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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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정종 제11대중종 제20대경종
제3대태종 제12대인종 제21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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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太宗
지위
재위
1400년 11월 13일 ~ 1418년 8월 10일 (음력)
즉위식
개경 수창궁
조선국 상왕

상왕 정종

상왕 단종
재위
1418년 8월 11일 ~ 1421년 9월 12일 (음력)
이름
방원(芳遠)
묘호
태종(太宗)
존호
건천체극대정계우예철성렬
(建天體極大正啓佑睿哲成烈)
시호
공정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
(恭定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
능호
헌릉(獻陵)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인릉길 42
신상정보
출생일
1367년 6월 21일 (양력)
출생지
고려 동계 함흥 부 귀주 사제
사망일
1422년 6월 8일 (양력)
사망지
조선 한성부 연화방 수강궁
배우자
원경왕후 민씨
자녀
12남 17녀 (18남 19녀)

태종(太宗, 1367년 6월 21일 ~ 1422년 6월 8일)은 조선의 제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400년 11월 28일 부터 1418년 9월 9일까지이며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이방원으로 알려져있다.

고려시대 문과 급제자였다. 조선왕 중에 문과를 정식으로 급제한 유일한 왕이다. 무관 출신으로 나름 컴플렉스가 있던 이성계는 아들이 문과에 급제한 것을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방원은 척을 지고 있던 정몽주등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이성계는 정몽주와 함께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방원은 정몽주를 만나서 설득하기로 한다. 그는 《하여가》를 지어 불렸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러꿍 저러쿵 무엇이 문제인가? 새로운 시대를 함께 만들어 가십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 이방원, 〈하여가〉

이방언의 제안에 정몽주는 《단심가》로 거절의 뜻을 밝힌다. 이 몸이 일백번을 죽는다해도... 고려를 향한 나의 마음은 변함이 없소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정몽주, 〈단심가〉

결국 정몽주는 이방언이 보낸 자객에게 산죽교에서 암살된다. 이방언은 정몽주를 제거하고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신진 세력을 기반으로 조선을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아버지를 몰아내고 쿠데타로 집권했고 형인 이방과의 역쿠데타를 저지했다. 이성계가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역쿠데타인 조사의의 난에서도 승리를 거둔다.

태종 때부터 명나라와 관계가 정상화 된다. 명나라가 정식으로 조선왕의 작위를 내려준 첫왕이다. 그전까지 왕(태종, 정종)들은 조선왕으로서 작위를 받지 못하고 고려권지국사(고려왕을 임시로 대신하는 직위)였다.

(양국관계 걸림돌이었던 명태조 홍무제 주원장과 정도전이 비슷한 시기에 죽으면서 이루어졌다. 명나라에 2대황제인 건문제 때 책봉을 받았다)

정종은 한성에서 개성으로 환도를 했는데. 이걸 다시 한성으로 환도한 왕도 태종이다. (개경, 한양, 무악(지금의 신촌) 세 후보지로 두고 단 3명만 종묘 안에 들어가 동전던지기로 점을 쳤다. )

집권과정이 아버지를 제끼고 이복형제를 죽이는 등 거의 패륜적이었음에도 비슷한 과정으로 집권한 세조에 비해서 덜 까이고 이미지도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혹자는 세조가 몰아내고 죽인 단종이 적장자였기 때문에 왕위 계승 정통성에서 하자가 없었기 때문에 세조가 더 까이고 단종이 매우 동정적인 취급을 받았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적장자 계승원칙을 강조하는 유교를 숭상한 조선에서 의외로 적장자(정실부인에 장남)로서 왕이 된 경우는 드문 편이다. 27명의 왕중 7명 정도만 적장자였다.) 이방원이 죽인 의안군은 거의 이성계의 막내였고, 장성한 이복형들을 다 제끼고 세자가 되었으니 (비슷한 시기에 중국왕조인 명나라에서는 적장자 계승이 잘 이루어진 편이었다. 근데 명나라에서 적장자로 황제가 된 황제 중에 무능하거나 황제로서 개판을 친 혼군 황제가 좀 많았다. 이후 청나라는 원래 유목민족이어서 그런지 적장자 계승의 전통이 없었다. 형제중 유능한 인물이 뒤를 잇는 식의 전통이었고, 유교를 숭상한 강희제가 적장자를 황태자로 밀었지만 실패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