 계정들. 대다수 강성 문재인 정부 지지자로 보인다
  7. ↑ 이 또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오천년 역사에서 중국에 굴종적인 관계를 이어 온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였으니 말이다.
  8. ↑ 해당 지침은 논란 직후 철회되었으며, 실제 적용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