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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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정종 제11대중종 제20대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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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어진.jpg
태조
太祖
약력
직책 조선국 제1대 왕
(양력 1392년 8월 5일 ~ 1398년 10월 14일)
후임→
생몰기간 1335년 10월 18일 ~ 1408년 6월 18일
묘호 태조(太祖)
시호 성문신무정의광덕대왕

(聖文神武正義光德大王)

이(李)
단(旦)

개요

태조강헌대왕(太祖康獻大王, 1335년 10월 27일(음력 10월 11일) ~ 1408년 6월 18일(음력 5월 24일))은 조선(朝鮮)의 초대 군주로, 묘호는 태조, 시호는 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혹은 지인계운응천조통광훈영명성문신무정의광덕고황제), 성은 이, 본관은 전주, 휘는 성계(成桂)였으나 즉위 후 단(旦)으로 고쳤다. 고려 말대의 장수였으나 왕명으로 요동정벌을 나가다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역성혁명을 일으키고 조선(朝鮮)을 세워 초대 국왕이 되었다.

선대

태조는 즉위 후 고조부 이안사(李安社, ? ~1274)는 목왕(穆王), 증조부 이행리(李行里)는 익왕(翼王), 조부 이춘(李椿, ? ~1342)은 도왕(度王), 부친 이자춘(李子春, 1315~1361)은 환왕(桓王)으로 추존하였다.[1][2]

태종 때인 1411년 선대의 묘호를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로 가상하였다.[3]

태조의 선대 가계에 대해서는 아래 실록의 기사에 자세히 나온다.

사대주의

태조 이성계는 조선의 국호를 정할때 명나라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 조선(朝鮮)과 화령(和寧) 중 어느 것을 국호로 하면 좋을지 물어보고 조선이 좋겠다는 명나라 황제의 의견을 따라 조선(朝鮮)을 국호로 정했다. [4]자기나라 이름 짓는 일마저도 자기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중국에 물어보고 결정했다는 점에서 태조를 사대주의의 시작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근데 엄밀히 말하면 사대주의긴 한데 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 화령중 이성계의 고향이름은 화령은 명나라가 받기 힘든 이름으로(중국 발음이 원나라 도시와 비슷) 조선이라고 정하고 하나는 선택할 수 없는 것을 끼워 놓고 추인해 달라고 한 것이다.

종계변무(宗系辨誣)

명나라 기록에 태조가 이인임(李仁任, ?~1388)[5]의 아들이라고 잘못 기재된 것이 알려져 조선에서는 개국초부터 이를 바로잡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명나라는 사정을 알면서도 조선의 약점을 잡아 횡포를 부리며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 무려 200여년을 노력한 끝에 선조 대인 1589년에야 겨우 바로잡을 수 있었다.

태조와 신덕왕후 강씨의 딸 경순공주(慶順公主, ?~1407)가 이인임의 조카 이제(李濟, 1365~1398)와 혼인하여 태조와 이인임은 사돈간의 가까운 관계였다. 후에 경순공주는 이방원의 난으로 남편과 동생들(방번, 방석)이 죽자 승려가 되었다.

피휘(避諱)

조선조에서 역대 왕의 이름 글자는 신하나 백성들이 함부로 이름 글자에 넣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불편을 덜기 위해 왕의 휘는 거의 쓰이지 않는 벽자를 택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태조의 휘 단(旦)은 자주 쓰이는 글자이고, 문종의 휘 향(珦) 등도 가끔씩 쓰이므로 후대 사람들은 아예 이름에 쓰지 않으니 문제가 없으나, 이전 고려시대 사람들의 이름도 본래대로 쓰지 못하고 다른 글자로 대체해야 했다. 인명의 단(旦)은 같은 뜻의 조(朝)로 바꾸어 적었다.

고려조 인물 호종단(胡宗旦), 하천단(河千旦), 유승단(兪升旦), 흔승단(昕昇旦), 왕정단(王丁旦) 등은 조선조에는 호종조(胡宗朝), 하천조(河千朝), 유승조(兪升朝), 흔승조(昕昇朝), 왕정조(王丁朝)로 적었다.[6] 이들은 이름 글자가 달리 적혔더라도 동일인이므로 유의해야 한다. 안향(安珦)도 조선조에는 초명이었던 안유(安裕)로 불렸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