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ㆍ태조 | 제10대ㆍ연산군 | 제19대ㆍ숙종 | |
제2대ㆍ정종 | 제11대ㆍ중종 | 제20대ㆍ경종 | |
제3대ㆍ태종 | 제12대ㆍ인종 | 제21대ㆍ영조 | |
제4대ㆍ세종 | 제13대ㆍ명종 | 제22대ㆍ정조 | |
제5대ㆍ문종 | 제14대ㆍ선조 | 제23대ㆍ순조 | |
제6대ㆍ단종 | 제15대ㆍ광해군 | 제24대ㆍ헌종 | |
제7대ㆍ세조 | 제16대ㆍ인조 | 제25대ㆍ철종 | |
제8대ㆍ예종 | 제17대ㆍ효종 | 제26대ㆍ고종 | |
제9대ㆍ성종 | 제18대ㆍ현종 | 제27대ㆍ순종 | |
고조선 · 부여 ·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 탐라 · 발해 · 후삼국 ·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 일제 강점기 · 임시 정부 · 대한민국 · 북한 |
순종 純宗 | |
약력 | |
직책 | 대한국 제2대 황제 (1907년 7월 19일 ~ 1910년 8월 29일) ←전임 |
생몰기간 | 1874년 3월 25일 ~ 1926년 4월 26일 |
묘호 | 순종(純宗) |
성 | 이(李) |
휘 | 척(坧) |
순종효황제(純宗孝皇帝)는 조선조의 마지막 군주로 묘호는 순종(純宗), 시호는 문온무녕돈인성경효황제(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 연호는 융희(隆熙), 성은 이(李), 휘는 척(坧)이다. 대한국 초대 황제인 고종태황제의 아들로 아비가 퇴위한 후 황위를 이어 대한국 마지막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한일병합조약의 공포가 1주일 늦어진 이유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 1873 ~ 1929)가 쓴 글에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지만 곧바로 공포하지 않고 1주일 늦추어진 이유는 8월 27일 순종의 황제 즉위 4주년 기념일 연회를 베풀고 난 후 공포하도록 조선측이 일본에 요청했기 때문이라 나온다. 연회에 참석한 군신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먹고, 마시고 즐겼다고 했다. 량치차오는 이들의 달관한 듯한 행동에 전율을 느낀다고 했다. 병합조약은 체결 후 1주일 미루어진 8월 29일 월요일에 공포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의 외교문서에서도 확인된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지 않았고, 조선 국왕과 대신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들은 매국의 댓가로 일제로부터 막대한 돈과 지위를 받았다.
- 순종 즉위기념파티 때문에 연기한 한일병합조약: 왜 한일병합조약은 체결 1주일 뒤에야 공포됐는가 [박종인의 땅의 역사] 128 : 2023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