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일본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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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대
스가 요시히데

스가 요시히데.jpg
스가 요시히데
菅 義偉
직책 일본 제7대 총무대신
(2006년 9월 26일 ~ 2007년 8월 27일)
←전임후임→

일본 제81~83대 내각관방장관
(2012년 12월 26일 ~ 2020년 09월 15일)
←전임후임→
일본 제99대 내각총리대신
(2020년 9월 16일 ~ )
←전임후임→

출생일 1948년 12월 6일
출생지 아키타현 유자와시
부모 (부)스가 와사부로
배우자 스가 마리코
자녀 슬하 3남
학력 호세이대학 법학부 정치학과(학사)
정당 자유민주당

개요

제99대 일본 총리이자 자유민주당 당수. 아베 신조 전임 총리가 총리에 당선된 2012년 12월 26일부터 아베 신조가 건강 문제로 총리직에서 사퇴한 2020년 9월 15일까지 내각관방장관을 역임하였으며 2020년 9월 16일에 아베 신조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었다.

집안

1948년 12월 6일 아키타현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 스가 와사부로는 남만주철도의 직원[1]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고, 만주국이 해체되면서 고향인 일본 아키타현으로 돌아가 농업에 종사했다.

한국 언론에서는 이러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부친에 대해 '빈농이 아니라 부농이다', '알고보니 부잣집이다'[2]와 같은 기사를 내보내며, 스가 요시히데가 집안이 좋아서 정치인이 되었는데도 흙수저 집안에서 자랐다고 스가 총리가 언플을 한다는 식의 비판을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대개 유력한 정치인 집안에서 아버지의 지역구를 세습하여 의원이 되고, 선수가 쌓임에 따라 부대신, 대신 등에 선임되는 일본의 정치인들과 달리 스가 요시히데는 부농이 되었던 어쨌건 간에 유력 정치인 집안도 아닌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 도움 없이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는 한국 정계도 마찬가지로 좌우파를 막론하고 상당수의 정치인들이 정치인 집안이나 중견기업 이상의 부유층에서 태어나 집안 빨로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스가 총리가 집안 덕을 보았다고는 결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 중요한 것은 스가 요시히데는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했지 자신의 아버지가 빈농이라고 한 적은 없다.

생애

어찌되었건 간에 스가 총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의 농장을 물려받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심한 갈등이 있었다. 스가 총리는 농사가 싫어 무작정 도쿄로 갔는데, 집안의 지원도 없이 무작정 상경했으니 돈이 없어 골판지 공장에서 몇 달간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독학으로 공부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년째 되는 해에 도쿄에 위치한 호세이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 1973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정계에 입문하였는데,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정치에 대한 포부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정계 입문

그리하여 1975년에 오코노기 히코사부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 하였으며, 1987년에는 요코하마에서 시의원이 되었다. 1996년에는 자유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중의원이 되었다. 그의 나이 만 48세때의 일이다. 정계에 입문한지 21년만에 중의원이 된 것이다. 아베 신조가 30대 초반의 나이에 그의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이 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가 20대에 중의원이 되었음을 고려해보면 집안의 후원과 파벌이 없어 늦은 나이에 중의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베 신조와의 인연

스가 요시히데와 아베 신조의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베는 관방부(副)장관이고, 스가는 별 볼일 없는 정치인이었다. 스가는 "북한의 만경봉호가 일본을 오가면서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하며 북한 국적의 선박이 일본의 항구에 입항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3]는 주장을 했다. 이 발언이 아베 신조를 사로잡았다. 당시 일본 정치인들은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태도로 단순히 현상유지에만 주력하고 호전적이며 납치, 살상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북한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북한을 상당히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던 아베 신조는 대북 강경책을 주장하는 스가 요시히데에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베 신조는 자신이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었을 때 스가 요시히데를 총무대신에 임명하였으며, 2012년에 다시 총리가 되었을 때는 스가 요시히데를 내각관방장관에 임명하였고 자신의 임기 내내 스가 요시히데를 다른 인물로 교체하지 않았다.

제99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건강이 악화되어 총리직위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었던 아베 신조총리의 뒤를 이어 제99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스가 총리의 정책은 대개 아베 신조 전임총리의 정책을 계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각료선임만 보더라도 아베 신조 내각에서 재무대신으로 재직한 아베노믹스의 주역 아소 다로를 그대로 유임시켰고, 그 외에도 상당수의 대신들을 유임시켰다. 이러한 인사원칙은 아베 전임 총리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반응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의 지지율이 높았기에 아베 정권의 핵심 인물인 스가가 정권을 계승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논란이 없었으나, 한국 언론은 뜬금없이 총리 선출에 국민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둥 잡소리를 했다.

원래 내각책임제 하에서는 다수당의 당대표가 총리가 되는 것이고, 다수당이 어떤 방식으로 총리를 선출하는지는 특별히 반민주적인 방식이 아닌 방법이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또한 이러한 총리 선출 과정에서 국민들의 참여는 없다. 그래서 대통령제대통령국회가 모두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2원적 체제, 내각책임제국회만이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1원적 체제라고 하는 것이다. 기자들이 이런 기본 상식도 없이 스가 총리 선출 과정을 문제삼았다면 기자 자질이 없다고 할 수 있고, 알고도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면 기자로서 공정보도에 대한 역할은 내팽겨치고 일본에 대한 시비걸기를 업으로 삼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각주