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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본서 태어나 대학까지 마치고 소련군 장교가 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ref name="off">[[가브릴 코로트코프|가브릴 코로트코프(Gavril Korotkov, 1925~ )]] 저, 어건주 역, 《스탈린과 김일성 (권1, 권2)》 (동아일보사, 1993) 권1 pp.167~168</ref>. [[88여단]]에서 대위 계급으로 1대대 부대대장이라는 비교적 높은 직위에 있었지만, 88여단의 다른 고려인들 [[유성철]], 리동화(이동화)<ref name="loc">[http://www.loc.gov/rr/asian/SovietKorean.html Biographies of Soviet Korean Leaders - 숙청된 고려인 가족 80인의 육필수기] 미의회도서관<br>장학봉 외, "북조선을 만든 고려인 이야기", 서울: 경인문화사, 2006.</ref>, 최원<ref>[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9B%90_(%EA%B5%B0%EC%9D%B8) 최원 (군인)] - 위키백과</ref>, 김창국<ref name="loc"/> 등과는 달리 해방 후 북한으로 오지 않고 소련군에 남았기 때문에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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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6일 (수) 07:09 판

박성훈(Пак Сен Хун, Pak Sung Hoon)은 소련의 고려인으로 제88독립보병여단의 1대대 대대장 진지첸(Цзин Жичэн, 김일성) 대위 아래 부대대장이었으며, 당시 계급은 대위(капитан)였다.

개요

그는 일본서 태어나 대학까지 마치고 소련군 장교가 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1]. 88여단에서 대위 계급으로 1대대 부대대장이라는 비교적 높은 직위에 있었지만, 88여단의 다른 고려인들 유성철, 리동화(이동화), 최원[2], 김창국[3] 등과는 달리 해방 후 북한으로 오지 않고 소련군에 남았기 때문에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북한 김일성이 전사한 선배 지휘관의 이름을 물려받아 썼다고 증언했다.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는 주요한 증언 중의 하나이다.

88여단 시절 김일성은 북한 지도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 때였으므로, 동료 빨치산 대원들은 김일성의 전력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들로부터 들은 말일 것이다. 또 박성훈은 해방 후에 북한으로 오지 않고 소련군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과 원수진 일도 없었으므로 김일성에게 불리한 말을 일부러 지어내서 할 까닭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김일성의 자질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하기도 했다.

박성훈의 김일성 관련 증언

가브릴 코로트코프(Gavril Korotkov, 1925~ )의 저서 《스탈린과 김일성》에 아래와 같은 박성훈의 김일성 대한 증언이 나온다.[4]

[권1 p.165]

김일성에 대해 언급한 자료들은 정확히 사실만을 기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둘 필요가 있다. 모스크바에 있는 외국 활동가들 사이에는 이야기를 과장 시키는 것이 유행이었다. 즉 모스크바(코민테른, 공산주의 당중앙위원회의 정치부와 스탈린 개인)는 장래의 '민족 영웅'과 다른 나라의 '지도자'로 준비시키고 있었던 정치 군사 활동가들의 진실한 삶의 여정을 비밀로 묻어두기 위해 경력을 날조하곤 했다.

'조선 인민의 지도자'의 과거 동료 (과거 제88보병여단의 제1대대 부대대장인 대위 박성훈과 과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무 부장관인 강상호[5])였던 사람들이 증언했듯이 진치첸은 1939년 가을 일본 점령군에 맞선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전사했고 30년대 이름을 날렸던 만주 빨치산 김일성의 이름을 자기 것으로 했던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거 소연방 문서에서 답을 찾아내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 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아직 과거 내무인민위원회(NKVD, 후에 국가안전위원회(KGB)) 문서국의 보관물품에 대한 연구가들의 독자적인 행동이 허가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현재 '조선 인민의 지도자' 김일성이 소연방에서 살았던 그 시기의 증인들이 제시한 증거를 바탕으로 이 주장을 믿는다.

박성훈은 북한 김일성이 1939년 가을에 죽은 유명한 빨치산 김일성의 이름을 따라 썼다고 증언한다. 죽은 유명한 김일성은 1937년 11월 13일 전사한 보천보 사건의 주역 6사장 김일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권1 pp.167~168]

소련군 소령인 박성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50년 10월, 하바로프스크시).

"...나는 얼마간 제88보병여단의 제1대대의 부대대장을 지냈다. 나는 우연히 그리로 가게된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나의 이력에 있던 몇 가지 사실들이 소련 사령관의 주의를 끌어 이런 임명을 받게된 것 같았다. 우리 부모님은 지난 세기말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거기에서 나는 태어나고 공부를 했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러시아어를 배웠다. 일본 공산당의 리더인 가타야마[6]와 행동을 같이 했던 30년대 중반에 나는 소비에트 연맹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소연방을 독일이 침공한 후 곧 붉은 군대의 대열에 소집되었다. ....이 여단은 중국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도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대대장을 진치첸 (Цзин Жи Чен, 또는 Цзин Жичэн, Jing Zhichen)이라 불렀다. 언어 소통은 러시아어로 했다. 한인들은 자기들끼리는 빈번하게 한국말로 얘기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중국말도 알았다. 우리들에게는 러시아어의 ‘욕’ - 중국어에도, 한국어에도 진하게 스며들어간 예리한 러시아어 표현 – 이 널리 유행했다.

...김일성은 아내와 함께 농가 하나를 따로 차지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린 나이의 두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커다란 불행이 닥쳤다. 즉 그 아들 중의 하나가 우물에 빠져 죽었다. 아들 유라는 민첩하며 난폭한 소년이었다. 그를 ‘대대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를 위해서 소련군인 차림새와 장화를 만들어 주었다. 하루 종일 병영에서나 들판에서 군인들 사이에 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그들과 함께 먹고 잠을 잤다. 의심할 바 없이 김일성은 우리 일반장교 사회에서 그를 분리시킨 독특한 몇 가지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그는 당과 군사 업무 경험으로 보아 '노장'이라고 간주되었다."

88여단 당시 김일성에게는 유라(김정일)와 슈라 두 아들이 있었다. 슈라는 일반적으로 해방 후인 1947년 평양에서 익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7][8], 박성훈은 두 아들 중 하나가 88여단 시절 우물에 빠져 죽었다고 말한다. 이런 증언을 하는 사람이 박성훈 외에도 더러 있는데[9][10][11][12], 명확히 해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김일성에게는 당시 김정숙 아닌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 난 아들이 또 있었다는 말도 있으므로 그 경우에 해당할 가능성도 있다[13]. 또 가브릴 코로트코프는 김일성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소련에서 우연히 알게된 여인에게서 낳은 딸 한 명이 현재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살고 있으나 잊고 지낸다고 하였다[12].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김일성의 자녀들이 더 있을 수 있다.

[pp.169~170]

진지첸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의문에 대한 문서는 없다. 전투와 정치 예비교육 프로그램, 다른 문서들은 극동전선의 문서보관국 건물의 화재 때 불타버렸다 (그들이 고의적으로 없애버렸다고 확신할 근거가 있다). 그러나 제1대대와 제88보병여단의 정치부 장교들 중 몇몇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근본적인 요구와 기본내용에 대해서 말했다. 다음과 같이 박성훈이 말했다.

“...주요 관심사는 특수한 방법으로 최근의 전투전술을 연구하는 데 분산되었다. 교육에서 그가 성공했든 실패했든 일본 후방을 기습하는 것이 면밀히 검토되었다. 여섯 달 간의 예비교육 후 차례가 된 빨치산 그룹은 실전에 투입될 준비를 갖췄다.

대대장은 종종 자신이 직접 교육을 이끌어 갔다. 그는 빨치산 전투전술을 충분히 연구했다. 훌륭한 체격을 갖추었고 우렁찬 지휘관다운 목소리를 가졌다. 일의 성질상 나는 그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 사람은 남에게 호감을 주었으며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에 덧붙여 그는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녔다. 자신을 사랑했고 모든 면에서 다른 장교들보다 자신이 더 우월함을 드러내려고 애썼다.

그는 자신의 지난 사생활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종종 만주에서의 전투에서 자신이 세운 공적들에 대한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했다.”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Lankov, 1963~ ) 국민대 교수도 88여단 1대대 부대대장 박성훈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 것 같고, 그는 김일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14]

이 대대의 부대대장이었던 박성훈 대위는 후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스크바 당국이 고려한 여러 가지 긍정적인 자질 외에도, 김일성은 우리들 대다수보다 유리한 장점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그는 스탈린에 대한 열정적인 신심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그를 우상화하고, 그에 대한 열정적 사랑을 모든 방법으로 말로 표현했다."

The former deputy commander of this battalion, Captain Pak Sung Hoon, later said: “... It was clear to us that with all the other positive qualities that were taken into account in Moscow, Kim Il Sung had two more advantages over many of us. He was most infected with a fatal devotion to Stalin, idolized him and in every way demonstrated this love in words. ” (From the book by A. Lankov)

Бывший заместитель командира этого батальона капитан Пак Сен Хун впоследствии рассказывал: «...Нам было ясно, что при всех прочих положительных качествах, которые учитывали в Москве, у Ким Ир Сена были ещё два преимущества перед многими из нас. Он был наиболее заражён фатальной преданностью к Сталину, боготворил его и всячески демонстрировал эту свою любовь на словах». ( Из книги А. Ланькова)

박성훈은 김일성이 평소에 스탈린을 숭배하고 우상화 하여 열렬히 찬양하는 말을 하고 다닌 것이 그가 스탈린에 의해 북한 지도자로 발탁되는데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위 내용이 나오는 란코프의 책은 "КНДР вчера и сегодня: Неформальная история Северной Кореи [The DPRK Yesterday and Today: An Unofficial History of North Korea] (in Russian). Vostok-Zapad. (2005)."이며, 러시아의 북한 연구자들이 자주 인용한다.

일본 출신 박성훈이 소련군 장교가 된 배경은?

88여단의 박성훈은 일본서 태어나 대학까지 마치고 소련군 장교가 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1] 당시 소련과 일본은 긴장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으로 볼 수 있는 그가 소련군 장교가 되기는 불가능했을 것같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과정을 명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런데, 1939년 소련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할힌골 전투 (노몬한 사건)에 일본군으로 참전했다 소련군에 포로가 된 박성훈이라는 인물이 그 후 소련군 장교가 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 사람이 88여단 1대대 부대대장 박성훈과 동일인이 맞다면 일본인이 소련군 장교가 된 이유도 설명될 듯하다. 88여단 박성훈은 일본에 있을 때 공산당 실력자 가타야마 센(片山潛, 1859 ~ 1933)을 추종했다고 하므로[1] 일본서도 공산주의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노몬한에서 포로가 된 뒤에도 이런 전력 때문에 소련군이 그를 장교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2005년 방영된 SBS 스페셜 ‘노르망디의 코리안’에 나온다.

할힌골(노몬한)에서 소련군에 포로가 된 박성훈의 이야기는 22회 (제2부)의 1분 40초경부터 나온다.

함께 보기

각주

  1. 1.0 1.1 1.2 가브릴 코로트코프(Gavril Korotkov, 1925~ ) 저, 어건주 역, 《스탈린과 김일성 (권1, 권2)》 (동아일보사, 1993) 권1 pp.167~168
  2. 최원 (군인) - 위키백과
  3. Biographies of Soviet Korean Leaders - 숙청된 고려인 가족 80인의 육필수기 미의회도서관
    장학봉 외, "북조선을 만든 고려인 이야기", 서울: 경인문화사, 2006.
  4. 가브릴 코로트코프(Gavril Korotkov, 1925~ ) 저, 어건주 역, 《스탈린과 김일성 (권1, 권2)》 (동아일보사, 1993)
  5. 강상호(姜尙昊, 1910~2000)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 가타야마 센(片山潛, 1859 ~ 1933) 위키백과
  7. 1946년 평양에서 찍은 슈라의 사진
  8. 김만일 위키백과
  9. [뉴스A]단독/‘은둔형 지도자’ 김정일 소꿉친구 “여느 아이들처럼 놀았다” 채널A 2012-07-09
  10. [러 할머니] “김정일 위원장 어릴적 모습이 선해…” 조선일보 2002/08/22
  11. 최보식의 뱌츠코예 방문기 : 김정일생가 터엔 대학시설물 조선일보 1993.06.30 / 23 면
  12. 12.0 12.1 가브릴 코로트코프(Gavril Korotkov, 1925~ ) 저, 어건주 역, 《스탈린과 김일성 (권1, 권2)》 (동아일보사, 1993) 권1 p.75
  13. 진짜 김정일이 태어난 곳 (연해주 고려인 아나톨리 리의 글)
  14. 《Сделан в СССР (Made in the USSR)》, "Совершенно секретно (Top Secret)", No.9/268, Опубликовано: 1 Сентября 2011 (September 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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