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이 일본군에 쫓겨 1940년 10월 만주에서 소련으로 불법 월경하여 도주한 이후 소련에서의 그의 이동 경로와 체류 장소 및 1945년 해방 후 북한으로 입북하는 경로를 정리해 본다.

월경 후 수감 및 남야영 입영

일본측 기록에 나오는 1940년 가을 김일성이 쫓기던 만주에서의 마지막 장소는 함경북도 북단에 인접한 훈춘이다. 아내 김정숙과 부하 10여명을 데리고 훈춘에서 1940년 10월 23일 소련으로 불법 월경한 그는 국경수비대에 체포되어 포시예트(Посьет, Posyet) 항으로 끌려가 수감된다.

그는 주보중의 신원보증으로 1941년 1월 초 풀려나 다른 동북항일연군 월경자들과 함께 하마탄(Хаматан, 虾蟆塘, 오늘날의 라즈돌노예, Раздольное) 마을에 있던 남야영(B 야영)에 수용된다. 하마탄(라즈돌노예)은 우수리스크(Уссурийск)와 블라디보스토크의 중간 쯤에 있다. 우수리스크의 당시 지명은 보로실로프(Вороши́лов)였고, В 야영(남야영)의 В는 여기서 첫글자를 따온 것이다.

[지도 1] * 훈춘 - 포시예트 - 라즈돌노예 (구글지도 직접 연결)

유라(김정일)의 출생

김일성이 하마탄의 남야영에 머물 때인 1941년 2월 16일 장남 유라(김정일)가 태어났다. 김정일이 출생한 집은 라즈돌노예 88번지로 기차역에서 800m 가량 동쪽에 있으며,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기차역에서 도보로 11분 정도 거리)

[지도 2] * 라즈돌노예 기차역 - Lazo가 88번지 (김정일 생가) 구글 지도 : 라즈돌노예 기차역에서 큰 길(Ulitsa Lazo)을 따라 동쪽으로 800 m 정도 가서 북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서면 바로 나옴.

88여단 창설 및 뱌츠코예 이주

소련으로 월경해온 동북항일연군 대원들 일부는 하바로프스크에서 동북쪽으로 70 km 가량 떨어진 아무르 강변에 있는 뱌츠코예(Вя́тское, Vyatskoe) 마을의 북야영 (A 야영)에 수용되었다. A 야영의 A 는 아무르(Амур)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1942년 7월 남, 북 야영의 동북항일연군 대원 대다수를 수용한 소련군 88여단이 뱌츠코예 마을에 창설되면서 남야영의 김일성 일가도 이때 뱌츠코예로 이주하여 해방될 때까지 머문다. 남야영 근처 우수리스크와 북야영 근처 하바로프스크 사이의 거리는 667 km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흔히 김정일이 태어난 곳이 하바로프스크 (뱌츠코예)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고, 실제 출생지는 라즈돌노예이며, 뱌츠코예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944년 김일성의 둘째 아들 슈라가 뱌츠코예에서 태어났다.

[지도 3] * 우수리스크 - 하바로프스크 구글지도

뱌츠코예의 88여단 유적지

88여단이 있던 뱌츠코예 마을은 아래 지도에서와 같이 하바로프스크에서 동북쪽으로 70 km 가량 떨어진 아무르 강변에 있다.

뱌츠코예 88여단 유적지는 당시 건물은 거의 다 허물어져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다. 아래 지도에서 보이는 마을 옆의 넓은 사각형 모양 부지이다.

해방 후 입북 경로

소련군이 북한 지역에 진입하여 평양에 도착한 것은 1945년 8월 26일이고, 8월말까지는 38도선 이북의 점령이 완료되었다.

88여단의 김일성은 소련 극동군 장성들과 NKVD (KGB 전신)의 추천으로 9월 초 스탈린에게 불려가 면접시험을 보고 북한 지도자로 내정을 받는다.

이후 소련군은 스탈린이 북한 지도자로 내정한 88여단의 김일성과 그 일행을 비밀리에 입북시킨다.

김일성과 88여단 조선인들 일행은 평양으로 가기 위해 뱌츠코예를 떠나 1945년 9월 중순 만주의 무단장(牡丹江, 목단강)에 도착한다. (만주의 무단장 시는 [지도 3]에 나와 있다.) 거기서 기차로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일본군이 기차 터널을 폭파하여 철로가 막힌 탓에 육로 입북을 포기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배를 타고 입북하게 된다. 이들을 태운 소련 군함 푸가초프호가 원산항에 도착한 것은 1945년 9월 19일 오전 11시경이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