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5번째 헌법 개헌으로 성립한 시기를 말한다.
1981년에서 1987년 직선제 개헌까지로 거의 전두환 대통령 집권기에 해당한다. 이때 집권한 세력을 신군부라는 말도 쓰는데, 신군부라는 말은 북한에서 처음 만든 말이라고 한다. 신군부라는 용어는 사용을 지양하는 것이 좋을듯
나무위키나 위키백과에서는 김영삼 때 엉터리 정치재판인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결과와 이로 인한 통설을 그대로 수용해 5공이 무슨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하고 518을 진압 했다고 서술 해 놨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12.12는 쿠데타가 아니고, 도리어 김재규 정승화 군벌의 반란을 진압한 사건이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518진압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기에 응당 해야 했고, 그 진압도5공세력과는 관련이 없다.
518진압 이후 몇달만에 전두환이 대통령을 추대되는 바람에 엉뚱하게 518진압의 책임을 전두환과 5공이 다 뒤집어 썼다.
정권을 탈취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최규하가 직접 전두환에게 대통령이 되라고 했고, 당시 헌법인 유신헌법에 의해 추대 된 것이다.
법적으로 보나 하자가 없다 당시 헌법이 그랬고, 10.26 이후 권력공백기에 전두환은 당시에 여타의 사람들처럼 기회주의적으로 처신 하지 않고, 김재규와 그의 군절 정승화 등의 반란을 제압했다. 그 과정에서 공이 제일 컸고,
군내에서도 선후배사이에 인망이 두터웠기에(전두환은 선배에게는 깍뜻했고, 후배들도 따랐다)
대통령이 된 것이다.
5공 시기는 박정희의 산업화를 완성했던 시기였다.
경제성장률은 세계 1위였고, 정부의 강력한 물가 억제 정책으로 독립이후 처음으로 상시적인 인플레이션을 벗어나 성장과 물가 안정을 이루었다.
중산층이 많아지고 서민들이 가장 살기 좋았던 시절이다.
통금을 해제했고, 연좌제를 금지 시켰다. 두발자유화 교복자유화도 이때 이루어졌다.
다른 위키에서는 피해자들을 부각시키고, 그 당시를 마치 암울했던 시절과 같이 묘사하고 5공을 부정하고 부정적으로 서술하는데,
우리나라에 그런 정서가 있는데, 5공은 박정희의 산업화를 완성했고
(박정희가 다 한 것을 전두환은 열매만 따먹었다는 평가도 존재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박정희 말기에는 중화학에 중복 투자 과잉 투자와 외채가 쌓여서 경제가 좋지 않았다. 이런 부분을 손 보고 외채문제를 해결항 것이 5공이다. 전두환은 강력한 물가안정 정책으로 독립이후 상시적 인플레이션 상태에서 처음으로 물가 안정까지 이루었다
박정희 때 핵개발로 미국, 문세광 육영수 저격 사건 등으로 일본과의 소원했던 관계도 개선했다)
개방(통근해제, 연좌제금지, 두발자유화 해외여행제한 완화, 수입시장 개방 등)으로 갔다.
7년 단임을 약속 대로 실천했고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이양을 했고, 직선제로 개헌 또한 실현해서(노태우가 자기가 한 것인냥 발표했지만, 도리어 노태우는 직선제하면 진다고 반대했고, 전두환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노태우를 도리어 설득 시킨 게 진실) 민주주의에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