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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북조선 『자유황해』라는 신문을 보면 김일성 장군을 례찬하는 노래가 있다. △이건 농군 박서방이 부르는 노래란다. △그 한 구절을 보면 △김일성 장군 빛나는 그 이름 받들어 한민족의 태양이라 찬양함은 장군이 오시므로 장군이 게시므로 봄빛처럼 다사로운 행복이 내 향토와 내 살림에 갈피갈피 깃드러 빙산같이 풀일 길 없던 온갓 고통이 영원히 영원히 사라진 까닭이라.<br>
{{인용문|북조선 『자유황해』라는 신문을 보면 김일성 장군을 례찬하는 노래가 있다. △이건 농군 박서방이 부르는 노래란다. △그 한 구절을 보면 △김일성 장군 빛나는 그 이름 받들어 한민족의 태양이라 찬양함은 장군이 오시므로 장군이 게시므로 봄빛처럼 다사로운 행복이 내 향토와 내 살림에 갈피갈피 깃드러 빙산같이 풀일 길 없던 온갓 고통이 영원히 영원히 사라진 까닭이라.<br>


△이 노래를 드르면 북조선은 극락이오 천당이라. △그러나 하로에 몇천명씩 아버지 할아버지 대대로 살던 고향에서 쪼껴서 온갓 모욕을 당하며 남으로 남으로 밀려오는 동포는 김일성 장군과 같은 피가 흐르느 동포가 아니던가 △이북 천지가 어두어 촉누락시에 민누락인데 Δ홀로 빛나신 분은 김일성 장군만이시런가}}
△이 노래를 드르면 북조선은 극락이오 천당이라. △그러나 하로에 몇천명씩 아버지 할아버지 대대로 살던 고향에서 쪼껴서 온갓 모욕을 당하며 남으로 남으로 밀려오는 동포는 김일성 장군과 같은 피가 흐르느 동포가 아니던가 △이북 천지가 어두어 촉누락시에 민누락(燭淚落時 民淚落)인데 Δ홀로 빛나신 분은 김일성 장군만이시런가}}


* [http://db.history.go.kr/id/dh_006_1948_04_25_0070 월남한 북로당원 유재민(柳在敏), 이북실정 폭로 : 자료대한민국사 제6권  >  1948년 04월 25일] 동아일보 1948년 04월 30일
* [http://db.history.go.kr/id/dh_006_1948_04_25_0070 월남한 북로당원 유재민(柳在敏), 이북실정 폭로 : 자료대한민국사 제6권  >  1948년 04월 25일] 동아일보 1948년 04월 30일

2020년 12월 1일 (화) 09:49 판

8.15 해방 직후 평양이 자유롭던 시기는 단 열흘을 넘기지 못했다.[1] 소련군이 진주해 오면서 일제시대보다 더 못한 상황으로 전락해 갔다. 소련군은 도처에서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했다.[2] 하루에도 수십명이 "동무 잠깐 봅시다"라는 한마디에 끌려나가 행방불명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문헌들

남한 언론의 기사

투옥지사(投獄志士) 2천명(二千名), 백미 1두(白米一斗)엔 2천원(二千圓), 보라! 처절처절(悽絶悽絶)한 이 현상(現狀)을
북한의 선전이 사실인 줄 알고 속아 월북했다 천신만고 끝에 귀환한 학생의 체험담이다. 북에서 지인이었던 이기영 (李箕永, 1895~1984)을 만났는데, 본인은 물론 이강국 (李康國, 1906~1956)도 월북을 후회한다더라고 했다.
북조선 『자유황해』라는 신문을 보면 김일성 장군을 례찬하는 노래가 있다. △이건 농군 박서방이 부르는 노래란다. △그 한 구절을 보면 △김일성 장군 빛나는 그 이름 받들어 한민족의 태양이라 찬양함은 장군이 오시므로 장군이 게시므로 봄빛처럼 다사로운 행복이 내 향토와 내 살림에 갈피갈피 깃드러 빙산같이 풀일 길 없던 온갓 고통이 영원히 영원히 사라진 까닭이라.
△이 노래를 드르면 북조선은 극락이오 천당이라. △그러나 하로에 몇천명씩 아버지 할아버지 대대로 살던 고향에서 쪼껴서 온갓 모욕을 당하며 남으로 남으로 밀려오는 동포는 김일성 장군과 같은 피가 흐르느 동포가 아니던가 △이북 천지가 어두어 촉누락시에 민누락(燭淚落時 民淚落)인데 Δ홀로 빛나신 분은 김일성 장군만이시런가
棄權(기권)은 國民(국민)의 義務(의무)를 拋棄(포기) 1948.04.30 동아일보 3면
월남한 북로당원 유재민, 이북실정 폭로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일요인이며 북로당원의 일인인 柳在敏은 북조선의 金日成정책이 비민족적임을 지적하고 25일 월남하여 시내 모 여관에 여장을 풀고 있는데 氏는 왕방한 기자와 다음과 같은 문답을 하였다.
(問) 귀하가 월남한 이유는 무엇인가?
(答) 나는 북로당원의 일원이며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일인이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조선을 적화하려는 소련의 의도를 그대로 계승하여 인민의 생활문제를 도외시하고 있어 인민들은 의식주 안정을 찾기 위하여 남하하는 것이다. 나도 유엔조위의 來朝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북조선의 유엔위원단에 대한 북협조에 불만을 품고 그리운 고향을 뒤로 남하하였다.
(問) 이북동포들은 남북협상을 어떻게 보는가?
(答) 이북동포들은 남북협상에 하등 기대를 가지지 않고 있는데 도리어 남조선 동포들이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괴한 일이다. 하여간 이북동포들은 여러번이나 북조선인민위원회의 모략 선전에 속아왔기 때문에 이번 남북협상도 기대하지 않고 솔직히 말하면 총선거의 반대 공작이라는 것은 이북동포들도 잘 알고 있다.
(問) 金九씨는 현재까지 공산주의자들과 적대시하여 왔으며 북조선인민위원회에서는 金九타도라는 구호를 부르짖어왔던 것인데 최근의 金九씨 태도를 이북동포는 어떻게 보는가?
(答) 남조선동포들은 북쪽 동포를 전부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보는 듯하나 이북동포의 90%가 李박사 노선을 지지하는 우익이고 나머지 10%가 공산주의자들이다. 그리하여 이 90퍼센트에 달하는 우익적 동포들은 李承晩·金九 양씨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숭배하여 왔다. 金九타도라는 구호에 우리 우익에서는 반감을 가지고 왔던 것인데 이제와서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전조선에 공산주의정책을 감행하려는 金日成파의 책동에 추종한다면 3천만을 지도할 영도자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問) 이북동포들은 5월 10일 실시될 총선거를 어떻게 보는가?
(答) 이에 대하여서는 이북에서 일체 보도도 없고 언론자유가 보장되지 못한 관계상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있으나 유엔위원단 입경을 거절한 소련군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하루바삐 국제무대에서의 우리 독립국가가 실현될 방법을 갈망하느니만치 이번 선거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동아일보 1948년 04월 30일

Pauley 보고서

  • Pauley 보고서 : 1946년 6월 - 트루먼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점령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의 허락을 얻어 1946년 5월 29일 ~ 6월 4일 기간 북한 지역을 돌아보고 대통령에 올린 보고서
Edwin Wendell Pauley, Report on Japanese Assets in Soviet-occupied Korea to the President of the Unites States June, 1946.

[p.6] (b) Throughout the cities and in every factory visited the walls were virtually covered with propaganda posters praising Kim Il Sung, Stalin and the Liberating Red Army, and denouncing Kim Koo and Dr. Syngman Rhee. The most prominent poster displayed was one showing a skull with two snakes coming out of the eye sockets, signifying Rhee and Kim Koo. Hundreds of small posters written in Korean were observed in railroad stations and on the walls of buildings praising Kim Il Sung as a great hero and patriot.
George M. McCune(1908~1948), Korea Today : 북한에서 소련군의 산업시설 철거 반출이 별로 없었다는 Pauley의 보고서에 의문을 표함.

미군정의 기록 문서

p.1 : 1항 - 군대조직 100만 - 김일성 부하들과 일본군 경력 2년 이상자를 훈련시켜 장교로 임용. 만주와 북중국의 일본군 하급병사 출신이 많음.
p.3 : 4항 - 패한 8로군이 북한으로 들어옴. 강계와 평북 주둔. 1946년 9월 3만6천명., 10월 6만명.
p.5 : 13항 - 막대한 농업현물세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 현물세 25%는 말 뿐이고, 70~80%도 많이있고, 평균 50%는 됨. 곡물을 소련으로 반출함.
p.8 : 26항 - 북한 전역에 김구와 이승만이 민족반역자 우두머리라는 포스터를 붙임.


North Korea Today, for American Eyes Only (G-2, United States Army Forces in Korea, August, 1947) : An Anthology of Selected Pieces From the Declassified File of Secret U.S. Materials on Korea Before and During the Korean War (Volume 1), (Seoul, National Unification Board, 1981) pp.1 ~ 40.
pp.9~10 - 김일성 경력

소련군정의 기록 문서

김일성은 언제 북한의 지도자로 지명되었나 NK News 2015년 11월 04일
우드로윌슨센터: 김일성, 1945년까지 북한 지도자로 미확정 사료 공개
Soviet Report on Communists in Korea, 1945 Wilson Center
전(前)소련공산당 (볼셰비키) 중앙위원회 비서 말렌코프 동지,

소비에트 연방 국방 인민워원회 부위원장 불가닌 대장 동지
붉은 군대 총정치국장 시킨 상장 동지께
원래 보고해 드렸던 내용에 추가로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북조선에서는 10월 20일 현재 공산주의자 3000명 이상이 있습니다. 모든 이북 5도에 당 도위원회는 설립되었으며, 군대 내에 군 위원회도 다수 형성되었습니다. (중략)

헤이조(평양)시에는 10년 동안 만주 조선인 빨치산 부대 사령관을 지냈고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하바롭스크 지역 88특수여단 대대장이었던 김일성이 있습니다. 김일성의 이름은 조선 인민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투사 그리고 조선 인민의 항일 영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 인민 사이에는 이 사람에 대한 수많은 일화가 있고, 그는 참으로 조선 인민에게 전설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김일성을 잡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였고, 그의 체포에 거액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습니다.

김일성은 모든 민주 계층, 특히 농민 속에 인기가 높습니다. 김일성은 향후 조선 정부를 위한 적합한 후보자입니다. 인민민주전선이 설립되면 김일성은 이를 지도할 만한 사람일 것입니다. 김일성에 대립하여, 미국인들은 하와이 열도에서 유명한 조선인 망명자인 이승만을 조선에 데리고 왔습니다. 10월 20일에 리승만을 찬양하는 데모가 서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결론과 제안

박헌영이 영도하는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조선에서 진행된 혁명을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으로 봐야한다는 유일하게 올바른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 박헌영이 영도하는 조선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조선의 전체 공산주의 조직들을 영도하는 중앙 기관으로 인정하여야 합니다. 박헌영은 가장 준비된 간부로서 자기 기관을 강화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중략)

● 공산당, 민주당, 민주청년동맹, 여성민주조직, 직업동맹 등등을 통합하여 반일민주조직으로 통일된 민주연합을 설립하여야 합니다. 이 연합 지도자로 제일 인가가 높고 인민이 사랑하는 민족적 영웅, 김일성을 임명하여야 합니다.
이 문서를 보고 김일성이 당시까지도 북한 지도자로 결정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10월 14일의 평양시 민중대회에서 김일성이 연설한 것은 그가 북한의 지도자로 처음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절차였다. 김일성이 유명하고 인기가 높다는 것도 그가 가짜라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로 보기 어렵다. 소련군 진지첸 대위가 유명한 전설의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사칭하여 행동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 자료

《蘇軍政下의 北韓: 하나의 證言》 국토통일원, 1983 (복간본) -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판형을 바꿈.

함께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